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에 저항한 사람들 - 반나치 시민의 용기와 양심
쓰시마 다쓰오 지음, 이문수 옮김 / 바오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탐 크루즈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발키리>가 흥미진진하게 다룬 독일군 장교들의 히틀러 암살 시도. 한때 대학 신입생 필독서였던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에 나오는 '뮌헨 백장미단'의 불꽃같은 저항 운동. 히틀러의 암살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한 독일 복음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드라마틱한 생애. 스티븐 슈필버그 감독의 역작 <쉰들러 리스트>에 나오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유대인을 탈출시킨 선한 독일인 사업가 이야기. 한때 독일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세상 그 어떤 나라보다 독일을 좋아하는 내게도 히틀러 시대 저항운동의 역사에 대한 지식은 이렇게 단편적이다. 그 이유는?

 

우선, 제3제국 혹은 나치 시대라 불리는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한 1933년부터 1945년 세계 2차 대전 패전으로 몰락하기까지 시기에 대한 내 공부가 그다지 깊지 않은 탓일 것이다. 하지만 나치시대 독일 시민들의 저항운동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데에는 또 다른 이유들이 있었다. '반나치 시민의 용기와 양심'이라는 부제가 붙은 <히틀러에 저항한 사람들> (쓰시마 다쓰오 지음, 이문수 옮김, 바오 출판)을 읽다 보면 그 이유들이 하나 둘 풀려나간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던 히틀러 독재시대 저항운동의 면모를 체계적으로 그린다. 이미 널리 알려진 뮌헨 <백장미 그룹>의 활동이나 <1944년 7월 20일 사건>으로 알려진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의 히틀러 암살 시도뿐만 아니라 시기별로 달라진 저항운동의 전모를 사실적으로 소개한다. 무엇보다 내게 흥미로왔던 점은 이들 저항운동이 히틀러 시대 대다수 독일 국민들에게 어떻게 인식되었으며 전후 독일에서는 또 어떻게 재평가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나치 시대 저항운동, 혹은 반나치 시민 저항운동은 대다수 독일 국민들에게 외면받았다. 마르틴 니묄러의 시가 묘사하듯이 대다수 독일 민중들은 히틀러 총통에 열광하고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았던가. 온 국민이 아리안족의 새로운 구원자로 등장한 오스트리아 태생의 극우 파시스트에게 정신을 뺏긴 상황에서 저항운동을 벌이기란  무척 어려울 것이며 이에 동조하기도  쉽지 않았으리라.  그렇게 히틀러의 광기는 독일 민중을  전쟁과 인종학살에 침묵하거나 동조하도록 만들었다. 한 시대의 지배적인 광기에게 벗어나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그 광기에 저항하는 일이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전후 1951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이번 세기 독일이 가장 좋았던 시기는 언제였는가?"라는 질문에 대다수의 독일인(44%)이 히틀러의 제3제국 시기를 가장 많이 꼽았다.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

                         

                                - 마르틴 니묄러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내게 왔을 때

그때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줄 이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치시대 저항운동을 벌인 교회 지도자 마틴 니묄러의 말처럼 대다수 독일인들은 나치시대에 히틀러에 열광했고 그의 인종학살과 전쟁을 묵인하거나 이에 동조했다. 앞에 소개한 여론 조사에서 보이듯 히틀러의 제3제국에 대한 지지와 인기는 전후에도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렇듯 대다수가 침묵하고 동조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저항은 고사하고 반감이나 불만을 표출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히틀러 시대 반나치 저항운동을 벌인 시민들의 용기와 양심은 더욱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히틀러의 광기에 독일 국민 대다수가  휩쓸려 있을 때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양심과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따라 저항운동을 벌인 사람들이 있었다  이 책은 모두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며 맹목적으로 달려 나가던 히틀러 독일 시대에 '또 다른 독일'을 꿈꾼 소수지만 살아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소개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히틀러 시대 12년간 발생한 저항운동의 주요 사건뿐만 아니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노동자 출신 게오르크 엘저의 히틀러 암살 시도, '로테 카펠레'와 '에밀 아저씨' 등 박해받는 유대인들을 은밀히 도와준 유대인 구원 네트워크의 존재를 알려준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해서 읽은 대목은 전후 독일에서 이 저항운동이 인식되고 재평가되는 과정이었다. 해방 전후 우리가 일제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듯이 전후 독일 역시 나치 잔재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동서냉전의 이념 대립이 격화되면서 동독과 서독이라는 분단체제로 갈라진 상황에서 나치시대 저항운동의 평가와 재인식 역시 쉽지 않았던 듯싶다. 이는 마치 우리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역사를 이념적 편향에 따라 일부는 지우고 일부는 과대평가해서 수용했던 과정과 흡사하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과거와 오늘의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 <히틀러에 저항한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제대로 숨 쉬면서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이것이 옳다고 말하는 상황에서도 의심하기를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멈춤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한번 읽어보아야 할 책임에 틀림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