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 -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 Philos 시리즈 5
리차드 세넷 지음, 김홍식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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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읽으면서 어떤 끈에 의해 인도되었다 싶은 책들이 있다. 한참 어떤 생각에 빠져있을 때, 내가 막연하게 생각한 내용들을 더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풀어놓은 책들. 지금 함께 사는 여자친구와 합방하기 전날, 여자친구는 자가격리 중이었다, 교보문고로 Iptime을 사러 갔다가 당연히 책들을 집었다. 물론 아무거나 집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정한 이유가 있어서 집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 책의 서론을 읽어보면서 일종의 연결된 끈을 발견했던 것 같다. 나는 룸펜이며, 궁핍함과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느낌과 방법을 모름 사이에서 언제나 갈팡질팡하고 있으니까. 


2.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 현실과 동떨어져 발생하는 생각작용을 '사색'이라 칭하고, 현실 속에서 발생하는 생각작용을 '인식'라고 하자. 『장인』에서 말하는 생각하는 마음은 후자이다. 주체 외부의 대상물과 접촉하고 몰두할 때 발생하는 생각, 인식. 그 목적은 '일을 잘하기 위해 일을 잘하려는 마음'이다. 동어반복은 언제나 옳다. 


3. 따라서 중요한 건 손이다. 리차드 세넷에 따르면 손은 물질과 접촉하는 행위의 산물이다. 고기의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생각이 투영된 행위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세넷은 '아니말 라보란스', 한나 아렌트가 동물적 노동을 언급한다. 한나 아렌트는 노동에는 사유가 없다고 말했다는 데, 장인은 이에 대한 정치학적 반례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 때, 무언가를 예상하는 마음도 들어가고, 어떤 것을 끊임없이 더듬어 익숙해져가는 과정도 들어간다. 장인이 뭔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적어도 그렇다는 것이다.     


4.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적어도 적자생존식 경쟁시스템을 도입하는 집단에서는 장인이 살아남기 어렵다. 적자생존식 경쟁시스템은 속도와 표준화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 세계의 수많은 장인들이 고통받는 이유다. 장인은 빠르지 않다. 만지고, 만지면서 생각하고, 멈추고, 다시 만진다. 또 경쟁시스템에 따르는 평가기준도 장인에겐 맞지 않다. 장인의 지식이 사용되는 과정은 온전히 말로 그때 그때 표현될 수 없다. 대단한 이유가 아니라, 원래 말을 한다는 게 쉬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5. 어쨌든 나도 손을 가지고 그 손의 주인이기도 하다. 장인의 특징 중 하나는 만족과 불만족의 경계없이 계속 수정한다는 점이다.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서둘러 완성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에게도 손이 있고, 다행히도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몸이 있다. 가장 근거리의 물질을 찾아보고싶다.  


6. 두터운 스테이크를 먹는 느낌 같았다.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다양한 예시들과 고려들이 글을 채운다. 다소 길고 좀 많다 싶긴 하다. 한국어판의 판형이 좀 여유있게 나와서 그런 것도 같다. 책이 크고, 종이가 두껍고, 글의 여백이 꽤 있다. 이게 읽기에는 좋다. 하지만 읽는데 좀 오래 걸린다는 느낌도 준다. 원어를 접하지는 못했지만, 읽으면서 문장이 어색하다는 느낌은 많지 않았다. 읽기가 꽤 편한 편에 속하는 책이었다. 덕분에 꽤 의욕적으로 읽었다. 조금 더 짧고, 조금 더 간결했다면 더 완벽한 책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워낙 좋은 아이디어들이 많아 즐겁게 읽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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