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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와 융, 영혼의 편지 -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두 거장의 마지막 가르침
미구엘 세라노 지음, 박광자.이미선 옮김 / 생각지도 / 2025년 11월
평점 :

생각지도 출판사의 도서제공으로 작성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내면의 소리를 듣는 삶
칠레 외교관 출신의 작가 미구엘 세라노(1917-2009)는 인도 근무 시절 힌두교와 동양철학을 접하며 큰 매력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는 외교관이자 사유하는 작가로서, 동양사상을 접목한 글을 꾸준히 발표했습니다.
이 책은 젊은 세라노가 노년의 두 거장, 헤르만 헤세와 칼 구스타프 융을 직접 만나 나눈 대화와 편지를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교과서적 설명이 아닌, 산문과 편지라는 형식을 택해 두 거장의 사유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단단한 이론보다는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고 이야기했는가’를 생생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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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와 융, 분야는 다르지만 같은 깨달음
헤세(1877-1962)와 융(1875-1961)은 동시대를 살았고 분야는 달랐지만, 결국 한 지점에서 만납니다. 그것은 바로 ‘내면의 깨달음’의 중요성입니다.
• 헤세는 ‘아브락사스’, 즉 전체적 인간으로의 성장을 이야기했고
• 융은 ‘자기(Self)’, 의식과 무의식의 조화를 통한 온전한 존재를 강조했습니다.
표현 방식이 다를 뿐, 인간이 스스로를 깊이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본질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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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으로 시선을 돌린 이유
이 두 거장은 모두 과도한 이성 중심 사회와 유물론적 세계관의 부작용,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경험했습니다.
또한 양자역학이 등장하며 기존의 인과론적 사고가 흔들리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그들은 동양철학의 직관적 사유에 큰 관심을 갖게 됩니다.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은 서양적 사고와 동양적 직관을 하나로 잇는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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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RD》와 연결된 개인적 사유
책을 읽으며 저는 자연스럽게 조지프 헨릭의 《WEIRD》가 떠올랐습니다.
헤세와 융 역시 WEIRD적 사고를 가진 인물들이며, 당시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많은 현상을 ‘신화’나 ‘상징’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는 융의 ‘집단무의식’ 개념과도 은근히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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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후, 우리는 뇌과학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얻었다
오늘날 우리는 뇌과학의 발전으로 심리학·철학의 여러 개념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헤세의 직관적 깨달음이나 융의 동시성, 그리고 그들이 깊은 영향을 받은 《주역》과 같은 동양 사상이 의미가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를 넓고 깊게 이해하려는 위대한 사유의 흔적으로 보입니다.
그 당시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들이 지금은 뇌과학이라는 언어로 다시 설명되고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로운 흐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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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남은 질문과 새로운 관심
이 책은 이전에 읽은 책들과 통합되어 저에게
역사 문화의 큰 흐름을 조망하는 관점을 심어주었습니다.
역사적 사건이 새로운 이론을 낳고,
그 이론이 과학을 발전시키고,
과학이 다시 사회와 경제를 바꾸어 놓는 거대한 순환 말입니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니,
저 또한 주역을 한 번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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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헤세와 융을 좋아하는 분
• 서양 지성사가 동양사상과 만나는 지점을 알고 싶은 분
• 인물의 편지와 산문을 통해 철학을 가볍게 접하고 싶은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