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친밀한 이방인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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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나온 책인데,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안나>의 원작이라는 홍보 때문이었다. 소설을 읽고 어떤 부분이 드라마화하기 좋은 부분인지는 금세 감이 왔다. 그러나 아마 내가 느낀 많은 부분들이 드라마화 하기 까다로운 부분일 것이다. (아직 드라마는 못 봤다.)

우연찮게도 마농 가르시아의 <여성은 순종적으로 태어나지 않았다>와 비슷한 시기에 주문해서 <친밀한 이방인>을 읽고 바로 <여성은 순종적으로...>를 연이어 읽게 되었다.
페미니즘 관련서를 읽으며 항상 혼란에 빠지는 부분은 여성에 삶에 내재해 있는 이론적 모순들이다. 여성으로 태어나서 여성으로 살아보지 않으면 그 모순을 알 수가 없다. 형제나 남편, 스승과의 대화에서 항상 막히는 부분은 그런 부분들이다. 남성으로 태어나 남성으로 살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딜레마들. 모순들.

<여성은 순종적으로 태어나지 않는다>는 매우 좋은 이론서이다. 출발부터 모순의 현존을 인정하고 시작한다. 게일 루빈의 <여성 거래>(<일탈> 수록)를 읽고 처음 받았던 충격이 혼재한 모순들의 부딪힘이었다. 어느 한 구절도 나를 선명한 색채로 프로파간다하지 않았다. 그 비슷한 여러 저작들이 떠오른다. 이론서들의 목록 속에서 뚜렷하게 떠오르는 것은 소설들이다.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과 <모순>.
그리고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

그 후로 정한아의 <친밀한 이방인>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여성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몇몇 지점이 진보하였고, 몇몇 지점은 지겨울 정도로 그대로이다. 그러나 대체로 여전히 '모순' 속에 있다.

그 모순의 한가운데에 탈출구처럼 뚫린 송곳 구멍이 있다. '레즈비언' 코드는 탈출구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탈출의 희망만 불러일으키는 바람 구멍일 뿐일까?

마농 가르시아의 분석처럼 여성은 순종적으로 태어나지 않았지만, 때때로 순종성은 적극적인 생존전략이 된다. 그 모순의 굴레를 탈출하려면, 고정된 성 역할의 사회적 압력에서 벗어나려면, 레즈비언이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혹은 레즈비언인 척하는 제스추어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소설의 스포일러가 될까봐 리뷰에서 어떤 말도 선명하게 할 수가 없는데, 이 기분은 이 소설을 읽고 난 기분과 거의 일치한다.

선명하지 않은 문장을 하나만 덧붙이고 감상을 끝내련다.

<친밀한 이방인>은 정상성의 사회에서 '마땅히 있어야 할', 혹은 '있으면 더 없이 좋을' 사회적 요소들을 연기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는 '이방인'이지만, '친밀'했던 것이다.
그것은 친구일 수도, 애인일 수도, 배우자일 수도... 먼 곳에서 바라본 나의 역할 모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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