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프스키와 뒤러 - 르네상스 미술과 유럽중심주의
신준형 지음 / 시공사 / 2004년 1월
구판절판


투시법은 실제로 객관적인 세계가 존재하는 방식을 반영한 게 아니다. 우리의 안구가 평면이 아니라 곡면이기 때문에 실제 우리의 눈에도 세계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결국 투시법은 세계와 거리를 두고 그것을 수학적으로 분석하고 범주화해서 재현한다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행위다. 세계를 재현한다는 건 세계를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한다는 뜻이며, 결국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배욕을 드러낸다. 따라서 투시원근법은 인간이 세계를 보는 자세가 두려움과 경외에서 자신감과 지배욕으로 바뀌었음을 뜻한다. .. 인체비례에 대한 새로운 법칙은 마찬가지의 현상이 인간이 세계를 보는 관점뿐만 아니라 타자를 바라보는 데도 적용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세계와 타인을 바라보는 화가의 눈이 권력을 가지게 되었으며, 화가를 통해서 대상을 보는 관람자 역시 권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188쪽

파노프스키는 중세의 이 시기에 와서야 학술적인 글이 분할과 세부 분할의 체계를 가지게 되었음을 지적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 유명한 <신학대전>의 예를 들면, 전체는 파르테스로 나뉘고, 이것은 다시 멤브라, 콰이스티오네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더 작은 단위인 아르티쿨리로 나눠진다. 이는 분명 전체를 층위와 단계의 반복되는 구조로 나눠서 사물에 체계와 질서를 부여하려는 심리적 패턴의 발현이다.
이런 현상은 당시의 건축에서도 보인다. 건축 역시 공간을 체계적으로 나누고 부분들을 서로 균형 있게 대치시키는 데 몰두했다. 이 시기 교회의 양식을 보면 마치 스콜라 신학의 저서와 같이 일정한 분할과 세부 분할이 전체 건물에 규칙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192쪽

전통적인 책에서는 오른쪽 페이지인 렉토recto가 특권을 가지는 곳이다. 우리가 책을 펴면, 오른쪽 페이지로부터 새로운 장이나 중요한 부분이 시작하고 이것을 넘겨 그 뒷면인 버소verso를 보게 된다. 뒤러는 렉토에 자신의 그림을, 그것도 페이지를 가득 메우는 큰 그림을 넣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다. 전통적으로 책이란 말씀에 대한 것이지, 도화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뒤집혔다. 화가가 주도하는 책이 나온다는 것, 책의 주도권이 텍스트에서 그림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문화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심각한 징후가 아닐까?
글과 그림의 문제는 사실 인류의 문화사를 놓고 볼 때 매우 흥미로운 주제다. 인류의 문명은 우선은 그림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다가 문자가 발명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익히게 되면서 점차 글이 지배하는 세계로 바뀌었다. -205쪽

결국 북유럽에서 가장 르네상스적이라는 뒤러가 가장 르네상스풍으로 그렸다는 <장미화관의 축제>가 내용과 형식 모두 북유럽 전통에 기반한다는 사실, 이것은 결국 북유럽 르네상스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와는 다른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가 아닐까?-219쪽

파노프스키가 흔히 르네상스를 고대, 중세와 비교해 더욱 발전되고 완성에 가까워진 시기로 보고 있는 것은 헤겔의 역사주의와 매우 비슷하다. ... 결국 헤겔이나 파노프스키나 미술이라는 징후를 통해 역사의 진보를 증명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226쪽

파노프스키의 투시원근법 연구는 헤겔이 견지한 역사 발전의 변증법적 합법칙성과 매우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우선 고대 그림에 나타나는 초보적인 원근 표현이 헤겔이 말한 테제라고 볼 수 있고, 이것이 중세 기독교 사회가 시작되면서 사라지고 매우 비공간적인 미술이 득세하게 된 것은 일종의 안티테제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르네상스 시기에 와서 고대의 테제가 부활된, 그러나 단순한 재생이 아니라 훨씬 이론적으로 발전된 법칙으로 나타난 것은 신테제인 셈이다. -227쪽

저서 말과 사물에서 푸코는 우리가 지식의 대상을 종류에 따라 분류하고 그것들을 유사점과 차이점에 따라서 유와 종으로 묶는, 그래서 나름대로 연구 대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방식을 타불라라고 부른다. 문제는 우리가 타불라를 통해 어던 대상을 제시할 때 비로소 대상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이해라고 인정되며 따라서 학문적인 권위를 부여받는다는 점이다. 이처럼 한 문명이 자신의 논의 대상을 분류하고 분석하고 재현하는 데서 발견되는 인식론적 구조를 푸코는 에피스테메라고 부르고, 에피스테메를 밝혀내는 작업을 수사학적으로 고고학이라고 표현했다. -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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