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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세트 - 전3권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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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표도르의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기 되리라고는, 심지어 처음부터 끝까지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이렇게 읽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2년 전엔가 불멸의 고전 '죄와 벌'을 읽기로 결심했다가 아마 열 장쯤 되었던가, 계속 읽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 다음에 이어서 읽어야지 해놓고선 왠지 다시 펴들고 읽기에는 솔직한 말로 흥미가 당기지 않아서 그보다 더 쉽고 재미있는, 제목은 기억하지 못하는 다른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나서 그의 소설은 나와는 조금은 거리가 있는 거라고 그렇게 나를 속이며 다른 책들을 읽어 왔다. 그럼에도 이번에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로 결코 쉽지도 않고 재미있다고 일컬어 지지도 않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2,3권을 정성들여 통독하게 된 데에는 사실 이벤트 1등 당첨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욕심이라는 동기가 있었다. 현재 나의 1차적인 목표인 빛고을 독서 마라톤 대회에서 월계관 코스를 완주하는 것에 더해, 처음 이 책을 읽는데에 있어서 이 이벤트 1등 당첨이라는 목표는 나에게 더 없이 의미 있고 강력한 목표점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점차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고, 읽고 난 후인 지금도 느끼지만 이제 더 이상 1등 당첨이라는 목표는 달성하면 더욱 좋은 것이고, 달성하지 못 해도 충분히 좋다는 결론이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원래 책을 읽을 때 밑줄, 사선긋기부터 시작해서 각 페이지 여백마다 나의 생각과 감정들, 그리고 그때 떠올랐던 느낌들을 꼼꼼히 적는 스타일인 나로서는 이벤트가 있었다는 것 자체를 너무 늦게 알았기도 했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 두꺼운 책을 3권이나 독서하는 걸 병행하여 독후감까지 쓴다는 것이 수월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으나, 급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어떻게든 시간을 충분히 투자하여 정독하고 그 당시의 나의 느낌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고 정말 많이 노력했다. 나는 노력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위에도 썼듯이 여유 있게 읽으면서 나의 생각들을 잘 정리해 놓는 것이 나의 목표에도 부합하고 내 인생에 있어서도 큰 반환점을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마감날짜인 오늘까지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나의 헌신을 들여서 마침내 이 전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읽기를 드디어 끝마쳤다. 다 읽고 나자마자 내가 내지른 환호성은 그냥 '오예!'였다. 이 두꺼운 책들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다 읽어낸 것에도, 그렇게 촉박했던 시간에도 불구하고 조급해 하거나 서두름 없이 여유있게 나의 인생에 있어서의 양서 목록에 이 또 다른 불멸의 고전을 추가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에도, 그리고 무엇보다 절대 포기하지 않고 책에 나오는 인물들의 행동, 심리, 그리고 감정들까지 격하게 공감하며 책 귀퉁이마다 메모하며 읽어냈다는 것에 대한 기쁨과 보람, 그리고 성취감에서 나온, 짧지만 이보다 더 어떻게 내 만족스럽고 기뻤던 순간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던 그런 환호성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소설에 대한 독후감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눈여겨볼만 하게 쓸 수 있을지 조금은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평소 내 스타일대로 쓰는 독후감이라면 그냥 내가 느꼈던 그대로 어휘나 문법부터 문장력에 이르기까지 그리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써도 되지만, 이 독후감의 성격으로 보자면 왠지 그런 것도 모두 하나 하나 신경 써야 할 것 같고 책에 관련된 내용에 대해 뭔가 심오하고 전문가적인 견해를 곁들여야 당첨의 확률이 높지는 않을지 고민스럽고 의문스럽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한 번 언급했다시피 나는 이미 1차적인 목표를 넘어섰다고 생각하며 어느 정도 1등 당첨에 대한 욕심은 버리고 지금은 초연했기에 평소 스타일대로 내 느낌 그대로 적어보고자 한다. 
