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이자벨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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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는 따로 없다. 첫 페이지,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는 사자성어가 쓰여 있다. 여기가 시작이다. <오후의 이자벨>을 펼쳤을 때 가장 처음 마주한 한 단어 동상이몽(同床異夢). 그것이 이 책에서 무슨 의미인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읽는 내내 알 수 있었다. <오후의 이자벨>에 반전은 없다. 그렇다고 엄청난 스릴이나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나를 밀어 넣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주인공 샘, 그 자신의 목소리로 그의 모든 삶을 천천히 있는 그대로 들려주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모든 일의 시작은 그가 21살 하버드 로스쿨에 합격한 후 떠난 파리 여행에서다. 어머니의 부재, 사랑에 인색한 아버지 아래서 자란 샘은 결핍되었다. 사랑도 자신감도 모두(다행히 능력은 아주 출중!!). 그런 그는 우연히 이자벨을 만나고, 그녀가 정한 규칙에 따라 일주일에 두 번 오후 5시 그녀를 만난다. 허락된 단 두 시간의 오후. 2시간의 한정된 시간과, 오직 그곳에서의 한정된 만남. 이렇게 시작된 둘의 만남은 시간과 함께 깊어지지만 확장되지는 않는다. 현실의 삶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자벨과 줄곧 그녀와의 미래를 희망하지만 이루지 못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샘의 인생 여정. 그 안에 사랑, 성장, 성공 그리고 실패까지 많은 감정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여정속 매순간은 그녀와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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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벨 전에 나는 섹스를 전혀 몰랐다.
이자벨 전에 나는 자유를 전혀 몰랐다.
이자벨 전에 나는 인생을 전혀 몰랐다.

오후의 이자벨 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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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사랑이었을까? 보는 관점에 따라 사랑이었을 수도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냥 그저 그런 불륜 이야기 일수도...) 영미소설이기 때문이었을까? 나의 정서와는 조금 괴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인생에 관해서도.

평생을 그리워하며 사랑을 속삭이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 그것은 운명적인 사랑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전제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이 깔려 있었기에, 또 실제로 함께하는 삶이 시작되지 않았기에 영원한 사랑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15살의 나이차와 뉴욕과 파리라는 거리는 그들에게 때로는 걸림돌이었고, 때로는 사랑을 현실로 끓고 오지 못하게 함으로서 사랑을 지속하게 해주는 역할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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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늘 소유하지 않을 걸 가지려고 할까? 왜 우리는 오래도록 애써서 뭔가를 손에 넣게 되면 금세 질려 할까? 내가 좀 말이 많았지? 어쨌든 나는 자유라는 일시적인 만족을 버리고, 영구적이고 단단한 안정을 선택하리라는 걸 알아.

오후의 이자벨 97p - 시오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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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생활이 끝나고 돌아온 현실에서 만난 첫 번째 여자, 시오반. 그녀가 한 말이다. 둘은 며칠 뒤의 헤어짐을 전제로 며칠간 만나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시오반의 마지막 인사는 “이제 나는 돌아가. 예측할 수 없는 생활에서 예측 가능한 생활로.” 시오반은 똑똑하고 재미있고 이성적이다. 그녀는 소유하려 하지 않았고, 일시적인 것이 아닌 영구적인 것을 망설임 없이 택한다.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도 가끔은 일탈을 꿈꾸지만, 보통은 일탈이 아닌 예측 가능한 생활을 선택하고 살아간다. 그것이 후회를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겠지. 비록 최고인지는 의문이지만,,, 그리고 먼 훗날 그 선택을 곱씹으며 가지 않은 길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대부분은 비슷한 선택을 할 것 같다. 우리는 결국 인생을 타협하며 살아가야 하니까.

샘과 이자벨도 그랬다. 서로를 원하고 미래라는 희망을 품지만 엇갈린 타이밍(혹은 타이밍이라는 핑계)으로 계속 현실과 타협하며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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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나랑 새로운 삶을 살아보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뭐야?”
이자벨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두려워서.”
“뭐가?”
“나는 그동안 모험 대신 안전한 길만 택해왔어. 10년 뒤, 더 나이가 많아졌을 때 왜 마음 가는 대로 따르지 않았는지 후회하게 될까 봐.”

오후의 이자벨 234p - 샘과 이자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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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샘 혼자 드러냈던 둘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할 때 즈음, 이자벨이 그 희망을 처음으로 드러냈다. 훗날 이날을 후회할까 두려워 서라며. 이기적인 여자(혹은 두려움이 많은 여자). 하지만 이 말 뒤에도 이자벨은 결국 샘이 아닌 자신의 남편 샤를과의 규칙을 지키며 둘은 다시 먼 공백기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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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옳은 선택을 했다고 자신을 다독거리지만 그저 불확실한 미래와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비교적 안정적인 길을 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도 그랬다.

오후의 이자벨 251p -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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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가 두려워 용기를 내 보았지만, 결국 선택은 현실. 비교적 안정적인 길. 나라고 다른 결정을 내렸을까? 그 누구도 선뜻 그렇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랬기에 둘의 사랑도 끝까지 사랑으로 남을 수 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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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 복잡한 세월을 다 보내고 우린 지금 여기에 이렇게 앉아 있네. 그 여자는 여전히 당신의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있어. 아마 당신과 각기 다른 곳에 살았기 때문이겠지.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가질 수 없는걸 원해. 뭔가를 수중에 넣어도 금세 느끼지. 원하던 게 아니었다는걸. 우리의 인생에는 그런 일들이 너무 많아. 사랑도, 이상도, 고통도 다 그래. 우리는 계속 꿈꾸지. 당신은 아직도 여전히 사랑을 꿈꾸지?”

오후의 이자벨 417p - 레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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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고 때로는 행복을 때로는 고통을 받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꿈을 꾼다. 행복한 삶, 사랑, 이상 등등. 각기 원하는 꿈은 다르지만 모두 그 꿈이 깨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루길 바란다. 하지만 이루고 난 뒤는 어떠한가.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것이 죽을 만큼 원했지만 죽을 만큼 원할 것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게 될 때가 온다. 그것을 알지만 오늘도 꿈에 홀려 망각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모든 것의 끝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이자벨과 샘의 아주 오랜 사랑은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이것이 궁금해 육퇴 후 새벽 2시까지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프랑스와 뉴욕의 인물이라는 배경 때문이었을까?? 조금 이질적인 부분이 있어 왜?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이 책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샘의 삶과 그의 삶의 매우 중요한 인물 이자벨과의 특별한 관계를 통해 우리네 사랑과 인생을 돌아보고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의 인생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루어진 사랑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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