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가족 프레임은 이 프레임 밖에 있는 비정상가족을 모두 소외시키며, 여기에서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정상가족 프레임은 한국사회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모든 문화와 정책의 기본 단위가되고 어떤 바람직한 삶의 표상이 된다. 이 때문에 중산층은 부와 권력을 세습시켜 안전한 ‘정상가족‘을 자녀 세대도 이어가길 바란다. 자녀들에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갖은 노력을 다 요구하는데 이는 ‘우리 집, 우리 애만 잘되면 된다‘라는 가족이기주의를 만든다. - P63
그만큼 우리 사회는 정상가족과 비정상가족사이의 거리가 멀고 사회·문화·교육 전반에 걸쳐 차별적으로 인식하며, 정책도 부양자 중심의 혼인과 혈족 관계를 기준으로 설계하고있다. 그 단적인 예가 국회에 계류된 지 1년 넘게 통과되지 못한 생활동반자법이다. 이런 현실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견디기 어려웠던아이들은 자신의 미래 가족에게 평범한 가족을 투영한 셈이다. 화목한 가정을 갖고 싶다는 가난한 청소년들의 소망은 정상가족 프레임 밖에 있었던 자신의 처지에 대한 반응이다. - P66
그런데 이런 외적인 조건 외에도 지현에게는 분명 다른 힘이더 있었다. 나는 이를 ‘성찰하는 힘‘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수많은 청소년 인터뷰이 중에서 성공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난 친구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이다. 성찰하는 힘은 인간이 사회적·정신적으로 성숙해지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덕목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외적인 지식(예를 들어, 학력)과 외형적모습(예를 들어, 재산, 직장)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평가하면서 자신을 돌보고 스스로 자기 욕망과 사회적 위치를 사고하고 판단하는 내면적 성숙도, 즉 성찰하는 힘에 대해서는 참 소홀하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우리의 교육체계는 청소년에게 이 성찰하는 힘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교육과정 안에서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 P97
가난 때문에 의식주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없다는 것은 그냥 불편한 정도를 넘어, 사회적 개체로서 ‘나‘의 위신과 존재가 부정당하는 일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자아는 자신감을 상실하고 사회적 존재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끼고 자신의 욕구에 대해 둔감해진다. 흔히들 빈곤층은 왜 미래를 위해 저축하지 않고, 왜 절박한 순간에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고, 왜 자신의계급적 이해와 배치되는 선택을 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가난하다는 것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재화가 없음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고 사회적 존재가 일상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에 대처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야 한다. 즉, 생존 자체에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합리적 판단을 하고 미래 지향적사고를 할 에너지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래서 빈곤층이전략적 사고나 내면의 강인한 힘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지현의 ‘도움 요청‘와 ‘성찰하는 힘‘은 가난한 상황 속에서도 에너지를 생존에만 다 쏟아붓지 않으면서 어떻게 자신의 사회적 존재가치를 보듬고, 어떻게 자아의 욕구를 발견할 수 있는지 하나의 훌륭한 전략을 보여준다. - P99
수정처럼 가난한 환경에 놓인 청소년들은 본인이 취업을 했더라도 그 환경에서 온전히 벗어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한국사회는 자식의 부모 돌봄이라는효를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고, 부모에 대한 부양 의무를 개인에게 지우는 가족 중심 문화가 강력하다. 성년이 된 청년은 독립적인 개인이기보다는 한 가족의 구성원이라는 정체성을 더 크게 부여받는다. 성인이 된 후에 하는 연애, 공부, 취업에 가족이 깊이 개입한다. - P99
부모의 부양 책임이 기본적으로 자녀에게 있다는 것은 농경 중심 사회나 대가족 제도에서나 통용되는 일이다. 직종이 분화되고 다양화되는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노동자들의 이동성과 노동시장 변수가많다. 지금은 평생직장이라는 말도 사라지고 있고, 2020년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비율은 40%나 된다. 현재 청년층은 이런 노동시장의 조건 속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오가며 이동성이 많고 불안정성이 높은 직종에서 근무하고 있다. 가난한 가정의자녀 세대는 여기에 가난한 부모를 부양해야 할 이중고를 짊어지고 있는 셈이다. - P156
즉, 노인빈곤은 인구구조의 변화, 부의 축적구조의 불평등, 사회복지 제도의미성숙에 그 원인이 있다. 이렇게 복합적인 문제를 두고, 노동시장불안정성과 높아진 자산가치 때문에 내 집 마련도 어려운 자녀 세대에게 부양 의무를 다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사회복지계에서 국민기초생활법상 부양의무자를 폐기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해온 것은 이런 배경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다. 상속법 제도에도 문제가 있다. 부모의 빚이 부모 사망 후 상속 포기나 한정승인을 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자녀에게 상속된다. 기본적으로 이런 법안에 깔려 있는, 가족 공동체를 하나의 단위로 인식하는 습속부터 바꾸어야 한다. - P157
혜주가 화장을 진하게 하고 여성성을 과시하는 행동을하는 것은 모두 외모로 성적 어필을 하기 위함이었다. 즉, 여성이 하나의 인격이 아니라 성적 대상으로 상대에게 호소해야 이롭다는 것은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중요하게 통용되는 원칙이다. 사회의 지배적인 구조와 인식이 아직 어린 이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알 수 있다.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보는 인식은 성적으로 자유로운 여성을 ‘창녀‘로 규정하고 혐오하는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가출한 여자 청소년들은 학교로 돌아가면 이 혐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못하다. 남자 청소년들이 가출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 P253
우빈은 돈이 있어야 안심이 된다고 했다. 다른 빈곤가정 청소년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어릴 때부터 사용할 수 있는 재화가 부족해서 많은 어려움과 결핍감을 경험했던 이들에게는 자신이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수중의 현금이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그 외 다른 데에는 기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용돈을 받는 친구들보다 항상 풍족하게 돈을 쓸 수 있다. 특히 배달 아르바이트는 심야에 하는 경우가 많고 위험수당이 있기 때문에 임금이 꽤 높은데, 이런 생활에 익숙해지면 돈이 없는 상태는 견디기 힘들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는 청소년들이 쉽게 접근할수 있는 일자리가 많다. - P221
단적인 예로 ‘청소년 보호관찰‘을 들 수 있다. 비행이나 범죄를저지른 청소년을 교화하는 대표적인 제도가 청소년 보호관찰인데, 처벌보다는 선도를 목적으로 소년범을 교정시설에 구금하는 대신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면서 보호관찰관의 지도·감독 및 원호를 받게 하는 제도이다. 특히 가정이 불우하여 보호자가 제 역할을 하지못할 때 보호관찰관은 수시로 그런 역할도 맡아야 할 때가 많다. 그런데 2021년 기준으로 1명의 보호관찰관이 관리하는 청소년 수는118 명에 달한다. OECD 주요 국가의 보호관찰관이 1인당 27.3명을담당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 P190
하위계층의 문제이니 열심히 노력해서 상층에 올라서면 문제가 없지 않겠느냐고 얘기할 수 있다. 만약 당신 가족의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거나 재능이 있어서, 혹은 가족 찬스를 이용해서 좋은 대학과 좋은 일자리를 얻었다고 하자. 그 아이가 과연 이 불평등한 세상에서 혼자 행복할 수있을까? 사회에 불평등한 현상들이 쌓이고, 이에 대한 분노와 좌절감이 사회 전반에 누적되면 누구에게도 안전하고 좋은 사회란 있을 수 없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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