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 바통 3
강화길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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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숲을 걷던 그녀는 무언가 발에 차이는 것을 발견했다.
잃어버린 트렌치코트의 벨트였다. 여자는 낙엽에 묻혀버린 벨트를 손으로 잡아당겼다. 천으로 된 벨트에는 진흙이 묻어 있었다.
한 번 꿰맸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여자는 축축한 것을 조심스럽게 털어냈다. 검은 것은 금방 떨어졌지만, 이미 축축하게젖은 부분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시간이 흐르는 것 외에는 없었다. - P262

어머니는 자애와 희생의 존재로 신화화되는 대신, 냉담하고 잔혹하고 징그럽기까지 한 이기적인 존재로 그려지며 죽음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어느 순간 증발하고 잊혀진 여자들은 생명을 줄 뿐 아니라 임의로 박탈하는 괴물적 모성이 지닌 권력의 이면이다. 이 가운데 평생 열정과 변덕으로 새로운 남자를 찾아 헤맨 어머니를 딸이 목 졸라 살해할 때, 한국문학의 오랜 모성 신화가 깨져나가며새로운 권력 계승의 길이 열린다. 부친을 살해한 아들들이 ‘종교’와 ‘친족‘이라는 사회제도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읽어낸 프로이트를 참조해보자면, 모친 살해는 사회제도의 압력을 개인화된 불운과 추문으로만 경험해야 했던 여성들이 ‘종교‘와 ‘친족‘을 해체하고 레즈비어니즘으로 새로운 사회를 열어내는 시작점이 될 수있다. 뿌리 깊은 애증과 불안의 부정적인 속성들을 유산으로 여기며 상속받을 수 있을 때, 여성들은 증여의 대상이 되거나 증발하듯 사라지기를 그친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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