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의 초기작에서 ‘장르성‘만을 찾으려는 시도는 필패할 것이다. ‘문학성‘이라는 개념의 실체는 불분명하지만, 정보라의 작품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장르 규약‘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고, 그래서 그의 스토리들은 매우 문학적이다. 윤고은, 김영하, 편혜영이 문학성에 이의가 없는 상태로 장르계로 진출했다면, 정보라는 장르계의 문학에도 예술성과 새로운 미감이란 해시태그가 붙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환상문학이라는 장르성 자체는 사실 낯선 것이 아니다. 2000년대 주류문학계는 환상문학 경향에 휩쓸렸다.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에 이르는 동안 백민석 김영하의 환상문학이 마르께스 등의 영향과 함께 논의된 연구도 꽤 보았다. 2010년대 이후가 되자 주류문학의 장에서 환상문학이 홀대받던 시기에도 정보라는 꾸준히 이 계열의 문학을 고수하며 발전시켰다. 주류문학이 어디로 떠내려가든 이런 작가들이 남아 버틸 수 있게 해준 웹진 <거울>과 장르 독자들은 한국문학이 다양성 측면에서 앙상해지지 않게 지탱해준 소중한 존재이다. 정보라의 해외진출, 해외 출판시장에서의 성과는 그 사례 자체로만 보면 ‘운‘의 측면이 강하게 느껴지지만, 이런 작가가 존재하고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지탱해주던 비주류 문단 생산자, 소비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데서 그 사례는 결코 운‘으로만‘ 만든 성과는 아니다. 한국문학에서 문단 제도와 주류 취향이 카르텔을 형성하는 동안 변방도 부단히 새로운 세대를 낳고 기르고 보살피고 훈련시켜 왔다. 신춘에서 이유리와 같은 신예작가를 발굴하는 것만큼이나 정보라와 같은 작가들을 재조명하는 일도 중요하다. (아직도 ‘운‘의 외면으로 재조명되지 않은 작가들이 많다.)예술의 분류는 예술가가 속한 제도에 의해 규정되는가? 예술가가 행한 예술의 내용적 특성으로 규정되는가? ‘장르‘라고 한쪽으로 몰아붙여지던 하위문화와 문학에 대해 평가를 다시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