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부록처럼 끼어 있는 <삼천리> 좌담회 기사문이 흥미롭다.

지금의 저출산 대책 수립 자리에서 꼰대 영감님들이 내놓는 분석과 비슷하다 못해 한치도 다르지 않은 이광수와 김억, 김기진의 발언을 볼 수 있다.

나혜석은 어떻게 저토록 침착하게 저들을 응대했던 것일까?
시대가 그러했으니 반포기했던 것일까?

144쪽의 김억과 김기진은 유사과학도 읊어대는데,
저 시절에는 잡지에서 저런 소리를 떠들어도 인텔리였으니
세상이 나아지긴 한 건가?

희망을 가져야겠다. 굼벵이 같지만 앞으로 가긴 간다는...

이광수 여자들 생각은 잘 모르겠으나 남자들로 말하면 첫째 저혼자살기도 어려운 세상에 아내까지 얻어가지고는 생활을 도무지 하여나갈 도리가 생기지 않으니 대개 ‘금년이나 내년이나‘ 하고 해마다 늦추다가 그만 혼기를 잃고 마는 이들일걸요.

나혜석 그러한 점도 있겠지만 묘령의 여성들로 말하면 선배들이 시집가서 사는 것이 대개 행복스럽지 못한 꼴을 많이 구경하고 났으니까 그만 진저리가 쳐서 애당초부터 결혼 생활에 들 생각을 하지 않는까닭이 많지요. 실상 교양이 높은 신학문 받은 남녀로서 결혼에 들어행복한 살림을 하는 이가 몇 명이나 되어야지요. 통계로 따져 본다면 - P88

김억 교양의 유무보다 오히려 부부의 성격 차이에 죄가 많겠지요.
대개 신식 결혼 그 물건을 보건대, 결혼 조건으로 드는 것이 ‘아름다우냐‘와 ‘학식이 있고 없고‘와 ‘돈이 있고 없고‘를 생각하여 보지마는누가 하나 서로 성격의 조화를 염두에 두는 이가 없는 듯싶습니다. 이러니까 맞지 않는 부부가 되어 그 결혼은 몇 날 아니 가서 파탄이 생길 수밖에요.

김기진 그렇지요. ‘선배의 결혼이 나빴으니까 나도 아니하겠노라!‘
하는 이유는 당치 않을 줄 알아요. 그야 실패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반면에 행복스럽게 사는 사람도 어떻게나 많다구요.
그보다도 현재의 적령기에 있는 청년 남녀들이 결혼을 하지 아니하고 있는 까닭은 주위의 사정이 결혼할 생각을 당사자에게서 빼앗는까닭이지요. 그것은 순전히 경제적 이유지요. 생활할 길을 잃어버린사람이 늘어 가는 때에 의식주의 보장을 주지 않고 어떻게 만혼의 폐해를 제거하려 들겠습니까. 문제는 늘 근본에 귀착이 되어요. - P89

기자 결혼난 완화책으로 이혼한 남성을 환영하도록 하는 풍조를높일 수 있다면 미혼 여성을 많이 해소시킬 수 있을 줄 알아요. 남자편에서도 일단 시집갔다가 돌아온 여자라도 색시와 같은 태도로 맞아 준다면 훨씬 결혼난이 해소되지 않겠어요.
김억 결국 그것은 기분 문제인데 암만 하여도 어느 구석엔가 께름칙한 점이 있을걸요.

김기진 어느 생물학자의 말을 듣건대 일단 딴 남성을 접한 여자에게는 그 신체 혈관의 어느 군데엔가 그 남성의 피가 섞여 있지 않을수 없대요. 그러기에 혈통의 순수를 보존하자면 역시 초혼이 좋은 모양이라 하더군요.

김억 제 자식 속에 딴 녀석의 피가 섞였거니 하면 상당히 불쾌한일일걸요. 여자 측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 P144

김기진 그러나 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혼한 남성들은 다 불쌍한시대의 희생자들이니까요. 동정이라도 할 점이 있지요. 또 내가 아는범위로는 예전에는 따님 가진 부모들이 "내 딸을 첩으로 주다니 내딸을 이혼한 사내에게 주다니!" 하고 천길만길 뛰더니 최근에 와서는
"이혼한 자리는 어때요, 아무개네도 모두 그렇게 주더구만." 하고 양해합니다. 그리고 이혼뿐 아니라 남편 될 분에게 아들딸 있는 것도 이제는 꺼리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나혜석 그는 그래도 이혼한 자리면 어때요? 동정이 처녀의 이상은될 수 있겠지만 절대 유일의 조건은 아니 될 것이외다. 당자에 대하여사랑만 느낄 수 있다면 그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오.

이광수 그렇지요, 여성 여러분이 남성을 보는 관점만 달라진다면해결될 문제지요.

김기진 여성에게 결혼이라 함은 한평생 밥 주고 옷 입혀 주고 같이 - P224

산보 다녀 주는 것으로 일생을 취직하는 거나 다름이 없지요. 그래서어서 하루 속히 결혼하고 싶은 열망을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줄 압니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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