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개인의 삶을 따라가면서도, 그 배경에 깔린 거대한 역사의 무게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다. 미진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려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 삶은 늘 ‘조선인’이라는 이름의 경계 위에서 흔들리고, 차별과 편견의 파도 속에서 부서지고 다시 일어난다.

『파친코』는 역사가 한 사람의 운명을 어떻게 빚어내는지를 보여준다. 인물들은 의도하지 않아도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선택이라 믿었던 길들이 사실은 역사의 지형에 의해 이미 좁아져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사랑하고, 가족을 지키고, 작은 희망을 붙드는 모습은 지독히도 인간적이다.

읽고 나면,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그리고 그럼에도 존재를 이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 깊이 느끼게 된다. 선자와 그녀의 가족들은 부서지고 찢기면서도, 마치 바닷가의 자갈처럼 부단히 닳으며 제 모양을 지켜간다.

『파친코』는 우리에게 말한다. 역사는 거대하지만, 그 속에서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야말로 역사를 숨 쉬게 하는 힘이라고. 그래서 이 소설은 단순한 서사가 아니라, 기억해야 할 얼굴들의 초상화다. 책을 덮고 나면, 그 얼굴들이 오래 마음속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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