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유산
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송태욱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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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유산 속 1차원 이야기는 병든 어머니를 간호하는데, 남편은 불륜 중이며 문제를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기에 자신의 삶이 고통스러운 여인이 주인공이다. 더 깊은 차원의 이야기는 일본 상류층의 삶, 서구 문화의 모방을 통해 남들과 다른 우월의식을 뼛속까지 간직한 이중성을 발견한다. 딛고 있는 발은 일본 안에서도 평범한 수준이지만 혼인, 가문, 직업, 경제적 수준, 문화적 지향점 등을 통해 '귀족'과 같은 부류가 되고 싶어한다. 화자인 미쓰키는 신분 상승을 꿈꾸는 어머니의 허영심과 뻔뻔한 욕구,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안면몰수한 행위들에 선을 긋는다. 어머니의 욕구를 대신한 나쓰기로 인해 차별받지만 오히려 어머니의 관심 밖이었기에 독립적인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언니와의 차별 속에서 미안한 마음을 가졌던 어머니가 미쓰키에게 기한을 둔 유학을 보내준다. 그곳에서 남편을 만나고 자신은 프랑스 유학이 계기가 되어 귀국 후 대학 강사로 자리한다. 결혼은 도피처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제자리이다. 남편은 가난하지만 자신을 귀족의 영애와 같은 존재로 알기에 한없이 아끼고 사랑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남편은 몇 번의 불륜 관계를 가졌고, 어머니에게 다시 돌아가는 길을 택할 수 없기에 그가 잠시 흔들린 것으로 믿고 싶었던 것이다. 직면하지 않은 그녀에게 아버지의 죽음, 곧이어 어머니의 병환은 현실을 더욱 외면하게 만들었다.

탐욕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은 비로소 자신을 들여다 볼 기회를 준다. 그렇기에 부고는 곧 자신의 발목이 풀리는 해방감이었다. 이제 남편과의 관계를 정리할 차례이다. 남편과 내연녀 간에 주고 받은 메일을 읽으며 자신은 깨닫는다. 처음부터 사랑받길 원했으나 받지 못했으며 자신 역시 사랑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토록 원망하고 저열하게 바라봤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산, 금전적인 유산 외에도 생활에 뭍어난 그것들이 자신에게 남겨진 것이었다.



■ 아무리 청소하고 탈취제를 뿌려도 병원에는 질병과 노화가 소용돌이치며 발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저승 냄새가 가득하다. (59쪽)
■ 어머니는 늙어 미치기 전부터 미쳐 있었던 것이다. 대체 어디까지가 어머니의 타고난 성격 탓이고, 어디까지가 성장과정 탓일까. (87쪽)
■ 미쓰키는 언니에 비해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다. 불공평한 대우는 태양이 동쪽에서 뜨는 것과 같은 정도로 규칙적이었다. (111쪽)
□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 내 만연했던 근대적 사고방식의 양육, 생활 태도이다. 가족의 윤리적 테두리 안에서 적당한 효도를 보이고 적당한 차별을 당연한 듯 수용하며 적절히 미워하며 갈등하는 모습이다. 가족 범주 안에 속하고 싶으면서도 벗어나고픈 이유이기도 하다.



■ 체리가 익어갈 무렵, '처녀'는 기고만장해진다. (151쪽)
□ 어머니를 향해 비난하지만 젊음을 내세워 부모에게서 받은 금전적, 환경적 유산을 배경으로 남들보다 누린다. 비난의 대상과 닮은 자신의 모습이다.



