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자꾸 미끄러지는 발바닥에힘을 주면서, 평소에도 잘 넘어져서 정강이뼈에 늘 멍이들어 있었지만 미끄러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남자애가 보고 있을 테니까. 힐끔 돌아보자 남자애는 여전히 거기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렇게 뒷모습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몸이 오징어처럼 늘어나고 늘어나 아무리달려나가도 그 자리에 나풀거리는 촉수 하나쯤은 남아 있는 일 같다고 상상했다. 그러니까 나는 아주 긴 다리를 가진 대왕오징어인 셈이라고. 마을의 유일한 버스정류장인 하바나 나이트클럽 앞에서 돌아보니 남자애는 들어가고 없었다. 어지러이 내리는 눈이 평소 보던 풍경들을 뒤덮었고 나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그 밤의 거리를 멀거니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