책 옆면의 인덱스 스티커와 책 밑부분까지 묻어있는 나의 손때 투성이, 그리고 밑줄, 사선들, 메모들의 향연을 종합해 보자면 카라마조프가의 부자간 그리고 형제간의 관계와 비극의 원인(읽는 내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꼭 그를 죽여야만 했는가라는 나의 궁금증이었던 원인, 결국 저자가 '질투'때문이었던 걸로 결론 내려줘서 속시원해 하면서도 역시 질투는 복잡미묘하며 위험한 감정이라고 느끼며 나도 질투는 삼가야겠다는 생각도 했던), 그 비극에 대하여 어떻게 보면 세상 전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웃들과 나라전체가 가지고 있는 편견과 시선, 갖가지 크고 작은 범죄가 발생된 경우 그것을 '떨어져 있는 돈봉투'부터 '돈주머니의 재질, 놋쇠 공이를 집어든 이유'에 이르는 하찮은 것까지 세세하게 파헤치며 조사, 심리하고 판결하는 전반적인 과정,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수반되는 보통 사람들의 편견에 딱 들어맞는 반복되는 사실과 현상 누적의 위험성, 대다수의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한 사람의 행동, 말투 등의 일면만 지켜봐 놓고 그 사실 누적을 그것을 바라보고 다루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극과 극으로 해석될 수 있는 심리학이라는 것에 의거해 그것을 자신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 자신의 생각대로 믿고 자신들만의 소설을 쓰려는 경향, 그러한 경향에 대한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오만하게도 자신의 입장에서만 보려는 무서운 습관화, 이 모든 것들의 중심에는 '교육'과 '사랑'이 있는데 '사랑이 담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랐던 세 형제가 각기 다른 인간상을 대표하게 된다는 것, 이런 다양한 인간상들, 특히 '악하다'고 치부되는 이러한 인간상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경멸감과 증오감에 더하여 심지어는 환멸감을 느끼는 것에 대한 고통과 고찰, 과연 신은 존재하느냐 아니냐라는 의문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기에 논쟁의 여지가 없으므로 신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경우, 신이 존재한다면 이 지상에서의 삶은 도대체 무엇이며, 이 땅에서 살고있는 우리들은 왜 사랑하면서도 악랄해지기도 하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될 때도 있으며, 미친 사람처럼 분별력을 잃고 정신나간 행동을 하면서 이리도 고통을 주고 받으며, 서로를 헐뜯고 힐책하고 모욕을 주는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모순, 부조리와 다양함 속에서 '악'이라는 것이 과연 나타날 수밖에 없으며 신이 존재하는데도 그런 다양한 모든 것이 허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 내 머릿속에 남은 일련의 책 내용들은 이러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머릿속에 뿐만 아니라 가슴속에 '눈동자처럼 고이 간직'할 문장들은 '그럼에도'에 가까운 내용들이다.
부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고 돈과 여색에만 집착해 자기 자신도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진정한 사랑에 눈 뜨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면서도 '그럼에도' 진정한 사랑인 궁극적이고 조건없는 사랑을 갈구하는 불쌍한 인간 표도르 파블로비치, 그를 보면 아무리 비정하고 비열하고 제 버릇 개 못 주는 파렴치하고 폭력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사랑 받고 싶어 하는 본성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앞으로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아무리 평판이 좋지 않고 나쁜 소문에 둘러싸였다 하더라도 나는 그들에게 '그럼에도' 그들도 충분히, 그리고 당연히 사랑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 시켜 주고 싶다. 그렇게 할 것이다.
비열할지언정 그보다 더 악한 도둑놈이 되지는 않겠다고 다짐하며 극단적이고 충동적일지언정 그 누구보다 솔직하고 대담하게 살아가고자 하며, 비정상적이거나 과오로 이끌 수도 있는 명예심의 소유자인 탓에 사랑에 목숨까지 걸 정도로 열정적이지만 '그럼에도' 예민하고 섬세한 감성의 축인 드미트리, 그를 보면 무엇을 하거나 그 누구가 될지언정 다른 것을 하거나 다른 그 누구가 될 거라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는 타산적인 생각도 하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이걸 두고 이기적이라거나 악하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그는 결코 이기적이지도 타산적 이지도 않았으나, 그저 충동적이고 너무 솔직한 그의 성격과 행동 탓에 모든 정황과 증거들이 합리적인 의심이 들만도 했고, 또한 그 모든 합리적인 의심들에 대한 확실한 반증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그를 향하게 됐으며, 그간의 방탕하고 무분별했던 생활들을 반성하여 청산하고싶어했던 그가 기꺼이 그리스도 그것과 같은 고행과 수난의 길을 걷고자 하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갱생 되고 싶어했고 부디 자비를 베풀어 달라며 호소 했으나, '그럼에도' 그의 평결에서 배심원으로 나왔던 적지 않은 수의 '촌놈들이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죄를 짓지 않고도 엄청난 천륜을 어긴 죄를 지은 범인이 되어 20년이나 되는 형을 받게 된(에필로그의 탈출계획을 드미트리가 받아들여서 성공까지 이루어졌다면 20년의 형은 아니겠지만) 이 소설의 결말은 여러 가지를 시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신이 존재한다고 믿고 싶어도 인간 세상에 보이는 현상과 주변 인물들에게서 받는 느낌과 감정들은 과연 신이 있는가라는 의문을 들게 할 정도로 자신보다 교양이나 지식이 부족하다면 경멸하고 멸시해도 마땅하다고 생각되는 자신의 오만함 