■ 만약 그후 어머니의 이상함을 맞닥뜨리지 않았다면……맞닥뜨리고 정력을 빨아먹히고, 나아가 슬픔에 잠긴 세월을 보내지 않았다면, 지금의 미쓰키가 되지는 않지 않았을까. (179쪽)
■ 지하철에서 흔들리며 앞으로 자기 인생은 이런 일의 반복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예감, 어렸을 때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방치되어 자랐는데도 앞으로는 자기 어깨에 친정이니 가쓰라가의 성가신 일이 덮쳐오지 않을까 하는 예감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183쪽)
■ 그때 처음으로 명확하게, 또 불타듯이 어머니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똑똑히 의식했다는 점이다. (191쪽)
□ 인생의 합리적 원인과 결과가 어디 있을까.



■ 결심은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만두는 일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욕망이 겨냥하는 곳을 이전보다 조금 낮게, 그러면서도 혼자 할 수 있는 것보다는 여전히 조금 높게 다시 설정한다. 그 결과 딸들의 부담은 줄어들지 않았다. (197쪽)
□ 지리멸렬한 감옥인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고픈 그녀의 욕망이다. 몸에 이어 영혼까지 잠식된 후에 어머니의 죽음은 선고된다.



■ 21세기 초에 히라야마 미쓰키라는 오십대 여자가 있었고, 젊은 여자 때문에 남편에게 버림받을 처지라는 기록이 거의 영구히 남는다. 이 무슨 굴욕이란 말인가. (293쪽)
■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335쪽)
■ 게다가 그것을 알면서도, 알고 있는 사실과 대면하려 하지 않고 지금껏 살아오고 말았다. (376쪽)
■ "어떻게 할거야?" "내가 먼저 이혼 이야기를 꺼내려고." (446쪽)
□ 어머니의 죽음 뒤, 지친 몸을 쉬고자 여행을 떠난다. 이전에 어머니와 함께 머물던 호텔에 장기 투숙을 한다. 1부에서 다뤘던 사건과 생각을 되짚어 자신의 관점으로 다시 본다. 흐르는 사건에 내던져진 모습에서, 이제 자신을 주체로 들여다본다. 그것에서 '결혼'에 '사랑'이 없었고, '원망'하느라 '자신'을 잃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남편의 태도에 따라 결혼의 지속 여부를 결정하지 않게 된다. 스스로 '이혼'을 택한다. 삶의 태도와 지향점은 다르지만 어머니의 부끄러울 줄 모르던 부단한 상승 욕구와 같은 '의욕'으로 표출된 결정이다. 비로소 '내'가 되는 미쓰키다.





□ 화자의 변화 외에도 일본 근대 사회의 모습, 해체된 가족의 모습, 여성 해방 등을 여실히 보여준다. 초고령사회인 한국과 일본에서 공감될 부분이 많다. 또한 소재는 신파극을 시사하지만 인물의 건조하고 딱딱한 시선은 섬뜩해진다. 가족, 결혼 등 단어의 정의된 이면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삼대를 걸친 일본 사회의 모습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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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닌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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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아, 불쌍한 프닌'. 외모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표현, 어설픈 말과 행동. 머리와 가슴에 담은 고결한 생각은 완결되지 못한 영어로 표현되면서 상대의 머리와 가슴, 그 어디쯤에도 닿지 못한다. 그저 입가의 작은 비웃음만 남길 뿐이다. 그는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대학에서 강의로 생업을 유지하지만 언어의 간극을 극복하지 못하고, 러시아 문학에 대한 인기 역시 그닥 높지 않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감성은 오히려 그를 꾀짜로 보이게 만든다. 이야기 대부분(거의 6장에 이르기까지) 이방인의 타국 적응기, 고난이지만 헤프닝으로 웃프게 만드는 에피소드다. 또한 전처와 헤어지고 재회하며 다시 버림 받는 과정도 애처롭다. 훗날 전처의 아들 빅터와 만나는 부분까지 그는 안타까울 뿐이다.



