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휴식을 한 기분이다. 솔직히 표지가 너무 예뻐서 산 책인데, 내용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도 좋은데, 솔직히 요즘 그런 자극에 염증이 난 상태였다. 자극이 넘쳐나는 시대에 책을 읽으면서까지 말초적 자극에 노출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나의 현재 밥벌이가 감정노동 수치가 극한 상태라 더 그런 것도 같다. 속고 속이고 화를 내고 타이르는 일을 하루에도 여러 차례 해야 하는 지금은 날카로워진 신경을 잠재울 안온한 위로가 필요했다. 지구상 어딘가에는 여전히, 아주 사소한 것들에 초점을 두는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패치워크>가 내게 새삼 알려주었다. 이런 게 위로이지. 


문학상을 수상한 <이불>이나 <일곱 발짝>은 수상 자격에 의문이 없을 정도로 완성도와 섬세함이 뛰어났다. 인물이 생생했고 사소한 일상의 오브제가 우리 삶의 한 단면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차분히 서술하고 있었다. <이불>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렀을 때, 새로 산 솜이불을 꺼내 막 덮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상처를 입고도 목화 솜 이불을 타서 새로 맞추는 것처럼 남은 날을 살아간다. <일곱 발짝>의 주인공도 마찬가지였다. 비루하고 초라한 삶의 조건들이 만성 무좀처럼 하루의 끝에 달려 있더라도 사람은 내일을 또 살아간다. <일곱 발짝>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주인공과 하루를 이겨내기 위해 일상의 명언을 툭툭 던지는 어머니가 내 일처럼 느껴졌다. 내 속에는 그 두 명이 모두 존재하고 있다. 


단편집에 실린 글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글은 표제작인 <패치워크> 그리고 <디드로의 가운>이었다. <패치워크>에서 화려한 삶을 살지만 어딘지 비뚤어진 것 같은 인물, 그리고 스스로는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지만 주변의 부러움을 사는 인물의 대비가 정교하고 섬세해서 좋았다. 마치 바늘땀이 보이지 않는 조각보처럼 느껴졌다. 작가의 말에서 체호프를 언급했던데,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고전이 된 단편소설의 매끄러운 결이 방희진의 글에서 느껴졌다. 


<디드로의 가운>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좋았다. 내가 평소에 ‘디드로 효과’, ‘디드로 역설’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마케팅 앞에서 언제나 팔랑귀가 되는 나는 ‘디드로 효과’의 희생양이 되기에 딱 좋은 사람이다. 혹시나… 하고 책을 받자마자 <디드로의 가운>부터 읽었는데 역시나였고, 한편으로는 의외였다. 내가 아는 그 ‘디드로 효과’를 그런 식으로 사용할 줄 몰랐다. 이 책에 있는 단편들 중에 유일하게 읽으며 킥킥댔고, 어떤 페이지에서는 주인공을 한심해 했다. 말하자면 유머가 있었다. 


연말연시이다. 만나기 싫은 사람도 억지로 만나야 하는 자리가 자주 생긴다. 노골적인 속물주의, 과시욕들을 상대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너무 피로해진다. 그런 날에는 힐링을 위해 <패치워크>를 다시 읽어야겠다. 방희진처럼 사람의 내면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시선이 여전히 이 지구상에는 존재하고 있다고 위로받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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