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키드 :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하는 40가지 이유
코린느 마이어 지음, 이주영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늘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도

남이 공표하지 않으면 확신하기 어렵다.

마치 기독교에 대해 그 동안 의문이 있었으면서도

도올이 요한복음 강의를 시작하며 기독교를 정면 비판하기 전까진

지식과 논리가 부족해서라도

마음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다.

난 어릴 때부터 여자로서의 의무로 여겨지는 것들이 싫었다.

당연하게도 5살 소녀가 나중에 자기가 커서 그 산고를 겪을 거란 걸 상상할 때

아-행복해 이럴 리는 없다.

조숙해서 그랬나, 나는 여자의 삶에 대한 현실을 초등학교 때 깨닫고 있었다.

그 땐 담임 선생님께 "저는 결혼 안 할 거예요. 아이도 안 낳을 거예요." 라고 했었다.

선생님은 피식 웃으시며 "크면 달라질 거다." 라고 하셨지만

결혼을 안 할 거라고 비장하게 생각하던 것은 많이 옅어졌지만

여전히 아이는 낳기 싫다.

하지만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난관이 많다.

정작 좋아하는 남자가 아이를 갖고 싶어하면 헤어질 수밖에 없고

결혼을 하더라도 시댁 부모님들이 싫어하거나

결혼하기 전 "난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게. 아이 갖고 싶으면 갖고 갖기 싫으면 갖지 말자." 라고

했던 남편이 결혼 후 마음이 바뀌어

"역시 안되겠어. 난 내 아이가 너무 갖고 싶어." 이러면서

이혼을 요구한다거나 다른 여자를 만나기로 결정한다면...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를 아이를 안 가져도 좋다는 데 동의한다고 해서

함께 할 수도 없으니

그래서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다는 것은 독신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중대한 결정이라

어지간히 자기의견이 강하지 않는 한에는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고집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동안 여자들은 굳이 자기가 애를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시부모님이 기다리셔서, 남편이 낳자고 해서

이런 이유로 낳는 것을 많이 봤다.

자기 몸으로 낳고, 자기가 그 뒷감당을 대부분 해야 하는 일임에도

아이를 낳는 것이 여자로 태어났으면 대세이다보니

특별히 자기가 원하지 않아도 "괜찮겠지.."하며 남이 더 강한 의견으로 밀어부치니까

그냥 묻어가는 거다.

나는 사랑을 받으면서 중산층 가정에서 풍요롭게 자랐으나

성격 문제 때문인지 사는 게 쉽지 않았다.

그걸 남들이 모른다는 게 문제라서

남들이 보면 멀쩡하니까 어서 순리대로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그러길 바라는데

나의 유전자 속에 있는 우울증이 대를 잇는 게 싫고

남자나 아이에 발목 잡히기가 싫다.

"제발 누군가 아이 낳고 싶지 않으면 낳지 않아도 좋다고 말해줘!"

라는 심정인데

이 책이 보인 것이다.

만일 내가 아이를 강하게 원하는 입장이었다면

남편이나 남자친구 없이 그냥 남자인 친구를 통해서라도

혹은 입양이나 가능한 별별 짓을 해서라도 아이를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주변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나는 기쁘게 내 선택에 만족하며 기를 것이다.

그러나 선택권을 자유롭게 누리려면

결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아이를 낳아도 좋고 안 낳아도 좋다

이렇게 담담하게 분위기가 반반으로 갈려야 하는데

주변엔 결혼을 해야만 한다! 아이는 가져야지!

이런 목소리만 있고

결혼 안 해도 돼, 아이 갖지 않아도 돼 이런 사람이 전무하기 때문에

나는 내 생각을 입 밖에 내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런 의견도 있을 수 있구나" 이렇게 다양한 의견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

어차피 "이상하다",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원하는 사람들이나 아이를 낳아 애국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어차피 우리 사회는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사고로 팽배해 있고

노키드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사회에 한 목소리만 남아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 한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이를 갖지 않아도 된다는 분위기 형성은 필요하지 않겠는가.

아이를 원하는 지 원하지 않는 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이를 가지라고 꾀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해보라며 시간을 주는 것이 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아이를 결코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야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할 이유가 40가지 뿐이랴.

또한 아이를 원하는 사람들에겐 아이가 사랑스러운 이유는 수백 가지가 넘을 것이다.

출산 문제는 사회의 몰고 가는 분위기 아래에서가 아닌

개인의 선택 문제가 되었으면 한다.

또한 여자로서, 자기가 원하면 출산, 원하지 않으면 출산하지 않기를 선택할 수 있으려면

보통의 결혼은 자연스럽게 출산이 기대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게 직업을 갖고 경제력을 갖추는 것이

자신의 고집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

책에서 첫 장부터 제시하는 '철저한 피임'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를 낳길 원하지 않는 미혼남녀들을 중개하는 사이트가 생겼으면 좋겠다.

어차피 아이를 원하지 않는데,

데이트 첫날부터 "전 아이는 원하지 않습니다만.." 하는 어색한 소리를 할 수도 없고

실컷 몇 개월이고 사겼다가 한 사람은 아이를 원하고 한 사람은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걸

발견해서 돌아서게 되면 서로 엄청난 시간 낭비를 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아이가 처할 미래사회의 부정적인 면도 고려를 해야 할 것이다.

지금 내 주변에는 창창한 젊은이보다는 근근히 사는 젊은이가 더 많다.

누나는 의사, 남동생은 MIT를 졸업한 과학고등학교 출신인 집안이 하나 있는데

그 집안 외에는 학원강사나 미취업자로 넘쳐나고 있다.

꿈은 커녕 생계도 제대로 해결 못하는 청년실업자들.

경쟁사회에 놓여짐으로써 현재의 본인의 처지보다도 자식의 처지가 곤란해질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해보기도 해야 한다.

나의 자식이 '아기'인 때는 단지 몇 년에 불과하니까.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쏠베 2008-05-05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기를 원치 않는 여자로서 이런 얘기를 꺼내면 늘 핍박만 받아왔습니다 ^^;
자기와 생각이 틀리면 설교하고, 함께 같은 길을 사이좋게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 하시는 분들에게 질려버렸습니다. 어째서 아기를 낳는 사람에게는 '왜 낳느냐?'라고 묻지 않으면서 안낳겠다고 하면 '왜 안낳겠다는거냐?' 하고 묻는지 모르겠어요.

나그네 2008-06-04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 저도 36세 미혼인데.. 지금이 가장 행복한것 같아요.. ^^*

zeesu 2008-11-19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공감가는 글이네요. 어렴풋이 갖고 있던 생각을 명확하게 글로 옮겨놓은 기분인듯 합니다. 흠... 책 내용은 어떨른지 궁금하기도 하네요~암튼... 명쾌한 글 즐거이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