반전은 작가 나보코프의 시선, 7장 부분이다. #프닌_의 삶을 뒤집어 보게 만든다. 그의 생각과 가치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이국에서 유일한 안정감을 주었던 웰던의 삶을 정리한다. 삶과 자신에게 투명했고, 사람에게 진실되었다. 작가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도 같이 웃었지?. 어쩌면 가까운 이웃인 누군가에게도 우리는 같은 시선을 던졌을지 모른다. 헤아리기보다는 보이는 것을 전부라고 착각하여 기초적인 문법을 무시한 단어의 대화에서 낮추어 보았고, 평가하고 판단했을 것이다. 실제 나보코프 작가가 '롤리타'로 성공 후, 미국을 떠나 유럽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보며, 작가의 이야기가 투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양말은 진홍색 바탕에 연보라색 마름모무늬가 있는 헐렁한 모직이었지만, 구두는 보수적 검정색 옥스퍼드화였다. 그가 바지 안에 내의를 입을 때 늘 끝단을 접어 양말에 넣고 양말을 가터로 고정했던 것은 그의 인생에서 고루한 유럽 시절에 해당하는 1940년대 이전까지였다. (8쪽)

□ 한 쪽 반 분량에 이르는 프닌의 외모 묘사. 구시대적이고 고지식하며 외부의 시선과 전혀 타협하지 않을 듯한 외향임을 소설 시작에 못박아둔다. 망명한 구시대적 인사, 고루함이 뭍어나는 고집스러운 발음, 시류에 얽히지 않겠다는 강의 주제 등은 프닌을 향한 시선이다. 결코 곱지 않다.



■ 옷솔이 단추에 부딪힐 때마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조앤의 세탁기와 내연관계였다. 상대에게 접근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그는 번번이 위반의 현장을 들키곤 했다. (55쪽)

□ 낯설고 독립적이기 어려운 환경 속 인물, 자신 주변에 대한 호기심을 타인은 이런 시선으로 바라 본 것이다. 비아냥과 조롱이 담겨있다. 친절과 배려가 부족한 성마른 그들. 어쩌면 당신과 나.



■ 이것이 전부 리자의 아이디어였다는 점 -"그러면 간단해지니까, 아시잖아요, 우리의 아이를 위해서"("우리"는 세 사람을 가리키는 듯했다). (72쪽)

□ 전처와 전처의 현 남편, 그들 사이의 아이. 미련함과 안타까움의 절정.



■ 그는 그녀를 배웅했고, 돌아올 때는 걸어서 공원을 가로질렀다. 붙잡는다니, 곁에 둔다니,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그렇게 잔인한, 그렇게 저속한 그녀를, 그렇게 눈부신 푸른 눈, 그렇게 한심한 시, 그렇게 살찐 발, 그렇게 불순하고 건조하고 야비하고 유치한 영혼을 가진 그녀를 어떻게. (85쪽)

□ 고루하지만 품위를 잃지 않는 그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꺼내서 상처가 되드니 담아두는 것을 선택하는 프닌.





■ "나 이러면 안되는데, 으흐, 바보같이." 프닌이 혼잣말을 했다. 그의 눈물샘이 뜨거운, 어린애 같은, 걷잡을 수 없는 액체를 공연히, 어처구니없이, 창피하게 분출하고 있었다. (123쪽)

□ 향수였을까, 소비에트 다큐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면서 그는 눈물도 쏟는다. 프닌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읽을 때는 괴짜 같은 면모가 7장으로부터 다시 읽게 되니 그리움, 진실됨이 느껴진다.



■ "제가 정확한 날짜를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프닌은 부서진 햇빛 속에서 눈을 끔뻑러리며 말했다. (183쪽)

□ 『안나 카레닌』을 읽은 대화 속 인물이 오류를 지적하자, 프닌이 바로 잡고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이 땅에 살지만 이해받지 못하고 고국을 향한 그리움과 자부심, 자신의 일에 대한 자긍심이 뭍어난다.



