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
손미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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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 여행작가, 인생학교 교장까지 화려하고 멋있게 보이기만 했던 손미나 작가가 번아웃에 빠졌다고? 책소개를 들었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이다.

하긴 얼마전부터 연예인 같이 인기가 많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번아웃이나 공황장애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더 이상 이런 말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열심히 살수록 더 늪에 빠지는 아이러니라니.

책을 읽으며 느낀 건 저자의 실행력이었다. 나는 심리상담이 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상담을 받지는 않았다. 그건 내 문제가 별거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고, 상담이 부담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마음에 문제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태국의 리조트에서 구루의 상담을 받았다. 이런 실행력이 그녀를 지금에 이르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구루와의 상담을 통해 그동안 자신이 자신의 마음에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모든 것을 접고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쿠바로 떠난다. 강제적으로 일을 할 수 없는 곳으로. 그리고 그곳에서 마음과의 대화를 위해 살사를 배우기 시작한다.

그렇게 모든 것이 좋아졌습니다라고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춤을 배우는 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왜 이렇게 안되지? 왜 이렇게 생각이 많지? 노력해도 안되는 일 아닐까? 자책한다.

하지만 그건 노력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춤을 가르쳐주는 쿠바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천천히 그녀는 조금씩 삶의 브레이크를 벗어던질 수 있었다. 그녀는 점점 의미 없이 반복되는 풍경과 소리에 푹 빠질 수 있었고, 거친 파도와 갈매기 날갯짓을 보며 말없이 앉아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두번째로 간 곳은 코스타리카의 산타테레사 비치. 그녀는 여기에서 서핑과 요가를 배운다. 그러고보면 어디를 가든 무언가를 배우는 것 같다. 나같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역시 뭔가 다르다. 책을 읽으며 나도 서핑에 관심을 가졌지만, 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다는 경고에 마음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서핑을 배우며 그녀가 깨달은 건 인생은 결국 자기가 살아내야 한다는 것. 스스로 판단하고 그 판단에 따른 결과도 모두 자신의 몫이라는 것이다. 아니 이건 내가 책을 읽으며 내 몸에 새겨야 하는 말이다.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계속해서 내 인생에서 도망친다면 결국 내 인생은 떠밀려갈 뿐이다. 내가 내 인생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서핑과 함께 한 요가에서 그녀는 또 스승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적재적소에서 그녀를 도와줄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녀의 복일 것이다. 요가는 지금 현재의 순간을 오롯이 느끼는 것이다. 나의 몸과 마음, 정신이 함께 머무는 것이다. 우리는 멀티태스킹에 익숙하다. 아니 그게 좋은 것이라고 여기며 살아간다. 책을 읽으며 유투브나 TV를 보는 게 일상이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요가 강사 스테파노는 그렇게 멀어져 있는 마음과 정신, 그리고 몸을 연결하는 것이 바로 요가라고 말한다. 그렇게 지금에 그 셋이 완전하게 머물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으로 평화로운 상태에 들어설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녀는 조금씩 조금씩 가르침의 의미를 깨달아나간다.

나는 To Do리스트 쓰기를 즐긴다. 계획을 세우는 것도 자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계획은 계획으로만 끝날 뿐 실행되지 않고, 그런 나를 자책한다. 그렇게 나는 미래를 막연히 희망하고, 과거를 후회하며 살아왔다.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낭비하고 말았다. 흥미로운 건 나만 그런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코스타리카의 평화로운 마을에도 석양 보러갈 시간도 없이 쉴 새 없이 계속 노를 젓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자기를 위해 내어줄 시간을 가지지 못했고 가진 것을 유지하기 위해 마음 졸였다. “결국 중요한 건 어디에서 살아가느냐가 아니었다. 쉽지는 않겠지만 도시에서도 욕심을 적당히 덜어내고 시간과 자유를 확보하고, 현재의 순간에 집중한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코스타리카에서 삶에 필요하지 않은 것들, 강박, 욕심, 집착을 덜어낸 후 그녀가 도달한 곳은 이탈리아중부의 소도시 스펠로였다. 그녀는 이 작은 도시에서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맞다. 여기에서도 배운다. 다만 이곳에서 배운게 이탈리아어 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나와 마친가지로) 항상 다이어트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막상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맛있는 걸 먹으면서 죄책감을 가지는 생활을 반복했다. 나와 다른 건 막상 그녀는 그렇게 살이 찐 적이 없었다는 것. 비만인 나와는 다르다. 아무튼 그렇게 그녀가 몸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의 시선 때문이 아니었다. 남들의 평가 때문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한 것이었다. 내가 나의 몸을 사랑했다면 남의 시선이 그렇게 신경 쓰였을까? 내 경우엔 어떨까? 있는 그대로의 지금의 몸을 사랑하는 게 지금의 몸을 유지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이어트를 통해 건강한 몸이 되는 것일까. 어떤 것이 맞을지 좀처럼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나의 마음은 계속 상처입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다시 구루 루드라.

여행을 끝내고 다시 태국에서 만난 구루 루드라를 찾은 저자는 달라진 그녀를 이야기하고 다음 단계를 배워나간다. 그건 바로 감정에 대한 수업. 정신의 끝없는 욕심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은 많아지고, 긍정적인 감정은 적어진다. 감정기복이 적었던 게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감정은 존재한다. 단지 표현하는 법을 잊었을 뿐.

또한 감정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소통하고 관계 맺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감정을 너무 억누르면 소통 능력이 떨어지게 되고 인생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왠지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내면아이와 내면부모가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고 하는데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하긴 쉬운 게 어디에 있을까. 그래도 저자는 오직 나에게만 집중하고 내 마음이 하는 얘기를 들어주는 시간을 통해 조금씩 변화해간다.

태국 코사무이에서 시작해 쿠바, 산타테레사, 스펠로 그리고 다시 코사무이로 돌아온 저자는 처음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해야 하는 일에 치이 삶에서 벗어나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나 자신을 찾기 위한 긴 여행보다 이처럼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짧은 시간이 아닐까.

하루 한 시간이라도 휴가라고 생각하고 시간을 보내보라는 얘기예요.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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