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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프라임 민주주의
EBS 다큐프라임 <민주주의> 제작팀.유규오 지음 / 후마니타스 / 2016년 12월
평점 :
육아서를 읽을때면 무척 진지해지는 나.
늘 긴장속에 책을 읽고 점점 반성모드로 바뀌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번에 민주주의 라는 제목의 책자로 무지한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 권리도 내 생각도 그저 바쁜 일상과 바꾸어 살아가고 있는 나.
몰랐던 사실을 앎에 대한 기쁨보다는 부끄러움이 컸던 시간이었다.
이 책은 EBS 다큐프라임 5부작이 한권의 책으로 엮인 것이라고 한다.
책을 고루 읽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EBS 다큐프라임 알면 알수록 그 매력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좀 챙겨봐야겠다는 결심과 함께 민주주의를 살짝 소개해 볼까 한다.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백과사전에서는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해 정치를 행하는 제도를 민주주의라고 정의한다.
혼란스런 시국속에서 읽게 된 '민주주의'
백과사전에 담긴 뜻이 아니라도 요새 가장 많이 듣고 있는 것이
촛불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국민의 목소리와 그것에 실린 힘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완성이라는 이야기다.
비록 입김 한 번이면 금새 꺼져버리는 것이 촛불일지라도
그 촛불이 모이고 모여 한 목소리를 내니 황소바람도 무섭지 않더라는 것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
1863년 11월, 미국 대통령이었던 링컨이 게티즈버그에서 했던 아주 유명한 연설이다.
즉,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 주권이 특정인의 영리를 충족시켜주는데 사용되었다는 것도 울분을 토할 일이지만
그 보다 그러한 것이 잘못되었음을 여전히 인지하지 못하는 그들이 참으로 어이없다!
이 책은 시민의 권력의지 민주주의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감자 마름병으로 위기에 처한 아일랜드
여기에서 감자 마름병은 멀쩡한 감자를 검게 썩어 들어가게 만드는 무서운 전염병을 가리킨다.
무성했던 감자밭이 하루아침에 검게 변했고 아일랜드의 감자 생산량은 급격히 감소했다.
1845년부터 1852년까지 8년 동안 계속된 이 대기근으로
무려 125만 명의 아일랜드 시민들이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죽어갔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감자 마름병은 당시 전 유럽을 휩쓸었는데 어떤 곳에서도 아일랜드와 같은 대기근은 발생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당시 아일랜드를 통치하고 있던 영국의 재무장관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서아일랜드 여성 농민들은 감자
삶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요리가 거의 없다."
그야말로 "헉!"이다.
아일랜드의 민족주의자 존 미첼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감자를 망친 건
물론 신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대기근으로 바꾼 것은 영국인들이다."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식민지의 비극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당시 아일랜드 땅의 대부분은 영국 본토에 살던 지주들의 소유였고
그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수확한 곡물과 값비싼 가축을 모두 영국으로 보냈다.
따라서 아이랜드 농민들은 자신들이 재배한 작물을 나눠 가질 권리가 없었다.
그들에게 허락된 것은 작은 텃밭, 그리고 거기서 나온 감자뿐이었다.
따라서 이 비극의
근본 원인은 자원 배분의 문제였고 정치권력의 문제였던 것이다.
정치란 사회적 가치, 즉 희소한 자원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한다.
이 말은 정치권력을 누가 갖고 있으며 어떻게 행사하는지에 따라 자원 배분도 달라진다는
얘기인데,
아일랜드 시민들은 자원 배분의 결정권을 갖지 못했다.
이에 시민들은 자원 배분의 결정권을 가지려고 노력해 왔고 이것은 인류의 오래된 이상이었다.
시민들 스스로가 자원 배분에 대한 통제력을 갖겠다는 이상,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이다.
다음으로민주주의의 엔진,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볼 수 있었다.
사회를 구축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권위적인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이때 갈등은 인정받지 못하고 억압당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갈등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질서를 구축하는 민주주의적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즉 민주적 절차로 구성된 정당 정부가 갈등을 드러내고 해결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갈등이 잘 드러나는 순간은 선거이다.
흔히 대의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우는 선거는 그 과정을 통해 사회의 갈등이 표출되고
그 결과를 통해 평화롭게 해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가 항상 어떤 사회적 갈등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매력적이거나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 등장할 경우, 유권자들은 그 인물을 중심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이것은 심리학 연구 결과에서도 확인된 사실이다.