■ 독채의 가장 기분좋은 점 가운데 하나는 조용함, 천국 같은, 시골 같은, 철저히 안전한 (그의 이전 거처들의 임대 공간에서 그를 육면으로 둘러싸던 집요한 불협화음들과 대조되는) 조용함이었다. (215쪽)

□ 타인과의 날선 경계로 인해 날카로워진 그의 모습, 사람들은 그마저도 외톨이, 아웃사이더로 치부한다. 내면을 더 들여다보고 이해하지 못했다.



□ 프닌의 대학 교정 생활에 대한 묘사는 소설 스토너를 떠올리게 했다. 무지한 농부의 삶에서 문학을 사랑하고, 세상에 대한 도전, 사랑의 실패 등으로 흔들리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걸어가는 한 인간의 생애. 반면 프닌은 개인이 저항할 수 없는 사회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내동댕이쳐진 곳에서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오히려 조롱과 비난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유지한다. 구지식인으로서 고루하고 고지식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는 스스로 삶에 솔직하고 진실되었다. 소설의 차이는 등장인물의 가치관보다 타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의문을 오히려 던지고 있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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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라울 뒤피에 관한 이야기
이소영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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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 #뒤피_의 그림은 윤곽을 그리는 붓질 따로, 면을 칠하는 색따로 이미지로 기억될 것이다. 세밀화보다 크로키 작품처럼 빠르게 그려내느라 붓질이 화면을 다 채우지 않는 듯한 장면. #이소영 작가의 #라울뒤피 이야기를 들여다보니 이건 의도였다. 인상파를 염두한 초기 작품, 야수파와 입체파를 담아냈던 다음 작품 등 시기 마다 영향을 받지만 자신만의 색깔로 나아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선과 색 사이의 시차는 화가의 작업 과정을 짐작케 하고 구아슈와 수채가 주는 불투명의 차이는 동양의 수묵화와 같은 농도를 느끼게 한다. 미술에 대한 전문적인 해석이 붙지 않아도 그림이 주는 현대적 감각, 산뜻함이 매력이다. 특히 <베니스의 에스클라본강>, <전기 요정>의 석판화는 딱 #뒤피_이다. 밝고 투명하며 인생의 화창한 날을 담아내는 이미지를 듬뿍 갖고 있다.

​하지만 그의 경제력, 활동 시기의 배경은 어렵고 힘든 시기이다. 그는 활동 전 영역에 그런 어두움을 담아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술 활동이 어둠의 그림자를 밀어내고 환하고 밝은 것을 차지하도록 했다. 활동 당시, 회화 외 패션, 공예, 표지 등 장식 예술에도 활발하였다. 화가로서 생계 유지 차원이기도 했지만 모든 영역을 회화와 분리하지 않았던 뒤피의 노력은 현재에 더 빛을 발한다. 작가와 브랜드가 콜라보를 통해 대중에게 다가서는 영역의 선구자인 셈이다. #라울뒤피_의 전 생애를 통해 그가 보여 준 역동적인 삶의 통찰력을 작품으로 보여준다. #이소영 작가 특유의 간결하고 담백하면서도 작품 자체로 잡아끄는 에세이 같은 뒤피 이야기, 그의 작품만큼이나 투명하고 밝게 빠져든다.

​■ 1951년 뒤피는 피에르 쿠르티옹과의 좌담회에서 마티스의 오달리스크와 마르케의 활동이 아쉬운 점을 비판하기도 하는 등 자신이 애정했던 미술 양식이나 선배일지라도 아쉬운 부분에 있어서는 솔직하게 표현했다. (98쪽)
□ 마티스를 애정했던 흔적은 그의 그림 곳곳에서 발견된다. 애정어린 시선과 그림에 담아내고 싶은 의지는 마티스와는 또 다른 영역을 구축해 가는 과정이 되었다.

