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세계행복자료World Database of Happiness를 바탕으로 발표된 그래프를 보면 행복감이 높은 국가일수록 출산율도 확연히 높습니다. 이 그래프에 나타난 한국의 위치는 다소 참담합니다. 22개국 중 가장 출산율이 낮고, 행복감 또한 최하위권에 있습니다.

매년 OECD 가입국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행복 조사에 이런 문항이 있습니다. "당신은 어려움에 처할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있습니까?" 이 질문에 "Yes"라고 대답하는 비율이 가장 낮은 국가가 한국입니다.

개개인의 관심과 따뜻한 심성이 가족을 비롯해 가까운 몇 사람에게 과하게 편중된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사실 부모 세대로서는 자녀에게 결혼보다 비혼을 독려하는 것이 기능적으로는 더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연구 결과상, 비혼인 자녀들은 외로움은 덜 느끼고 친구 수는 더 많은, 기능적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사회학에는 ‘탐욕스러운 결혼greedy marriage’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결혼 이후 개인의 인지적, 정서적, 물질적인 자원이 자신의 새로운 가족에게만 집중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아마 이런 문제를 이미 느끼고 있는 비혼자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엄마가 정말 불행해하면서 모든 자원을 투입해 만든 게 저예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까지 행복하지는 않아요. 저는 엄마처럼 할 자신도 없는데, 그럼 제 아이는 얼마나 더 불행하겠어요? 우리 엄마는 왜 그렇게까지 애쓰면서 살았을까 생각하면 또 너무 안됐고요."

아이들에게 제일 좋은 아빠는 ‘엄마한테 잘하는 아빠’라고 합니다. 부부가 재미있게 잘 지내는 것만으로 자녀들의 행복감은 높아집니다.

짧은 시간 동안 바뀐 삶에 적응하는 사람들은 이제 아예 ‘자식 농사’를 짓지 않으려 합니다. 농사를 지어봤자 추수할 게 없으니까요.

‘행복도시’를 자처하는 세종시는 〈엘리시움〉이라는 영화에서처럼 선택받은 자가 갈 수 있는 파라다이스 같은 선망의 장소로 떠오르는 듯합니다. 그 선망은 수십만 명에 달하는 ‘공시족’ 열풍과 궤를 같이합니다. 행복도시 세종시 같은 곳에 진입하려면 공무원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낳을 것인가의 선택은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저출산 문제에 집합적인 숫자와 통계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각자가 아이를 키울 때 느끼는 무게를 줄여주어야 합니다. 이 시대의 엄마들은 예전의 엄마와 같이 자신을 지우고 ‘누구누구의 엄마’라는 이름만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이제 예전 엄마들처럼 살고 싶지 않습니다. 구글의 검색창에 "엄마처럼"을 써넣으면 연관어가 "안 살아"와 "살기 싫다"가 뜹니다. 엄마의 희생적 삶에 고마움을 느끼지만, 나는 그 길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전체 청년 수는 줄었지만 청년들이 살고자 하는 지역은 서울, 수도권, 그리고 부산 등 대도시로 한정되어 있어요. 게다가 최근에는 지방 대도시에서마저도 청년들이 이탈해 서울과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비록 청년 인구가 과거에 비해 줄었지만 실제로 그들이 활동하는 물리적인 영역이 서울, 수도권, 그리고 몇몇 대도시로만 한정되었으니 실제 물리적인 밀도가 높아진 것이나 다름없네요.

한국은 사회 규범이 매우 강한 것 같습니다. 대학에 가야 하는 나이가 있고, 결혼을 해야 하는 나이가 있고, 거의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직업군이 있고, 유행을 놓치지 않고 쫓아야 하고 말입니다. 규범이 강하고 획일적이면 심리적인 밀도가 낮아지기 어렵습니다.

해결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현실의 경쟁을 완화하기. 둘째, 경쟁이 과도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요인을 제거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지각할 수 있는 환경 만들기.

관심사나 진로가 다양하지 못하죠. 그래서 실제보다 과장해서 현실을 판단하지 않나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위너winner’가 아니어서 아이를 낳을 자신이 없다는 생각은 ‘위너’에 대한 집착이지 출산에 대한 염려가 아닌 것 같아요.

‘헬조선’에 살다보니 돈이 없어서 아이를 못 낳는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잖아요. 그런데 조사를 해보니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하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강남에 거주하는 잘사는 사람들인 거예요. 그래서 행복하다는 감정이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게 만들기도 하겠지만, 그저 즐기고 끝나버리는 측면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행복이 곧바로 출산율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요.

청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그들이 불행하다는 딱지를 씌웠는데요. 청년들이 스스로 불행을 정당화하고 낙인찍는 바람에 보다 폭넓은 시야에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태를 판단할 수가 없게 되었어요.

한국 사회에서 두드러지는 신념이 ‘흑백논리’입니다. 성공 아니면 실패, 내 편 아니면 남의 편으로 매사에 선을 긋는 편견이죠. 그러다 보니 중간이 없어요. 아이는 때로 나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요동치는 삶의 궤적에 따라 낳을 수도 있고 안 낳을 수도 있는데, 윗세대 어르신들은 반드시 낳아야 한다고 하고, 아랫세대 청년들은 아예 안 낳기로 작정을 하는 거죠. 요즘엔 초등학교 때부터 비출산을 결심한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사회가 심리적인 획일성이 매우 강하죠.

여성의 만족도가 5점 정도 떨어진다면, 남성의 만족도는 10점 정도 확 떨어져요. 아이를 매우 큰 부담으로 여기는 것이죠. 하지만 남성은 그 후 둘째, 셋째가 생겨도 그럭저럭 만족도가 유지되는 경향이 있어요. 반면 여성의 경우는 한 명 한 명 낳을 때마다 지속적으로 만족도가 떨어집니다. 여성은 아이를 하나 키울 때와 둘 키울 때 차이가 너무 크다는 사실을 아는 거죠.

다시 말하자면, 저출산은 바로잡아야 할 문제라기보다 직면한 현실인 것이고, 현재 장년층인 지금 기성세대가 앞으로 닥칠 진짜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고민을 해야 한다는 거죠.

1950년에 2,000만 명이었던 인구가 불과 50년 사이에 2.5배가 되었어요. 아마 인류 역사상 그런 예가 없을 겁니다. 동시에 경제성장과 민주화도 이루었죠. 압축성장의 결과 연령대별로 가치관의 차이가 커지게 되었어요.

우리 삶과 사회를 이루는 요소들을 다시 수립해야 할 거예요. 앞서 말씀하신 새로운 질서에 맞는 정책과 제도를 찾아야겠죠. 너무 쉽게 말하는 것 같지만, 기존 의식과 제도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출산율은 더 떨어질지도 몰라요. 만약 더 떨어진다면, 이건 큰 문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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