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라크리모사 ㅣ Nobless Club 3
윤현승 지음 / 로크미디어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마지막이 개운하지 못했던 소설이었다. 어쩌면 아끼고 아껴왔던 책이기에 더욱그렇게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세련된 결말이지만 무엇인가 빠진 것이 있다는 답답함? 영화로 치자면 어리둥절해 하는 관객들을 뒤로 한 채 홀로 절정으로 치달아가는 경우랄까. 긴장감 넘치던 초반부에 비해 책장을 넘길수록 감정몰립보다는 줄거리를 파악하는데 신경써야 했다. 틈틈이 깔려 있는 수많은 복선들은 결국 완전히 뭉쳐지지 못하고 사건들 사이 사이로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작가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독자를 혼란에 빠뜨렸던 사건 조각 조각득이 완저한 그림으로 짜맞혀지는 순간의 짜릿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의욕이 넘쳤던 것일까. 어쩌면 독자를 너무 과대평가 한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의 엉성한 이해력으로는 수차례의 정독과 생각 끝에서야 글을 흡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복잡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설 라크리모사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이런 복잡함을 충분히 커버할 매력적인 줄거리였기에.
다우시니 관장과 소피아의 대립은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구조였다. 누가 악이지? 누가 선인가야? 선이 있기는 한거야? 이들의 대립을 묘사한 꼬마의 말은 혼란의 늪으로 빠져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천사를 보면서 두려움은 느꼈다는 말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둘 다 악마였다는 말에서 나는 과연 누가 부활을 막기 위한 존재인지 결정은 내릴 수가 없었다. 소피아의 보호 아래 도서관에서 관장와 맞서는 루카르도의 모습을 볼 때 쉽사리 안심할 수 만은 없었다. 이상하다, 소피아를 믿어야 할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루카르도, 너 잘하고 있는거 맞니? 그리고 죽어가는 다우시니 관장의 이야기에서, 소피아의 마지막 선택에서야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다. 타락천사 소피아. 악마에게 사랑을 느끼고 결국은 배신당한 소피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인간을 멸망의 길로 몰아넣은 소피아의 행동은 결코 올바른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 순수함과 굳은 의지는 높게 평가할 만한 행동이었다. 바로 이런 모습에서 루카르도는 사랑은 느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다우시니 관장의 희생에 안타까워하고 있을 순간에 소피아를 위한 짧은 묵념.
그러나 이 둘의 존재감에 비해 티에르 경감의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는 점을 안타까워해본다. 설마 하면서도 그가 요르겐의 후예라는 점이 밝혀졌을 때 그다지 큰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물론 제 3자로서는 놀라운 추리력으로 사건을 파악하는 모습을 모여줬지만 오히려 요르겐의 후예로서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조금 더 말하자면 반전용으로 끼워놓은 인물정도? 물론 루카르도의 정체를 파악하는데 큰 일조를 해주긴 했지만 부족한 느낌이다. 레오나르를 두려워하는 모습 역시 정당한 이유가 없어보였다. 차라리 경관 티에르로서 모든 것을 목격한채 사라지는 캐릭터였다면 좋았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서운 아이. 이 아이만큼 연민에 가득찬 존재가 있을까? 우리는 무서운 아이가 '무서운 아이'가 아닌 '무서워 보이는 아이' 였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언제나 상대방에게 먼저 대화를 시도했으나 늘 거부당했던 아이. 자신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의 신체를 빼앗는 행동은 단지 분노라기보다는 순수하게 '무섭지 않게 하면 친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 행한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을 죽이면 안된다고 했던 말도 또다른 외로운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레오나르가 루카르도와 티에그 경감에게 했던 질문들. 그리고 더이상 루카르도가 레오나르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순간 레오나르는 가장 환한 미소를 지으며 스스로 죽음을 택하였다. 사랑을 원했던 무서운 아이. 다른 사람과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순간이 그가 가장 원하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단지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를 배척했던 수많은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강하면서도 잔인한 존재였다고 말하고 싶다. 바로 우리처럼.
하지만 무엇보다도 흥미로웠던 점은 끝없이 반복되는 무서운 아이의 존재였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무서운 아이를 죽이는 순간 무서운 아이다 되어버리는 현실이라니. 무서운 아이를 죽인 요르겐이 4번째 무서운 아이가 되고 이를 죽인 루카르도가 새로운 무서운 아이가 된다. 공포를 끝내는 순간 자신 역시 똑같으 공포가 되다니. 이것이 인간사의 반복과 일치한다는 점을 생각하니 괜히 씁쓸해졌다. 혁명을 일으키는자, 나라를 세우는자... 모두 정의로 무장하고 이상사회를 꿈꾸며 기존의 권력체제를 무너뜨린다. 하지만 결국은 그 자신도 새로운 권력자가 되어 지배자로서의 위치에 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슬펐던 것은 그들고 그것을 알고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 레오나르와의 대화에서 눈물을 흘리며 웃고있던 루카르도의 모습은 자신 역시 5번째 무서운 아이가 될 것을 예상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의 슬픔을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레오나르의 죽음 이후 과연 세상은 멸망한 것인가. 이것이 나를 가장 고심한게 만들었던 부분이다. 약속을 어긴 루카르도. 그렇다면 세상은 멸망해 버려아먄 한다. 그렇다면 약속을 지켰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베니카의 희생이 처음부터 결정되어졌다는 사실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끝까지 내게 해답을 주지 못했던 문제다. 어쨌든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직 멸망하지는 않았어도 멸망할 것이라고. 새로운 것들이 부활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루카르도는 무서운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더이상 그를 사랑할 존재가 없는 세상은 그를 두려워할 사람들만이 남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범한 사람이었던 루카르도. 단지 작은 행복만 지키기를 원했던 루카르도는 결국 모든 것을 잃고 세상을 멸망시킬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내가 윤현승 작가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언제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얀늑대들에서 뫼신사냥꾼, 그리고 라크리모사까지. 그 중 라크리모사는 미처 몰랐던 윤현승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그의 장기 중 하나인 압축된 시간 속에 타이트하게 스토리를 집어넣는 것부터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선까지. 인물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추측하며 의미부여를 해보는 것도 머리 아프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 최근에 읽은 소설들 중 가장 나를 괴롭혔던 라크리모사. 그러나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소설이었다. 라크리모사를 다 읽은 지금, 이제 나는 윤현승 작가의 다음 소설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