​■ 신화나 우주 속 주인공이 있는 바다를 그릴 때는 상상력으로 구축한 세계를 전개해나갔다. 이 작품에는 뒤피 특유의 파도를 삼각형으로 기호화하는 패턴이 들어가 있는데, 파도를 표현할 때는 이처럼 기호화된 형태를 사용하는 것을 즐겼다. 마치 악보 위의 음표처럼 파도가 선율을 가지는 듯하다. (107쪽)
□ 음악, 회화, 공예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활동을 확장한 뒤피. <르아브르 항구 입구> 1924-26 작품은 화면 오른쪽을 차지하는 8분 음표와 같은 파도들이 발랄하게 자리하고 있다.


■ 수채화는 꽤 까다로운 장르다. 쉽게 수정할 수 없고 조금만 잘못하면 탁해 보이기 일쑤다. 하지만 뒤피는 선묘의 겹침과 수정하는 과정도 감상자가 볼 수 있게 작업했다. 보는 이로 하여금 화가가 이 그림을 어떤 순서로 그렸는지 과정을 알 수 있게 함으로써 작업에 참여하는 기분이 들게 한 것이다. (125쪽)


■ 당시 여성이 미술 작품을 거래한다는 것은 가족과 사회 양쪽의 반대를 이겨내야 했고, 매번 전문적이지 못하다는 오해를 샀다. 앞서 말했지만 아트딜러 역시 볼라르와 칸바일러처럼 남자들 위주로 역사에 남아 있다. (140-141쪽)
□ 베르트 웨일은 뒤피의 작품을 최초로 구매하고 전시한 여성 갤러리스트였다. 파리에서 피카소와 마티스의 그림을 사고팔기도 했다. 뒤피의 유명세에는 새로운 시각과 도전의식이 넘치는 베르트 웨일과 같은 인물도 한 몫을 했다.


■ 여러 식물과 동물, 자신의 회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소재들을 모티브로 패턴을 디자인해 원단을 만들며 장식 미술과 의상 분야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당시 몇몇 비평가들은 뒤피의 이런 활동을 '장식 미술가'라고 낮게 평가했지만, 뒤피는 개의치 않았다. (195쪽)
□ 그의 직물 패턴 작업 결과물은 굉장히 현대적이다. 100년 뒤 메종 마르지엘라의 봄·여름 쇼에 그의 패턴이 활용될만큼 감각적이다.


​■ 인상파가 빛의 움직임으로 미술에서 혁명을 보여줬다면 야수파는 색으로, 입체파는 형태로 혁명을 전개했다. 뒤피는 이 세 가지 화파들을 자신의 내면에 넣고 평생을 자유자재로 그때그때 회화의 무기로 변형해 구사했다. 하지만 뒤피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투명성과 과정을 보여주는 선묘다. (229쪽)
□ 동시대 활동 작가의 작품보다 밝고 투명함이 인상파와 야수파를 닮았지만 다른 점이다. 붓질의 경쾌함과 색과 면을 따라가지 않는 선의 특색이 입체파와 유사하지만 차이점이다. 그 자체로 뒤피 스타일이다.


■ "그림을 그린다는 건 사물의 자연의 외형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 사물이 처한 현실에 내재한 힘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이다. " (265쪽)

