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장도연·장성규·장항준이 들려주는 가장 사적인 근현대사 실황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
SBS〈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제작팀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TV를 챙겨 보지 않아서 <꼬꼬무>의 본방송을 챙겨 본 적은 없지만 유튜브 알고리즘이 띄워 준 요약본은 몇 번 본 적이 있다. SBS에서 방영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장도연, 장성규, 장항준 세 명의 MC가 진행하는 시사 교양 프로그램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처럼 의미심장하고 미스터리한 사건을 주로 다루는데, 최근의 화젯거리보다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을 다룬다. MC들은 각각 한 명의 게스트에게 자신이 공부한 사건을 자신의 방식으로 1대 1로 들려준다. 셋 다 입담이 좋아서 흥미진진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최근 동아시아 출판사에서 <꼬꼬무> 시즌 1 중 7편이 책으로 엮여 세상에 나왔다.

프로그램이 차용한 스토리텔링의 방식을 책도 그대로 따라간다. 책의 모든 문장은 독자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구어체로 쓰여 있다. 만약 다른 교양서처럼 딱딱한 문장으로 적혀 있었다면 <꼬꼬무>의 매력이 반감되었을 것 같다. MC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자칫 지루하거나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근현대사로의 진입 장벽을 허물었다는 점이 <꼬꼬무>의 영리한 차별점이니까. 그리고 나는 영상처럼 시간을 들여서 봐야 하는 매체보다 나의 속도대로 자유롭게 오가며 읽을 수 있는 글을 더 선호하는데, 그런 점에서도 책으로 <꼬꼬무>가 출간되었다는 점이 참 반갑다. 셀룰러 데이터 사용이 걱정되는 애청자들에게도 좋은 선택지가 생긴 것 같다.

거의 모든 이야기가 인상 깊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많은 생각을 하며 읽었던 에피소드를 몇 편만 소개하려고 한다. 우선 첫 번째 이야기로 엮인 여성 상대 사기꾼 박인수 사건. 5~60년 전 한국 사회에 자리하고 있던 숨막히는 여성 혐오를 생생히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사실 지금의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그 망령이 드리워져 있지 않은가. 재판부가 피해자에게 정숙함과 피해자다움을 강요하고 가해자에게 이입한 판결을 내리는 모습은 당장 오늘날의 뉴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의 사건과 사회적 분위기에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다면 거기에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현재에 이르러 더욱 교묘해진 차별과 잘못된 통념을 날카롭게 알아봐야 할 것이다.

무등산 박흥숙 사건을 읽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한 인간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기까지 방조하고 책임은 회피하던 사회의 모습을 보며 무척 심란해졌다. 책에 실린 박흥숙을 위한 탄원서가 잊히지 않는다. 최근에도 젠트리피케이션과 재개발을 둘러싼 논란이 많다. 하지만 그런 문제 제기의 대부분은 결국 도시 개발을 강행하고자 하는 더 큰 목소리에 묻혀 묵살되고 만다. 박흥숙 사건처럼 언론과 공권력의 선동 하에 구조적인 문제는 가려지기 일쑤다. 하지만 사람들의 꾸준한 관심과 정의를 향한 열망은 판을 뒤집기도 한다. 박흥숙 사건의 진상을 밝힌 것도 끈질기게 취재를 이어간 한 대학생이었다.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가리고 개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위의 일화처럼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정의에 대해 고찰하게 만드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인간의 내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서진룸살롱 살인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조직폭력배의 말단 칼잡이이자 산골 아이들의 키다리 아저씨였던 고금숙을 보면 완벽한 선인도 악인도 없다는 문장이 무겁게 다가온다. 두 모습 중 어떤 면이 그의 진짜 모습이었을까를 재고 따지려는 건 의미 없는 시도 같다. 인간의 내면에는 선과 악이 모두 있으니 우리는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서늘하고 안타까운 귀감을 준다.

이 프로그램과 책의 시선에서 가장 좋은 점은, 개인을 조명하면서도 개인 너머를 환기한다는 점이었다. 역사 속의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이야기하지만 안타까운 속사정을 그의 악행을 정당화하거나 미화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단순히 개인을 악인으로 규정하고 쉽게 사회에서 도려내기보다는 앞서 이야기한 그의 삶을 환기하며 사회의 책임과 우리의 역할을 묻는다. 따분하지 않고 흥미로우면서도 유익한 근현대사 교양을 쌓고 싶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아직 출간되지 않은 <꼬꼬무>의 에피소드도 차근차근 출간되기를 기다려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