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의 이름에는 이야기가 있다 - 생각보다 인간적인 학명의 세계
스티븐 허드 지음, 에밀리 댐스트라 그림, 조은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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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명이란 무엇인가? 정의를 파악하기 전에 우리는 학명의 시작과 절차와 그 결과, 그리고 앞으로의 모습이 생각보다 더 인간적임을 알고 가야 한다. 그 사유는 단순하다. 지식과 시대가 가지는 차이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학명을 정하는 주체니까. 내 이름을 떠올려볼까. 유교국가에 태어나 돌림자가 지켜진 한자 이름을 가진 나로서는 호모 사피엔스나 호모 에렉투스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피엔스-현명한, 에렉투스-직립한? 사실 따지고 보면 두 글자의 한자를 엮어 대단히 좋은 뜻을 가진 단어가 된 나의 이름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누군가가 의도한 이야기를 담은 이름을 가졌다는 점에서 호모 사피엔스와 나는 아주 같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기서 다른 부분. 나는 태어나기도 전에 부모님의 의견이 담긴 이름이 정해져 있었다는 것, 그에 비해 그들은 사라진지 한참이 지나고서야 지구상에 유일하게 후손이라고 부를만한 인간의 입가와 손끝에서부터 형상화된 이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누군가가 바라는 모습으로 불리고, 생물들은 관찰되는 모습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에 이성적인 애정이 담겼음을.

생물은 생겨났을 뿐 탄생과 죽음의 과정에 일절 관여할 수 없다. 그런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생을 살고 있겠지. 그 모습을 바라보는 또 다른 생물인 우리는 그들 또는 그것들에게 봐줄 만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진다. (나만 그런 건 아니길 바라며) 하지만 내가 그런 의도를 가지기도 훨씬 전에, 과거의 누군가의 발 빠른 제안으로 수많은 생물들은 이미 길디긴 이름을 갖고 있었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 점이다. 긴 이름을 이미 갖고 있었지만 인간의 편의를 위해, 어쩌면 사라진 그들을 위해 번거롭디 번거롭게 학명 체제를 전격으로 개편했다는 것. 생물의 궁극적인 특성을 이름에 집어넣지 않고,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집어넣고 발견된 지역명을 드러내는 등 객관적인 사항보다는 비교적 주관이 담긴 이야기를 더함으로써 특별화된 형식을 구체화한 것이다. 이 체제가 명확히 확립되지 않았던 과거에는 새로운 생물이 발견될 때마다 이전에 정해두었던 아무개 생물의 학명을 수정하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는 경우가 허다했다는데. 이런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서 결심한 혁명이었겠지만 먼 미래의 나로서는 조금은 반갑고 어쩌면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을 감출 수가 없다. 부르기가 간편해졌다는 점에서, 학명으로 이야기를 들려줬다는 점에서.

다른 이야기지만 최근, 인터넷 링크를 만들어낼 당시 하이퍼 링크에 /(슬래시)를 처음 넣은 사람이 큰 후회를 하고 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를 굳이 입력하지 않아도 링크가 작동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그저 멋을 위해 그런 결정을 했던 과거의 자신이 너무도 부끄럽다며. 실제로 글자 한두 개가 모여 완성되는 메일도 너무 과하게 수집, 보관하면 데이터를 관리하는 하드의 과도한 작동으로 인해 환경 오염 악화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데. 인터넷 접속 링크의 /도 같은 맥락을 공유하겠지. 문득 이 이야기를 언급한 이유는 학명을 생략, 축약한 이 책의 내용과 연관 지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물론 학명의 글자를 줄인 것이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함은 아니었겠지만, 그리고 그를 예측할 수도 없었겠지만. 모든 과거를 바라보는 현재의 나로서는 우연과 편의가 모여 잘 굴러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기분이라.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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