■ 뒤피는 삶이 고뇌에 찰지라도 스스로의 예술에 그 고통을 절대 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처한 현실이 어둡고 힘들 때마다 뒤피의 작품을 바라보면 삶에 긍정의 시선을 던질 수 있게 된다. (338쪽)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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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빗
고혜원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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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비극의 역사 중 하나, 6·25 전쟁. 부산을 임시 수도로 하여 낙동강 전선을 수호하기 위해 애쓰던 국군. 희망이 되었던 것은 인천상륙작전. 적도 예측할 수 있었던 반격의 장소이기에 적의 시선을 흐트러놓기 위해 군산, 삼척 등으로 유인. 마지막 포항 장사리는 실제 유인이었고 학도병의 처절한 희생이 있었다. 그 결과, 10월 1일 서울 수복 후 28선을 넘어선 것이다. 하지만 중공군의 개입은 또다시 전세를 어지럽혔다. 미군은 두 번의 전쟁 중 스파이를 잘 활용했지만 한국전쟁에서는 자신의 특기를 살릴 수 없었다. 중국 공산당 건국 1년만에 참전하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던 미군은 일명 Operation rabbit을 실시한다. 조선인 소녀들을 훈련시켜 피란민 사이에 들어가 정보를 모으고, 중공군이 흩어진 자리에 가서 자료를 모아오도록 했다. 이는 평안도 방어에 기여 한다. 하지만 함경도의 경우, 오히려 포위되고 급하게 탈출해야 했으며 우리가 익히 아는 흥남부두 철수작전이 펼쳐지는 시기이다. 역사 속 실재한 이들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고, 실체를 잘 알지 못한다. #고혜원 작가의 글 속에서 약자로서 맞이할 수밖에 없는 전쟁의 참상, 전쟁의 야만성, 해방된 국가를 위해 힘쓴 이들의 노력 등을 엿볼 수 있다.



■ 마음이 약한 게 아니라 인간적인 겁니다. 최대희 소령은 그 둘을 종종 헷갈리시더라고요. 전쟁을 핑계 삼아 인간성을 버리진 마십시오. 그런 건 승리가 아니라 학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22쪽)

□ 양극단을 오고가는 대화 모두 공감된다. 인간적인 판단으로 인한 조치가 전쟁을 길어지게 만든다면 현명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승리가 빠른 종전이라는 명분 아래 사람의 희생을 쉽게 판단한다면 전쟁 놀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등장 인물 가운데 최대희 소령, 승희는 가족의 죽음으로 인해 상대의 복수심을 일념으로 전쟁에 임한다. 무고한 희생도 필요하다는 판단. 작금에도 과거는 잊고 현재와 미래의 이익을 위해 과거사 청산과 같은 이야기는 진부하다, 지나친 민족주의 감성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과거를 바로잡는 일이 경제를 발목 잡는다는 명분을 애정했던 이들 대부분 친일에 앞장섰다. 역사는 반복된다.



■ 적군의 총구 앞에서 살아와 아군의 총에 죽는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것이 있을까. (28쪽)

□ 일제 치하는 선과 악이 어느 정도 구분되었다. 하지만 6·25 전쟁은 민족끼리 총구를 겨누었다. 지금도 이 땅에 닿지 않은 이들을 등에 업고 민족에게 총구를 겨누는 이들이 있지 않은가. 상흔은 오래 간다.



■ "알고 있어. 그걸 숭고한 희생이라고 하는 거다." "예?"

"그들의 희생으로 전쟁이 승리한다면 더할 나위 없지."

"다 살아야죠! 그게 진정한 승리 아닙니까?"

"다 살아? 그게 전쟁터에서 가능한 일이고 생각하는 건가?" (94쪽)

□ 그 희생에 어린 소녀, 어린 학생이 나섰다. 피로 일궈낸 이 나라의 역사를 가벼운 경제 논리, 현실성을 내세워 반박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존재하지도 않을 현실의 현실성.





■ 군번줄도 없고, 급여도 받지 않고, 의심이란 의심은 다 받고 있으면서, 이렇게 또 임무를 하러 오다니. (107쪽)

□ 미래라는 댓가를 위해 과거는 잊으란 말이 사무친다. 이름도 없이 잊혀간 이들이 그려낸 이 나라의 역사가 이것은 아니다.



■ 아직 홍주가 돌아왔는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은데, 그곳에 폭력 작전을 수행한다는 결론이었다. 미군도, 다른 켈로 부대 참모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적진에서 돌아오지 않은 래빗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197쪽)

□ 전쟁의 야만과 비인간성이 드러난다. 대의가 곧 정의가 되는 시간, 전쟁의 시간이다. 그래서 비극이다.



■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나?" "…… 2월 4일 아닌가요?"

