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낯선 사람 - 낯선 도시를 사랑하게 만든 낯선 사람들
김은지 지음 / 이름서재 / 2025년 1월
평점 :
김은지 작가의 <낯선 사람>을 읽으며 낯섦과 낯익음이 교차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여행지 중 절반 넘게 나도 가본 곳이다.
파리, 마드리드, 빈, 로마, 바르셀로나 등.
글을 읽으며 문득문득 지난 여행이 장면 장면 떠올랐다.
책에 실린 많은 컬러 사진이 하나둘 기억의 앨범을 열어주었다.
책을 읽기 전엔 여행 중에 만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 여행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읽어보니 그렇긴 한데
책의 내용과 형태 모두 새로웠다.
책의 겉모습을 보면 글 반 사진 반이고
내용의 큰 줄기는 '러브 프로젝트'다.
저자는 여행 중에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묻는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상대는 저자가 내민 노트에 손수 답을 써준다.
이 일을 저자는 러브 프로젝트라고 이름붙였다.

모든 여행이 특별할테지만
이 질문 덕분에 더 소중한 여정이 되었겠구나 싶었다.
아마도 또한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오고
13년 가까이 흘렀음에도 쉬이 잊히지 않고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재탄생한 것이리라.
저자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만난
존은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한 단어로 답한다.
‘Titien’
티치아노,
미술사에서 손꼽히는 거장.
존은 루브르에서 티치아노의 그림을
모사하며 미술을 공부하는 젊은이였다.
13년이 흐른 지금
그도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몽마르트 언덕에서 만난
길거리 화가는
‘사랑은 빠지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래, 존도 자신도 모르게
티치아노와 사랑에 빠졌으리라.
물론 책에 등장하는 ‘낯선 사람’들의
사랑에 관한 생각은 각기 다르다.

나도 스스로 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전에는 나름의 답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선뜻 뭐라 답하지 못하겠다.
다만 존처럼 내게도
‘사랑’하면 떠오르는 몇몇 사람이 있다.
부모님, 아내와 딸,
구본형 사부, 친한 친구들,
그리고 아시시에서 느낀 사랑과 평화...
저자는 유럽 여행 중에 ‘낯선 사람’들에게
예기치 않은 순간에 꼭 필요한 도움을 받는다.
이 책의 제목이 ‘낯선 사람’이고,
책의 표지에 '낯선 도시를 사랑하게 만든 낯선 사람들'이란 문구를 넣은 이유이리라.
나도 비슷한 경험을 여럿 가지고 있다.
하나만 소개하면
프랑스 파리에서 아내와 내가
낯선 기계 앞에서 기차 출발을 몇 분 앞두고
예약해둔 기차표를 발급하지 못해서
어쩔 줄 모를 때 한 젊은 여자가
그냥 지나치지 않고 우리를 도와주었다.
나중에 보니 그녀도 우리와 같은 기차를 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녀도 여유가 없었음에도 선뜻 도와주었던 것이다.
10년도 더 된 일인데 그 덕분에 지금도
프랑스 파리는 따뜻한 빛깔로 남아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지난 여행이 떠올라서
이탈리아 와인을 한잔하며 읽기도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일렁였다.
책에 저자가 직접 촬영한 풍성한 컬러 사진이 한몫했다.
필름 카메라로 손수 찍은 사진이어서 더 정감이 간다.
그래서일까
책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저자의 여행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좋은 책은 거울이자 창문이다.
읽는 이를 비추고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니까.
이 책의 목차를 보고 미소 지었다.
목차의 표현과 구성이 한 편의 시로 보였다.

언젠가 나도 이 책처럼
시 같은 목차에 사진이 많이 들어간 책을 쓰고 싶다.
좋은 책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뭔가를 꿈꾸고 시도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 책이야말로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