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하늘 빨간지구 - 기후변화와 인류세, 지구시스템에 관한 통합적 논의
조천호 지음 / 동아시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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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건 부끄럽지만 몇 년 되지 않았다. 이건 도무지 십 대 시절에 환경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할 틈을 주지 않은 정규 교육 탓도 크다. 초등학생 때는 지구온난화, 오존층 파괴, 물 부족 같은 주제에 대해 학기에 몇 번 정도 배우는 시간이 있었던 기억이다. 그러나 그런 위기 의식은 매년 같은 발표 자료와 수치에 점점 무뎌져 갔다. 5년 전에도 30년 후 석유 고갈이었는데, 5년 후에도 30년 후 석유 고갈이라고 하니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는 그런 의무적인 환경 교육 시수조차 줄어들었고, 고등학교에서는 입시에 매진하느라 다른 어떤 의제에도 마음을 쏟을 형편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정말 많은 대한민국의 학생들에게 해당되는 상황일 것이다.

대학교에 진학한 뒤 나 너머의 것들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을 때, 그제서야 도처에 널려 있던 시스템의 병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많은 것이 엉망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절망적이었던 건 환경 문제였다. 트럼프가 파리 협약에서 탈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을 무렵이었다. 기어이 인류는 최악을 향해 가고 있는 듯했다. 이러한 지구적 위기 상황에 조천호의 「파란 하늘 빨간 지구」는 지구인 필독서가 아닐까? 나처럼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이제 막 자각한 사람들에게도, 혹은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책을 읽으면서 느꼈다. 정말 맞는 말만 하는 책이구나. 매 문장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저자는 과학적인 지식과 인문사회적인 가치와 시사점을 적절하게 엮어 독자에게 소개한다. 학생 때 지구과학을 공부하면서 느꼈던 '그래서 이게 내 인생이랑 무슨 상관인데?', '내가 이걸 배워서 대체 어디에 써 먹을 수 있는데?' 하는 괴리감이 하나둘씩 해소되어 갔다. 책을 읽기 전 내게 지구과학은 지루하고, 어렵고, 지나치게 광범위한 학문이었다. 이 책을 읽으니 내가 배웠던 현상들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고등학생 때 이 책이 있었다면 절대로 내가 배우는 것들을 우습게 여기고 지나가지 않았을 텐데. 지구과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사회적인 의의를 발견하고, 환경 문제 전반에도 큰 흥미를 느낄 수 있었을 텐데. 더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지 못했다는 사실이 무척 아쉬웠다.

또한 저자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일깨워주면서도, 인류의 미래를 비관하거나 패배적인 관점을 내비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변화가 반드시 특정한 결과만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라며, 아직 인류에게는 인류의 몫이 남았음을 상기시킨다. 기후 우울증(climate grief)이라는 개념을 아는가? 기후 문제에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큰 무력감을 느끼고 좌절하는 일을 뜻한다고 한다. 나 역시 이런 무력감과 회의감을 느낀다. 지금도 마음 한 편으로는 인류 멸종은 업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은, 아직 세상을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한 청소년들에게는 무슨 죄가 있지? 이대로 기성 세대가 망쳐 놓은 지구에서 무력하게 예정된 끝을 받아들여야 하나? 민음사의 잡지 릿터 24호 <How dare you?>에 실린 청소년 기후 운동가들의 인터뷰를 읽으며 부끄러움과 미안함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세대를 떠나 하나의 지구에 살아가는 인류로서 우리는 함께 노력해야 한다. 저자는 그 점을 끊임없이 되새겨주며, 있는 줄도 몰랐던 희망을 손에 쥐여준다. 책을 다 읽은 뒤에는 그만큼의 용기가 생겨 있었다.


이것을 이상이라고 치부하면, 현실의 모든 제약이 ‘지금 이곳‘을 어찌할 수 없는 불가피한 곳으로 전락시킬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서는 가치를 만들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우리 스스로 냉소로 상황을 견디게 됩니다.

이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현실은 벽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이 우리 모두를 살리게 될 겁니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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