"오늘이 입춘이야. 봄이 시작됐다는 거지."

홍주의 차가운 손을 잡아준 할머니의 손길이 따뜻했다.

"살아남게, 이제 이 지긋지긋한 눈도 그칠 거니까." (217쪽)

□ 추운 겨울 뒤 봄을 기다린다. 춥지 않았던 겨울, 전쟁 중 일상같은 하루를 평안하게 보냈던 이들이 역사를 거슬렀지만 결국 역사는 흐른다. 그리고 그들을 판단할 것이다.



작전명 #래빗 / 사실 작전명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아군이 부여한 의미는 적군에게도 읽히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냥 이름일 뿐이다. 그 작전명에서 출발한 1950년, 아픈 역사를 우리가 기억하길 바란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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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전 시집 : 건축무한육면각체 - 윤동주가 사랑하고 존경한 시인 전 시집
이상 지음 / 스타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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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상 #건축가이상

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이상의 시집 #건축무한육면각체_이다. 읽으며 무슨 뜻인지 헤아리는 것은 평범한 사람으로서 매우 힘든 일이다. 그저 그 시대를 살았던 천재, 타인과 스스로 인정한 천재가 써내려간 시를 무한정 읽어본다. 무의미해 보이는 문장을 단순 반복하거나 암호처럼 써내려간 숫자들의 나열, 그가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아니면 풀어 헤쳐 놓지 못한 넋두리일까 싶다.


그의 행적은 친일로 비추기도 했다. 시대가 그랬다. 특히 배운 자는 더 많은 기로에 섰다. 자신의 성향과 맞은 일본인과 교류하기도 했으나 궁극적으로 제국주의 및 군국주의에 대해 반대하였다. 식민 통치로 인해 배움의 자리에 들어서는 것도 쉽지 않았고 자신의 능력 발휘가 어려웠던 시기에 이상은 건축가, 예술가로 이름을 날리다 유명을 달리했다. 그의 일생이 짧았기에 남긴 흔적도 많지 않지만 #건축무한육면각체_에 실린 시, 수필, 소설 등은 천재의 일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 방거죽에극한이와닿았따. 극한이방속을넘본다. 방안은견딘다. 나는독서의뜻과함께힘이든다. (화로 중에서)


■ 꽃이보이지않는다. 꽃이향기롭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거기묘혈을판다. (절벽 중에서)


■ 같은날의 오후

물론태양이존재하여있지아니하면아니될처소에존재하여있었을뿐만아니라그렇게하지아니하면아니될보조를미화하는일까지도하지아니하고있었다.

발달하지도아니하고발전하지도아니하고

이것은분노이다. (이상한가역반응 중에서)


■ 문을닫은것처럼캄캄한색을띠운채

이제비류강은무겁게도도사려앉는것같고

내육신도천근

주체할도리가없다. (한 개의 밤 중에서)


■ 역사는 무거운 짐이다.

세상에 대한 사표 쓰기란 더욱 무거운 짐이다

나는 나의 문자들을 가둬버렸다

도서관에서 온 소환장을 이제 난 읽지 못한다 (회환의 장 중에서)


■ 열한 시쯤 해서 하는 아내의 첫번 세수는 좀 간단하다. 그러나 저녁 일곱 시쯤해서 하는 두번째 세수는 손이 많이 간다. 아내는 낮에 보다도 밤에 더 좋고 깨끗한 옷을 입는다. 그리고 낮에도 외출하고 밤에도 외출하였다. (날개 중에서)

□ 학창 시절, 이상의 #날개_해석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내의 직업을 연구하는 과정 중 일부 글이다. 아내의 매춘 행위에 기생해서 사는 남편. 건물 옥상에서 날고자 한다. 1930년대 식민지 상황이 정상적 사고와 행위로는 살아갈 수 없었기에 뒤틀리고 기괴한 모습의 사내를 그려낸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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