때문에,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면서 '그럼에도' 신을 믿고 신에 의지하고 싶어서 그 처절한 자신과의 종교와 사상의 싸움에서 결국 승리했는지 아닌지 모를 열린 결말을 보여준 지성의 대표 이반, 그를 보면 사람은 누구나 오만할 수 있고, 오만함을 느끼면서 그 우월감과 비슷하고 그것에서 비롯되는 오만함을 끝까지 유지하며 권력인냥 그것을 만끽하는 사람(이를 전자라고 부르겠다)이 있는가 하면, 타인들에게 지성의 대표라고 추앙을 받고 또한 자신도 그러한 우월감을 만끽하고 인식하면서도 '그럼에도' 어느 순간에는 그것을 남몰래 저주하듯이 경멸감을 느끼며 지성과 철학, 그리고 종교를 넘어서는 세상 사람들간에 '눈에 보이지 않게 연결된 실들'에 대한 믿음과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후자라 하겠다)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도 이반처럼 기꺼이 후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태어나면서부터 어느정도 세상과 사람, 그리고 사물들을 포함한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싸안을 줄 알고 그것들에 자비를 베풀 줄 아는 사람도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지만, 이렇듯 이반처럼 끊임없는 자기 자신과의 사상, 이념 등에 대한 사경을 헤맬 정도의 사투를 경험하고 엄청난 고뇌와 사유 후에 깨닫게 되는 것이 더욱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나도 기쁘게 이반처럼 후자가 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앞에 썼던 전자의 경우와 비슷하게 조화와 사랑을 사랑하며 누구에게나 귀 기울여주고 그래서 누구와도 대화할 줄도 공감할 줄 알며 진실한 위로와 격려를 해주고 천사같은 아이들과도 쉽게 친해지는 타고난 신성의 대표 알료샤, 그에게서는 아직 나는 '그럼에도'를 찾지는 못했다. 타고난 성품이라서 그런가? 그는 그대로 내가 되고자하는 한 인간의 전형이다. 위의 '그럼에도'들을 극복해 나가려는 앞으로의 나의 고군분투와 사투에 알료샤같은 인물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 사랑스러운 벗들인 아이들에게 살아가면서 좋고 옳은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게 되면 삶이 때로는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결국 전체적으로는 너무나 좋은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삶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알려주는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함께 걸어본다.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해설을 읽다가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은 대목이 있었는데, 저자가 이웃의 죄와 자신과 같은 사람들의 죄에 대한 모든 사람의 책임을 핵심적인 가치로 내세우면서, 하필이면 형제 관계에서 배제된 스메르쟈코프를 살인자로 설정했는가에 대한 의도가 바로 상황의 본질을 간과하는 데 대해 소설 속 인물들의 도덕적 책임을 우리에게도 함께 지우는 것이며, 만인이 만인에 대해 죄가 있는 죄의 유대 관계를 소설 밖으로 확장해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는 부분이었다. 아!! 그렇구나. 나도 활자 하나하나에 집착하며 토씨하나 빠뜨리지 않고 읽으면서 소설에 완전히 빠져서 본질은 놓친 것이 아닌지 반성이 됐다. 그래서 원래 어제까지만해도 독후감의 구상을 잡고 있었는데 기존에 계획했던 그 구상의 틀에서 벗어나 내가 이벤트에 있어서가 아닌 내 인생에 있어서의 독후감을 써야 하는 본질에 다가갈 수 있었다.
도스토옙스키만의 재미있고 가끔은 귀엽다고도 느껴진 표현과 묘사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들이 마치 눈 앞에 펼쳐진 무대의 연극처럼, 때로는 무대가 아닌 실제 현장에서 독자와 함께 바라보는듯하게 만드는 서술방식의 전환, 철저하게 잘 짜인 글의 구성과 대비, 비유, 인용 등 모든 글쓰기의 장치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한 탄탄한 문장력으로 그는 아마도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떻게 인간적으로 그리고 진지하고 그나마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그리고 러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보편적인 인류애와 형제애'를 실현하고 '이 땅에서도 천국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과 개연성'에 대해서 고찰을 유도한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사실 처음에 읽기 시작할 때는 등장인물들의 너무 횡설수설하고 반복되는 단어와 어구들로 이루어진 기나긴 독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조금은 과하다 싶은 말과 행동묘사,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갑작스럽게 사랑이나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고백, 그 당시 실제 일어난 사건들이어서 신문에도 실렸다는 너무도 잔인하고 충격적인 내용들. 이러한 모든 부분들이 나를 다소 불편하게 했다.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2년 전처럼 앞으로 읽으려고 사 놓은 더 재미있는 책들을 읽을까 하다가 이 책이 세계 고전 문학인 이유가 과연 무엇일지 너무 궁금해져서 끝까지 읽어 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역시 포기하지 않기를 잘했다. 내 인생에서 둘도 없을 소중하고 엄청난 기회였으며 등장인물들을 나 자신에게 빗대어 보며 나는 반성과 생각들을 일을 하게 됐다. 
이벤트를 통해 이러한 기회를 갖게 해 준 알라딘에 정말 큰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조그마한 희망을 하나 더 걸어보자면 물론 1등 당첨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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