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연 작가의 「단어가 내려온다」를 읽은 뒤 체에 거른 듯 마음에 남은 세 단어다. 일곱 개의 단편이 수록된 첫 SF 소설집에서 오정연 작가는 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 2회 한국과학문학상 가작을 수상한 단편인 <마지막 로그>가 책에 실려있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책에 수록된 단편 중 대부분의 이야기가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특히 화성으로의 이주에 성공한 뒤를 상상하는 이야기가 많다. 오정연 작가가 상상하는 근미래의 우주는 정말이지 그럴듯하고 여전히 씁쓸하다. 다른 행성으로 이주한 뒤에도 꾸역꾸역 치르는 차례라든지(<분향>), 사라지지 않는 여성의 경력 단절과 차별 문제(<미지의 우주>), 운명을 향한 기이한 집착(<단어가 내려온다>)과 끝을 모르는 인간중심주의(<행성사파리>). 장소만 달라졌을 뿐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의 모순을 정교하게 지적한다. 하지만 그런 착잡함 속에서도 천구를 수놓는 별처럼 누군가의 선의와 서로를 향한 마음은 반짝인다. 그 마음은 읽는 이를 다정하게 어루만진다.
나는 수록작 중 <분향>이 가장 좋았다. 작가는 이야기의 큰 흐름 사이사이에 그 흐름과 관련된 어떤 사건이나 인물의 일화를 문헌이나 인터뷰의 형식으로 끼워 넣어 보여준다. 그렇게 교차되는 짧은 꼭지들은 화성에서마저 꾸역꾸역 진행되는 차례 지내기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담고 있다. 인습에 희생되고 소외되는 여성들의 모습이 그려지며, 본래의 취지는 퇴색되고 허례허식만 남은 현재를 비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