사회 심리학자 로버트 자이언츠의 연구에 따르면 사진을 보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호감도가 높아지는 것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선거는 누가 더 탁월한가, 혹은 누가 더 도드라져 보이는가를 두고 경쟁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결국 인지도가 높은 유명한 사람이나 인지도를 높일 수 있을 만큼 재력이 있는 사람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또하나, 선출하다라는 뜻의 elect, 그리고 소수정예를 뜻하는 elite라는 단어의 어원이 같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eligo →
electum → elect(선출하다) → elite(선출된 사람,
정예, 엘리트)
선거에서 누가 더 뛰어난 인물인가를 놓고 경쟁하는 상황이 되면
시민들에게 중요한 갈등은 사라지게 된다.
이는 자신의 갈등이 공적으로 해결되기를 원하는 시민들의 바람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정당이다.
시민들은 더 이상 인지도가 높은 명망가에게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치적 색깔을 갖고 있는 정당에 투표하게 된다.
정당은 시민들이 갖고 있는 갈등 가운데 특정한 갈등을 선택해, 이를 선거에 적극 활용한다.
그러면서 갈등은 선거의 주역이 되는 것이다.
또한 정당은 선거과정에서 갈등을 표출하기도 하지만 축소하기도 한다.
무수히 많은 잠재된 갈등 가운데 어떤 갈등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갈등은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동시 통합한다.
통합과정은 분열과정만큼이나 갈등에 필수적이다.
갈등은 발전하면 할수록 격렬해지고 갈등이 격렬해질수록 상호 적대적인 두 진영의 내적 통합은 더욱
강화된다.
갈등을 통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갈등 그 자체이다.
갈등이라는 요소가 선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잘 알고 있는 정당들은
다수파가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갈등을 이용한다.
갈등은 언제나 존재하고 종류도 다양한다.
다만 적대적 갈등 상황에서는 상대방은 친구 아니면 무찔러야 할 적이며,
내전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민주 사회의 기반이 될수 없다.
따라서 상대방의 관점과 그 관점을 견지할 권리를 인정해 주는 한편,
갈등상태를 다룰 방식을 찾는 것이 경합적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갈등은 서로 합의할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그 상황을 인정하는 자세를 뜻한다.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이 선거를 통해 선출된다면
그 사람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아도 단기간 동안은 그가 현직에서 활동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경합적 민주주의이고 현대 민주주의의 특징이다.
민주주의가 우선한다.에서 다룬 불평등의 늪
스물여덟 살의 영국 청년, 데미안 새넌은 2012년 옥스퍼드 대학 석사과정에 합격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로부터 뜻밖의 연락이왔다.
합격을 취소한다는 통보였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 이유였다.
옥스퍼드 대학 당국이 문제 삼은 것은 2만 1천 파운드에 달하는 학비와 생활비 조달 능력을
데미안 새넌이 증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합격을 취소한 것이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대학은 그의 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직 대출 증명서와 부모의 재산만을 심사 대상으로 삼았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새넌, 당시 그의 어머니는 파산 상태였다.
결국 합격이 취소되자 그는 옥스퍼드 대학을 고소했다.
스스로 변론하면서 외롭게 싸운 끝에 재판에서 승소한 새넌은
마침내 옥스퍼드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금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부모가 재산이 많아야 자식이 대학에 합격할 수 있는 시대.
이것은 영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이런 교육 불평등은 미래로 가는 사다리를 끊어 버리는 것이 되어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다.
결국 교육 불평등은
다시 소득 불평등으로 이어지면서 끝없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지난 한해 민주주의에 대해 이렇게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없지 싶다.
내가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이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니까,
당연히 민주주의 테두리 안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양파 껍질 벗겨지듯 새로운 사실이 하나씩 터질때마다 그 동안 내 주권은 없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 내것인데 그 동안 도둑맞고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며 살아왔다.
그들의 머리가 우수했다고 해야할까?
그게 아니면, 내가 너무 무지했다고 해야할까?
이 책을 쭉 읽다보니 후자가 더 맞는 듯 싶다.
궁금해도 알려고 하지 않았던 지난 날은 분명 내 잘못이 크다.
이해할수 없는 일들에 대한 궁금증.
진즉, 그것에서 출발을 하였더라면 2017년을 좀 더 희망찬 새해로 출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덜 시끄럽고 좋은게 좋다라고 여겨왔던 지난 날이다.
2017년 정유년에는 바른 목소리를 내는 연습을 하고 싶어졌다.
내 아이에게 불평등한 미래를 물려줄수는 없기에 더 늦기 전에 그 악순환을 끊어야겠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결코 참을 이길 수 없다.
끝까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응원합니다.
해당 서평은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작성하는 솔직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