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음의 대명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585
오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러시아 작가인 이고르 알렉산드로비치 포포브의 1966년작 출근길을 보면, 출근길에 오른 사람들의 표정이 무심하고 피곤에 지쳐 보인다. 저 속에 섞여 있다면 똑같은 표정으로 서 있을 듯 하다. 관람자로서 지켜보기에 '그들'을 조금 여유롭게 관찰할 수 있다. #오은 시집 #없음의대명사 속 대명사 사용이 관찰자 같은 시점을 찾을 수 있다. 시인과 독자 사이에 암묵적인 경험 공유를 토대로 이미 알고 있는 상황에 대한 '그것', 인지하고 있는 이에 대한 '그', 혹은 '우리' 등. 하지만 한 걸음 떼어내서 '그' 상황을 들여다본다. 솔직히 알지 않는다. 하지만 시인 #오은_이 그려낸 시를 읽어내리다 '그'가 부딪힌 상황 속에 '나'를 대입하고 '그것' 안에서 '나의 경험'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구상화 인듯 써 내려간 시를 해석하고 뜯어보면 추상화 같은 느낌이다. 보는 이, 읽는 이, 건네는 이에 따라서 가지각색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오은시집 #없음의대명사_에는 유쾌한 대화가 넘치기도 하고 우울한 자기 반성이 담기기도 하였으며 닿지 못할 말을 혼자 끄적거리기도 한 듯 하다. 그렇게 읽힌다.

■ 수도꼭지가 말한다. 물 쓰듯 쓰다가 물 건너간다. (12p, 그곳 중에서)

■ 속사정은 여간해선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다. (16p, 그것들 중에서)

​■ 된 사람처럼 모질고 우악스럽다고 다 된밥에 뿌리겠다고 작정한 소리라고(25p, 그것들 중에서)

​□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닿은 곳, 상황과 객체에게 보내는 글

​■ 역사에 있었다 시대에 있었다 시간에 있었다 순간은 없었다 (41p, 그것 중에서)

■ 갔다, 고 말했다 / 갔다 다음에 쉼표를 찍지 않으면 숨 막힐 것 같았다 (57p, 그것 중에서)

​■ 그는 먹는 방식으로 감정을 소화한다 / 고독은 씹는다 / 분노는 삼킨다 / 슬픔은 삭인다 / ...중략... / 달아도 써도 삼킨다 / 달콤하면서 쌉싸래해도 / 절대 뱉지는 않는다 / 그는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80-81p, 그 중에서)

​□ 언어 안에 담긴 에너지를 최대한 이끌어서 흩뿌려놓은 #없음의대명사 중에서 울림이 컸던 시다.

​■ 무표정도 표정이다 / 침묵이 말이듯이 / 어느 때는 가장 강력한 말이 되기도 하듯이 / 끈질기게 묵묵했다 (82p, 그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