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정원의 철학. 어찌보면 정말 매치가 안 될것 같은 요소들이 모였다. 베란다에서 정원을 가꾸고 그곳에서 철학을 찾는다라. 철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떠로으는 생각은 어렵고 딱딱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처음 이 책을 집어 들었을때 작고 예쁜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운을 떼는게 어려웠다. 작가는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식물을 키우면서 자신이 경험하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화분을 하나씩 사오게 했다. 사물함 뒤에 자기만의 화분을 하나씩 두고 키우게 하신 것이다. 그 식물에게 이름도 지어주고 물도주고 광합성도 시켜주고, 그렇게 날마다 관심을 가지고 돌보게 하셨다. 그때는 놀기에도 바쁜에 화분에 신경쓰는게 귀찮았고 별로 이쁘지도 않은 식물을 가꾸어야 한다는게 그리 좋지만은 않았었다. 하지만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뿌듯해 지기도 하였고, 시들시들해지면 내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지금에서야 선생님의 그 깊은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소중하게 키워줄 대상을 심어줌으로써 책임감을 키워주고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 위함 이었음을 이제서야 깨닫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우리집에만 오면 식물들이 기를 못펴는데 무었이 문제였던 걸까. 예쁜 화분들을 집에만 가져오면 시들시들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게 너무 힘들었다. 지금 우리집에도 몇개의 화분이 있다. 물론 아무데서나 잘 자라고 쉽게 키울 수 있는 그런 식물들일 뿐이지만 죽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주고 있는 그녀석들이 너무 대견스럽다. TV 옆에서 쑥쑥 크고 있는 산세베리아를 비롯하여 3년전에 선물 받았던 토피어리에서 자라고 있는 피쿠스 푸밀라. 가끔 엄마에게 너만 밥 먹고 토피어리에겐 물도 안 준다며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잘 자라고 있는 그 녀석을 보면 괜시리 웃음이 나온다. 이렇게 식물과의 교감을 통해서 삶을 배워가고 자신을 알아간다는 것이 너무 좋아보였다. 살아있는 것을 다루는 일이기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안다. 제때에 분갈이도 해줘야 하고 물도 꼬박꼬박 주어야 하고. 손가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 마음의 정화를 이루고 잠시나마 안식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정도의 수고로움이야 충분히 감수할 수 있지 않을까. 철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그 자체가 철학인 것이다. 고상하고 심오해야만이 철학이 아닌 것이다. 너의 그 생각이 곧 철학이고, 나의 이 생각이 곧 철학인 것이다. 오늘은 우리집에서 잘 자라주고 있는 그 녀석들에게 사랑스러운 이름을 지어줘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