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집
래티샤 콜롱바니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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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집>은 현재의 파리와 1925년의 파리, 그 100년을 사이에 둔 두 개의 시간 사이에 있는 '여성 궁전'이라는 한곳에 관한 이야기이다. 현재의 파리에는 유능한 변호사였으나 뜻밖의 사건으로 인해 끝없는 무기력과 우울감에 빠져버린 여성 '솔렌'이 있고, 1925년의 파리에는 이룰 수 없는 꿈이 필요한 불굴의 여성 '블랑슈'가 있었다. 또 세상에 버림받고 상처받은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갑자기 찾아온 마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그곳을 찾은 솔렌과 소명과 열정에 가득 차 평생을 가난과 맞서 싸우며 구세군에 헌신한 블랑슈. 그 두 사람의 시작은 매우 달랐다. 하지만 상처받고 소외된 수많은 여성들을 향하는 마음은 결국 둘을 하나로 만들어 주었다. 그 접점은 여자들의 집 바로 '여성 궁전'에 있다. 그렇게 그 안에서 그녀들 모두는 하나였다. 그곳은 따뜻한 말 한마디는커녕 '고맙다'라는 말조차도 쉽게 건네지 않고, 서로에게 욕을 퍼부우며 으르렁 거렸지만, 우는 이를 보듬고, 떠난 간 사람을 위한 자리를 잊지 않고 마련해 주는 따뜻함이 있었다. 상처받은 수많은 여성들은 그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었고, 위안이 되었다. 여성 궁전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수많은 상처 받은 여성들의 마음을 치료해 주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나는 그녀들의 이야기에 슬펐고, 분노했고, 존경했고, 아파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향했던 다소 냉담한 나의 태도에 대해 미안함이 들기도 했다. 소설이었지만, 현실인 <여자들의 집> 꼭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참고. 이 소설에서 소개된 블랑슈는 실존 인물이며, 여성 궁전은 1926년에 창립되어 아직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 블랑슈는 잊혔다.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 평생을 바쳐 여성 궁전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이뤘지만 역사에서 지워졌다. 실제 프랑스 사람들도 이 책을 통해 블랑슈라는 여성에 대해 안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 책에는 여러 여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솔렌, 블랑슈라는 두 여인의 좌절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와 여성 궁전 안에 살고 있는 상처 받은 여인들의 이야기. 그들은 모두 각자의 슬픔과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그 슬픔과 아픔이란 단어가 그녀들의 전부는 아니다. 그녀들은 슬픔과 아픔을 가지고 있었지만, 강했고 용감했다. 슬픔에 굴하기보단 맞서 싸웠고, 포기하고 주저앉기보다는 일어서 나아가길 선택했다.

솔렌은 언제나 누가 봐도 안전한 길, 성공으로 가는 길을 걸어갔다. 그것을 위해 그녀는 노력했고, 많은 성취를 손에 거머쥐었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의뢰인의 자살로 우울에 빠진 솔렌은 끝없는 무기력과 우울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과 마주하면 누구라도 그렇겠지. 그런 그녀에게 내려진 뜻밖에 처방은 '자원봉사'였다. 하지만 어찌 보면 순수한 자원봉사는 아니었다. 자신 안에 갇히지 않기 위한,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기 위한 그런 자원봉사였다.



'글로 의사소통을 원하는 사람을 위해 글을 대신 써 줄 작가를 구합니다. 글쓰기 자원봉사를 희망하시는 분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그 구인 공고를 보는 순간 전류 같은 것이 몸을 타고 흘렀다. '작가'를 구하고 있었다. 작가라는 단어만으로도 가슴에 잠들어 있던 무엇인가가 전부 되살아났다. 여자들의 집 25p



운명같이 찾아온 '대신 글을 써줄 작가'를 모집한다는 자원봉사 공고. 이 공고가 솔렌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잊고 있던 어렸을 적의 꿈, 그 꿈을 다시 떠올리게 해 준 공고는 그녀의 가슴을 뛰게 했다. 그녀는 작가를 꿈꾸었지만, 부모님의 뜻에 따라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안전한 길. 그 길에서 그녀는 많은 승리를 이루고 축하여 둘러싸였지만, 텅 비어 버렸다. 그녀는 승리했지만 기쁘지 않았고, 무감각했으며, 피로했다. 그녀가 대필 작가로서의 임무에서 처음으로 얻어낸 2유로짜리 승리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특별한 장소에서 열리던 파티에 솔렌도 종종 초대받아 가서 즐기곤 했다. 거기 가서 할 일이라고는 승리를 즐기는 일뿐이었지만 그 어떤 승리도 솔렌을 진정으로 기쁘게 한 적은 없었다. 승자의 일원이 되어 표면상으로는 기쁨을 과시해도 가슴은 무감각했다. 감동의 외관을 맴돌면서 즐거움을 연기하다 보면 늘 피로가 몰려왔다. 하지만 이번에 거둔 이 승리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제자리에 온 느낌이었다. 적절한 순간에 딱 맞는 자리에 왔을 때의 기분이었다. 여자들의 집 110p



아마도 이것이 딱 그녀의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꿈을 버리고 선택한 변호사라는 직업을 갖고 살아가며 그녀가 느꼈을 감정. 그리고 현재, 우연히 찾은 꿈 대필 작가라는 봉사에서 느낀 감정. 그렇게 그녀는 조금씩 자신의 자리를 찾아 꿀들 거리고 있었다. 꿈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설렘을 준다. 하지 못했기에 설레고, 하고 싶어 설렌다. 하지만, 고된 하루하루 속에서 우리 대부분의 꿈은 '내일, 다음에, 언젠가'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점점 희미해져 어느 순간 잊힌 기억으로 변해 버린다. 나의 꿈은 무엇이었는가?? 나는 지금 제자리에 서 있는 건가??

