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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거인 ㅣ 테미스 파일 1
실뱅 누벨 지음, 김명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어렸을 땐, 공상 과학 만화영화가 유행이었다. <은하 철도 999>, <미래 소년 코난> 같은 것 말이다. <은하 철도 999>에서는 우주를 달리는 기차가, <미래 소년 코난>에서는 거대한 로봇이 미래의 발달된 기술로 만들어진 문물인데, 이 두 첨단 문물이 황폐해 보이는 주변 환경과 너무나 대비되어 보였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미래 기술은 인류와 공존할 수 없을까를 고민했던 것 같다.

한동안 이런 류의 SF를 거의 접하지 못했었는데, 오랫만에 거대 로봇이 나오는 SF를 접했다. 실뱅 누벨의 <잠자는 거인>이 바로 그 책이다. 2015년에 아마존에 나왔었다는데, 우리나라에는 번역본이 왜 이제야 들어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정말 재미있게 읽은 SF이다. 단순히 우주와 과학 기술의 발전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외계의 문물을 만났을 때 인간의 호기심과 인간적인 정서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해 주는 SF이다.
그런데 이렇게 흥미로운 소재보다 더 흥미로운 것이 있었다. 바로 서술 방식.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적으로 인터뷰어의 경험 기록 파일로 이루어져 있다.(몇 개 되지는 않지만 간혹 다른 등장인물이 컴퓨터에 데이터로 기록하는 일기도 있다.) 그래서 모든 서술이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대화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배경묘사가 부족해 배경을 이해하거나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가 부족해 등장인물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두 묘사 모두 일반적인 서술 방식에 비해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래서 군더더기 없는 대화로 이루어진 문체가 술술 읽혔다.
인물 간의 관계 설정도 재미있었다. 어찌 보면 국가를 넘어 지구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일을 꾸미는데, 이 일에 관계된 사람이(그것도 군인이라는 사람이!) 대의를 저버리고 사랑 때문에 일을 그르칠 뻔 했다는 것, 개인의 의욕과 욕심 때문에 대형 사고를 치는 모습들이 나온다. 이 인물들은 사실 로봇을 연구할 수 있는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이라 보통 사람들의 영웅이 될 사람들인데도 인간적인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후에 외계 생명체와 인간의 차이로 부각될 듯하다.) 그리고 악역도 처음부터 '너 악역!'이라는 느낌이 아니라 처음에는 악역이 아니었지만 점차 악역의 면모를 드러내 주는 전개가 극의 긴장감을 높여 주었다.
<잠자는 거인>에서는 외계 생명체가 남긴 거대 로봇을 찾아내는 과정과 등장인물의 소개가 주라서 약간 잔잔한 면이 있지만, 2권에서 본격적으로 외계 생명체가 나올 거라는 언급이 있어서 기대감을 더 높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