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뫼신 사냥꾼 세트 - 전6권 ㅣ 뫼신 사냥꾼
윤현승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우리 나라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있었구나!’ 책을 읽은 후의 느낌이다. 평소에도 글을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했지만 이정도였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소설을 선보였다. 요즘 영화며 만화며 여기저기서 판타지가 대세이지만 정작 우리나라 전통 판타지는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우리나라 소설계는 순수 문학과 서양 판타지를 필두로 하는 장르 소설로 양분되어있다. 특히 환상 문학의 독자 계층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형 판타지의 등장은 소설계에 커다란 충격을 가져올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뫼신 사냥꾼이 놀라웠던 점은 한국형 판타지도 얼마든지 세련될 수 있고, 일반 독자들에게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동양풍 판타지라고 해도 대부분 무협을 바탕으로 둘 뿐, 우리나라의 전통 가치관이 반영된 경우는 드물다. 뫼신 사냥꾼은 도깨비, 신령, 구미호 등 잊혀져가고 있는 우리의 설화들을 현대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어렸을 적 전래동화를 읽고 있는지, 주인공의 성장 소설을 읽고 있는지, 거대한 전쟁 소설을 읽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다. 하나의 소설에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뫼신 사냥꾼이 좋은 소설이라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지 않을까 싶다.
뫼신이란 우리나라의 산과 땅을 지키는 신령스러운 동물들이다. 호랑이, 구미호, 도깨비 등 우리네 조상들의 친구이자 산신들과 함께 살고 있는 세계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뫼신들을 지키는 사람들을 뫼신지기라고 한다. 뫼신을 위협하는 세력에 맞서 싸우는 내용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런데 왜 책의 제목이 뫼신지기가 아니라 뫼신 사냥꾼일까? 주인공의 갈등을 이해한다면, 선과 악의 대립을 이해한다면 금방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웬만하면 책을 직접 읽어보고 생각해보시길 추천한다. 나머지는 내 서평을 읽고 책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 남겨 놓겠다.
윤현승 작가의 특기는 하나의 사건을 시간의 순서와 인물의 관점에서 꼬아 서술하는 것이다. 장대한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풀어내면서 스피디한 전개를 이끌어가는 능력이 탁월하다. 뫼신 사냥꾼에서도 그 실력은 어김없이 드러나고 있다. 같은 사건을 겪어도 그것을 대하는 주인공의 입장, 조력자의 시선 그리고 적대자의 관점도 모두 다르다. 서로가 바라보고 있는 각기 다른 모습 속에서 사건의 전체적인 틀을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색다른 경험이다. 마찬가지로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생각하는데, 뫼신 사냥꾼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6권의 긴 이야기 속에 제각각 다른 매력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해 흔들림 없이 제 역할을 해낸다. 슬픈 과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복수를 선택하는 주인공 세희, 뫼신 사냥꾼을 쫒는 천재 박수 버들 도령, 매력적인 아홉꼬리여우 소소리에서 불로불사를 꿈꾸는 상미까지. 무수한 뫼신과 인물들이 등장한다. 악인조차 우리가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제시해주어 매력적으로 만들어버린다. 선과 악을 떠나 반해버릴 수 밖에 없는 캐릭터가 잔뜩이다.
자세한 줄거리 역시 다른 독자들이 직접 책을 읽으면서 따라갈 수 있도록 얘기하지 않겠다. 다만 말하고 싶은 것은 1,2,3부에 걸쳐 이야기의 강약 조절이 뚜렷하고 사건은 결말을 향해 빈틈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능숙한 필력으로 6권 내내 독자를 쥐었다놓았다 하고 있다. 1부-뫼신사냥꾼 처음에는 구수한 전래 동화를 들려주는 듯 하다가 긴박한 전투까지 숨 쉴 틈 없이 독자를 몰아붙인다. 그런가 하면 2부-뫼신지기 에서는 과거의 이야기를 보여주며 느긋하게 쉬어가는 여유를 보인다. 마지막 3부-뫼신 잔치에서는 클라이막스를 향한 거침없는 전개와 모든 갈등이 폭발하듯 해결되면서 마무리를 짓는다. 장편소설을 읽을 때 종종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있는데 적어도 뫼신 사냥꾼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듯 싶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 속에 숨겨져 있는 복선 하나하나, 캐릭터 한명 한명이 사건을 완성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다시 읽어볼 때 ‘아! 이땐 이런 내용이 숨어 있었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는 재미가 쏠쏠하다. 각 장의 제목들도 속담을 변형시킨 듯 지어졌는데 어떤 내용인지 생각해보면 무릎이 탁 쳐지곤 한다. 이야기를 가만히 곱씹어 볼수록 놓쳤던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인물 사이의 관계며 기발하게 변형시킨 전래동화 등 설정이 많은 만큼 독자도 여유를 가지고 찬찬히 책을 음미하면서 읽는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아쉬운 점은 마지막이 열린 결말인지 2부를 암시하는 내용인지 알쏭달쏭 하다는 것이다. 열린 결말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구체적이라는 점. 마치 ‘나만 알고 있는 이야기가 더 있어. 용용 죽겠지’ 라고 새룽거리는 작가의 장난이 들리는 듯 하다. 여운을 남기고 싶었더라면 조금만 더 독자에게 맡겨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요소를 지나치게 압축시키지 않았나 싶다. 가령 용 은철쭉이 승천하는 과정이나 아홉꼬리여우 소소리의 이야기는 독자들을 매혹시킬 부분이 충분히 있는데도 소설의 구성상 자세히 나올 수 없었던 점이 안타깝다.
6권의 긴 이야기를 읽는 내내 참 잘 쓴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재미와 주제의식을 동시에 잡은 책은 참 오랜만인 듯 싶다. 사실 전권 7만원 대가 적은 돈은 아니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1권만 사보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것도 추천한다. 단지 비싸다는 이유로 이렇게 잘 만든 이야기를 놓치기엔 조금 억울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