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어로 철학하기 - 철학의 개념과 번역어를 살피다 메멘토 문고·나의 독법 2
신우승.김은정.이승택 지음 / 메멘토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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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철학은 지금 내가 가장 관심을 두는 분야들이다. 철학을 한다는 게 여전히 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사람들이 '철학'이라는 카테고리로 말하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경영학의 철학』같은 책이 있다면 그런 책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어쨌든 철학이 다뤄왔던 분야 중엔 실천 분야가 있고, 또 미학(감성을 다루는)이나 인식론(앎이 무엇인지를 다루는)같은 분야가 있으니, 내 삶의 해변 쯤에선 도움이 될 수 있을 것도 같은 예감이 있다. 한편 번역은 영어를 가지고 현실적인 상황과 관련하여 이래저래 생각하다보니 닿게 된 분야이다. 영어가 뭐 되게 재밌냐 하면 그건 아니다. 영어를 가지고 먹고 사는 일을 찾다보니 영어에 관심을 둬야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대체로 영어를 한글로 이해 가능하도록 옮기는 일이 꽤 수요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아가 번역도 일종의 창작 작업에 가까우니 나름 뭔가 만들어 낸다는 기분도 난다.

이 두 가지 분야를 정확하게 다루고 있는 책이 바로 『현대 한국어로 철학하기(신우승, 김은정, 이승택, 2022)』이다. 이들은 각종 논문들을 한국어로 번역해오던 '전기가오리' 사이트의 운영자 들이다. 직전에 썼던 고틀롭 프레게의 『뜻과 지시체에 대하여』를 번역했던 분들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책이 중점을 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철학에서 쓰이는 개념들을 쉽게 설명하기. 쉽게 설명하면서 실생활에 적용해보기. 개념들의 변화 과정을 통해 지금의 쓰임에 이르게 된 과정을 설명하기. 그리고 그 개념에 가장 알맞는 번역어를 찾아보기.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철학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기.

첫번째 장에서 다루는 개념이 논리학에서 쓰이는 말인 '타당하다'와 '건전하다'는 개념이다. Valid와 Soundness를 어떻게 번역할 것이냐는 것인데, 저자는 유효하다는 말과 견실하다는 말로 바꿔보는 게 어떨지 제안하고 있다. 이 책이 재밌는 점은 저자인 신우승씨가 새번역어를 제안하면 이에 대한 동의/비동의 의견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이 사람들이 어떤 부분들을 중시하는 지가 잘 나온다.

Valid와 Soundness를 어떻게 번역해야할지를 각자가 생각해보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겠지만, 생각해보면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 수 있다. 전제들이 참일 때 결론이 거짓일 가능성이 없는 논증을 타당한 논증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Valid란 말이 쓰이는 방식이 타당하단 말과는 좀 다르다. "The password is not valid" 라고 말한다면, '비밀번호가 유효하지 않다'는 말이지 '비밀번호가 타당하지 않다'는 말은 아닐테니까. 영영사전을 찾아봐도 Valid는 '유효한'과 '사실이나 이유에 기반한',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의미가 된다고 하니 유효하다는 말은 꽤 괜찮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Soundness의 번역어로 '견실성'을 제시하는데, 이것도 마냥 맞다고 하기에 애매하다. 내 생각에 Sound란 말은 '말이 됨'이란 말이다. '하얀 새는 모두 백조다. 저 새는 하얗다. 그러므로 저 새는 백조다.'라는 논증은 전제가 참이면서 결론이 거짓일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하얀 새가 모두 백조가 아니란 사실을 우리가 알기 때문에(말이 안됨을 알기 때문에) Valid 하지만 Sound하지는 않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럼 견실성이란 번역은 일상어를 잘 반영한걸까?

저자들이 번역어를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이 철학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한 시도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번역이 꽤나 서비스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보게 되는 부분은 철학언어와 철학계, 번역과 철학언어의 관계이다.

1. 철학 언어 또한 전문성을 가질 권리가 있다. 혹은 일상 언어로부터 멀어질 자유가 있다. 모든 학문 분야가 전문성을 가져가는데, 이건 어찌 막을 수 없는 흐름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적으로 철학적 용어를 사용하도록 하고 싶다면, 좀 더 다양한 개념을 일상에 적용하는 시도를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2. 번역과 철학언어의 관계에도 긴장이 있다. 번역은 생각보다 언어에 속박되지는 않는 영역이다. 번역학자들도 꽤 많은 사람들이 텍스트의 일차적인 의미에 집착하지 말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번역의 목표는 단순히 텍스트의 기계적 변환이 아니라 작가가 떠올렸던 관념을 가장 온전하게 살리고 전달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황석희씨의 번역이 훌륭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이런 거 아닐까. 그러니 표현을 엄밀하게 규정하려는 철학언어와 그런 것들에 구애받지 않으려는 번역 작업간에 약간에 긴장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저자들의 새용어 찾기 시도가 그렇다고 유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저자들이 이러한 시도를 한 것에 단지 철학이 일상적으로 활용되기만을 바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더 명료하고 솔직한 생각을 전개하기 바란다는 게 저자들의 바람 중에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건 꽤 어려운 일인 것 같지만.

그리하여 언젠가 헤겔의 글이 유효하고 말이 되도록 읽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러려면 철학과 철학계, 번역 작업 사이의 어떤 관계나 지향점 정립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 책은 꽤 중요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철학계와의 지향점 정립이 없다면 사회-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는 일이 되지는 않을까 싶다. 오히려 나는 철학적인 용어를 무분별하게 내 마음대로 바꿔 쓰는 게 마냥 정답은 아니구나 싶음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저러나, 이 책은 꽤 재밌으니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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