몸은 그곳을 빠져나왔지만, 사회운동 경험은 내게 오래 잔상을 남겼다. 사회운동과 미술 간의 관계에 대해서 공부한 것, 그런 미술가들에게 끌린 기억이 남아 있었다. 내가 가진 사상을 예술로 표현한 것을 보는 것이 좋았다. 켄 로치나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 브레히트의 희곡, 케테 콜비츠의 그림들, 최규석의 송곳 같은 만화들.
문제는, 그런 예술의 존재들이 내게 당위로 다가오기도 했다는 것이다. 나도 이 세상을 비판하거나 뭔가 의미 있는 작업을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오래 사로잡혔다. 내 그림을 그런 시선으로 검열하고 미워하기도 했다. 이 문제가 내가 지망생 기간을 힘들게 보낸 많은 원인들 중 하나였다. 내가 그리는 그림들이 내 사상과 만나지 못할 때마다 내가 부족한 사람인 것만 같았고, 세상에 도움 되지 않는, 의미 없는 그림을 그리면 부끄러운 마음이 들곤 했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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