하지만 여기 또 한 여성 블랑슈는 달랐다. 꿈을 가슴 한편에 접어두기보다는 투쟁하고 쟁취해 나갔다. 그녀에게 운명처럼 찾아온 것은 한 여인의 질문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으로 무엇을 할 생각입니까?"



블랑슈는 남편의 구멍 난 양말을 꿰매며 살아갈 생각이 애초에 없었으니까. 여자로 태어났으니 마땅히 해야 한다는 그 들러리 역할은 전혀 내키지 않았다. 블랑슈는 삶의 무대 한가운데 서고 싶었다. 무엇인가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조국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게 내 꿈이야." 블랑슈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반대하던 사람들은 결국 두 손들었다. 블랑슈는 제네바와 작별하고 파리 구세군 사관 학교를 향해 떠났다.여자들의 집 50p



블랑슈는 그 질문에서 자신의 소명을 찾았다. 그리고 평생을 그 일을 위해 헌신했고, 마침내 이루었다. 1925년 여성에게는 더욱더 가혹했던 프랑스의 현실에서 이런 여성이 실존했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이것이 이 두 여인의 이야기에 시작이다. 이 책은 이 두 여인의 시간을 따라 전개된다. 현재의 파리는 솔렌이 대필 작가로서 '여성 궁전'에서 성장하는 이야기이고, 과거의 파리는 블랑슈가 현실의 장벽에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우며 자신의 꿈과 소명을 이루어 가는 이야기이다. 두 여인의 시간이 교차되며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헷갈리기보다는 읽으면 읽을수록 빨려 들어가 엄청난 속도로 책장을 넘기며 책을 읽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책은 소설이지만 현실이다. '여성 궁전'안에 살고 있는 여인들의 이야기 속에 현실의 삶이 생생하다. 나는 <여자들의 집>을 읽으며 소설이 아닌 현실의 아픔을 보았다. 유독 여성에게 더욱 가혹한 현실의 아픔들은 정말 가슴 아팠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평생 가슴에 채워지지 않는 구멍을 간직한 체 살아가는 여인 생티아에게선 슬픔이 분노가 되어 자신을 집어삼켜버리는 모습을 보았다. 장미나무에 둘러싸인 고급빌라, 세련된 옷을 차려입은 치과의사 남편으로 인해 20년이라는 세월을 폭력 안에서 살아온 여인 비비안에게선 가족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차별한 폭행의 끔찍한 현실에 분노했다. 잠, 그 하나가 소원인 여인 라 르네의 어디에도 가닿지 못하는 끝없는 여행에서는 여성에게 더욱 가혹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보며 두려웠다. 그 외에도 여러 이야기가 나오지만 내가 가장 슬펐던 여인은 빈타였다.

전통이라는 이름의 학대 '할례'. 연약한 여성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행해지는 의식은 그녀들을 잘라버렸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그런 삶 속에서 자신의 딸은 구해내고야 말겠다는 어머니의 의지는 정말 대단했다. 그녀는 딸을 지키기 위해 아들을 포기하고,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모를 끝없는 여정에 몸을 실어 지금 그곳 '여성 궁전'에 들어왔다. 그녀는 운이 좋았지만 또 다른 고통 속에 갇혀버렸다. 솔렌이 그녀를 위해 아들에게 편지를 써주기 전까지. 아들과 함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그녀는 슬픔에 가득 찬 눈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단단한 엄마였다. 그런 역경 속에서 딸을 구해냈고, 슬픔에 눈물 흘리는 솔렌을 안아주었다. 같은 두 아이의 엄마로서 나는 과연 그녀만큼 단단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슬픔이 얼마나 클지 느껴졌고, 그녀의 단단함이 존경스러웠다. 그녀의 삶은 슬프고 아름답고 위대했다. 할례라는 이름의 관습은 슬펐고, 아이를 향한 그녀의 모정은 아름다웠고, 그녀의 단단함은 위대했다.



고통을 멈추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아뇨. 세상의 고통은 계속될 거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멈출 수 없어요. 여자들의 집 182p - 1925년 블랑슈



세상은 생각보다 어둡고 힘들고 아프다. 세계 각지에서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학대에 가까운 관습으로 인해 고통받는 여성들, 가난으로 인한 굶주림과 주거 불안으로 거리로 내몰리는 아이와 여인들에게 행해지는 폭력. 또 우리 주위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여성폭력 등. 그 슬픔의 종류도 다양하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것을 어렴풋이 알뿐이다. 각종 매체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때때로 불어오는 바람처럼 우리의 귓가를 스쳐 지나간다. 아주 잠깐 인식하는듯하지만, 그것에 집중하거나 계속 신경 쓰고 쫓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그들을 동정하지만 진심으로 공감하지 않았고, 눈물 흘리지만 깊이 마음 아파하지 않았다. 그러는 편이 더 쉽고 편한 일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알지도 모르지도 않는 애매한 상태에서 먼 산 바라보듯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세상에서 고통이 없어지지 않을 테니 자신은 멈출 수 없다는 블랑슈는 대단하지만 나는 그녀처럼 헌신하는 삶을 살 자신은 전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바로 바라보고, 마음으로 공감하고, 비난이나 냉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 이면에 그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여기까지 흘러왔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누구도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불행하지 않고 기대했던 만큼 행복하지도 않다. 17세기 작가 프랑수아 드 라 로슈푸코의 잠언. 여자들의 집 2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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