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닌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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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아, 불쌍한 프닌'. 외모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표현, 어설픈 말과 행동. 머리와 가슴에 담은 고결한 생각은 완결되지 못한 영어로 표현되면서 상대의 머리와 가슴, 그 어디쯤에도 닿지 못한다. 그저 입가의 작은 비웃음만 남길 뿐이다. 그는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대학에서 강의로 생업을 유지하지만 언어의 간극을 극복하지 못하고, 러시아 문학에 대한 인기 역시 그닥 높지 않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감성은 오히려 그를 꾀짜로 보이게 만든다. 이야기 대부분(거의 6장에 이르기까지) 이방인의 타국 적응기, 고난이지만 헤프닝으로 웃프게 만드는 에피소드다. 또한 전처와 헤어지고 재회하며 다시 버림 받는 과정도 애처롭다. 훗날 전처의 아들 빅터와 만나는 부분까지 그는 안타까울 뿐이다.



반전은 작가 나보코프의 시선, 7장 부분이다. #프닌_의 삶을 뒤집어 보게 만든다. 그의 생각과 가치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이국에서 유일한 안정감을 주었던 웰던의 삶을 정리한다. 삶과 자신에게 투명했고, 사람에게 진실되었다. 작가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도 같이 웃었지?. 어쩌면 가까운 이웃인 누군가에게도 우리는 같은 시선을 던졌을지 모른다. 헤아리기보다는 보이는 것을 전부라고 착각하여 기초적인 문법을 무시한 단어의 대화에서 낮추어 보았고, 평가하고 판단했을 것이다. 실제 나보코프 작가가 '롤리타'로 성공 후, 미국을 떠나 유럽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보며, 작가의 이야기가 투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양말은 진홍색 바탕에 연보라색 마름모무늬가 있는 헐렁한 모직이었지만, 구두는 보수적 검정색 옥스퍼드화였다. 그가 바지 안에 내의를 입을 때 늘 끝단을 접어 양말에 넣고 양말을 가터로 고정했던 것은 그의 인생에서 고루한 유럽 시절에 해당하는 1940년대 이전까지였다. (8쪽)

□ 한 쪽 반 분량에 이르는 프닌의 외모 묘사. 구시대적이고 고지식하며 외부의 시선과 전혀 타협하지 않을 듯한 외향임을 소설 시작에 못박아둔다. 망명한 구시대적 인사, 고루함이 뭍어나는 고집스러운 발음, 시류에 얽히지 않겠다는 강의 주제 등은 프닌을 향한 시선이다. 결코 곱지 않다.



■ 옷솔이 단추에 부딪힐 때마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조앤의 세탁기와 내연관계였다. 상대에게 접근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그는 번번이 위반의 현장을 들키곤 했다. (55쪽)

□ 낯설고 독립적이기 어려운 환경 속 인물, 자신 주변에 대한 호기심을 타인은 이런 시선으로 바라 본 것이다. 비아냥과 조롱이 담겨있다. 친절과 배려가 부족한 성마른 그들. 어쩌면 당신과 나.



■ 이것이 전부 리자의 아이디어였다는 점 -"그러면 간단해지니까, 아시잖아요, 우리의 아이를 위해서"("우리"는 세 사람을 가리키는 듯했다). (72쪽)

□ 전처와 전처의 현 남편, 그들 사이의 아이. 미련함과 안타까움의 절정.



■ 그는 그녀를 배웅했고, 돌아올 때는 걸어서 공원을 가로질렀다. 붙잡는다니, 곁에 둔다니,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그렇게 잔인한, 그렇게 저속한 그녀를, 그렇게 눈부신 푸른 눈, 그렇게 한심한 시, 그렇게 살찐 발, 그렇게 불순하고 건조하고 야비하고 유치한 영혼을 가진 그녀를 어떻게. (85쪽)

□ 고루하지만 품위를 잃지 않는 그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꺼내서 상처가 되드니 담아두는 것을 선택하는 프닌.





■ "나 이러면 안되는데, 으흐, 바보같이." 프닌이 혼잣말을 했다. 그의 눈물샘이 뜨거운, 어린애 같은, 걷잡을 수 없는 액체를 공연히, 어처구니없이, 창피하게 분출하고 있었다. (123쪽)

□ 향수였을까, 소비에트 다큐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면서 그는 눈물도 쏟는다. 프닌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읽을 때는 괴짜 같은 면모가 7장으로부터 다시 읽게 되니 그리움, 진실됨이 느껴진다.



■ "제가 정확한 날짜를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프닌은 부서진 햇빛 속에서 눈을 끔뻑러리며 말했다. (183쪽)

□ 『안나 카레닌』을 읽은 대화 속 인물이 오류를 지적하자, 프닌이 바로 잡고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이 땅에 살지만 이해받지 못하고 고국을 향한 그리움과 자부심, 자신의 일에 대한 자긍심이 뭍어난다.



■ 독채의 가장 기분좋은 점 가운데 하나는 조용함, 천국 같은, 시골 같은, 철저히 안전한 (그의 이전 거처들의 임대 공간에서 그를 육면으로 둘러싸던 집요한 불협화음들과 대조되는) 조용함이었다. (215쪽)

□ 타인과의 날선 경계로 인해 날카로워진 그의 모습, 사람들은 그마저도 외톨이, 아웃사이더로 치부한다. 내면을 더 들여다보고 이해하지 못했다.



□ 프닌의 대학 교정 생활에 대한 묘사는 소설 스토너를 떠올리게 했다. 무지한 농부의 삶에서 문학을 사랑하고, 세상에 대한 도전, 사랑의 실패 등으로 흔들리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걸어가는 한 인간의 생애. 반면 프닌은 개인이 저항할 수 없는 사회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내동댕이쳐진 곳에서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오히려 조롱과 비난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유지한다. 구지식인으로서 고루하고 고지식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는 스스로 삶에 솔직하고 진실되었다. 소설의 차이는 등장인물의 가치관보다 타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의문을 오히려 던지고 있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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