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 - 2007년 제3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신경진 지음 / 문이당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의 심사평, 리뷰들은 하나같이 소설의 첫 구절에서 뱅뱅 맴돈다.


“이 이야기는 도박과 여자에 관한 것이다.”


그렇군. 다 읽고 보니 소재가 도박과 여자더군. 그런데 어째 찝찝하다. 뭔가 배신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마치 ‘이 이야기는 불륜과 살인에 관한 이야기다’로 시작하는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 것 같은 이 찝찝함……. (물론 <위대한 개츠비>는 그렇게 읽어도 재밌을 것 같기는 하다.)


정말 <슬롯>은 도박과 여자에 관한 이야기일까?


소설이라는 장르는 독특한 데가 있어서 간추려 얘기하기가 쉽지 않다. 좋은 작품일수록 더욱 그렇다. 어떤 USA 국적의 북에디터 말처럼 소설은 “어떤 때는 전투에서 이기는 것이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이상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주제나 소재보다는 서술 자체, 묘사 자체, 즉 독자가 문자를 읽고 있는 매순간인 디테일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슬롯의 구석구석은 ‘도박과 여자’라는 어구가 풍기는 강한 어감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 ‘도박’, ‘여자’가 아니라 ‘도박과 여자’는 두 단어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어 단어 속에 숨은 부정적이고 도발적인 의미를 모조리 끄집어내는 듯한 느낌이다. 마치 ‘섹스와 약물’처럼……. 난데없이 ‘중독’이란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가 말이다.


그러나 <슬롯>은 우리의 이런 언어 연상 작용을 비웃는다.

주인공은 ‘중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대개 <슬롯>과 같이 서술자가 시니컬한 태도를 유지하는 니힐리스트일 경우 서술자와 달리 열정적인 성격을 지닌 주인공이랄 만한 인물은 따로 등장한다. 개츠비 씨 같은 경우 말이다. 그렇지 않고 서술자가 곧 주인공이라면 시니컬한 와중에도 주위를 대하는 태도에서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는다. 왜 그런가 하면 … 안 그러면 무슨 재미로 읽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전례를 용감무쌍하게 깨부순 이가 있으니 그게 바로 <슬롯>이다.


도박을 한답시고 10억을 가진 여자와 카지노에 든 남자는 시종일관 무슨 ‘법칙’에 ‘확률’만 읊조리며 슬롯머신이나 한다. (그럴 바에야 ‘바다이야기’에 가는 것이 더 낫겠다. 지금은 못 가게 됐지만…….)


팬티만 입은 옛애인과 한 방에 투숙하면서 아~~~무일도 없는 주제에 ‘나도 남자’랍시고 만나는 사람은 죄다 여자다. 탱탱한 스물두엇의 처녀애에다가 애엄마인 유부녀에 심지어 주인공과 같은 이름을 쓰는 얼굴 모르는 호텔 프런트 직원도 모자라서는 어처구니없게도 일곱 살 난 여자애까지 끼워 넣었다. (본문 중에도 일곱 살 난 ‘명혜’를 ‘여자’로 당당하게 분류하고 있다.) 한술 더 떠 주인공은 그 여자들을 모두 정말 그냥 '만났을' 뿐이다. 


 

딱 잘라 말해 이런 남자는 매력 없다. 대체 왜 주위에 여자가 꼬이는 건지 알 수 없다. 굳이 짐작하자면 똑똑한 체하지만 사실은 어리버리한 남자 선배는 놀려먹기 딱 좋다고 생각하는 여대생 심리에서 근거를 찾고 싶다. (허나 옛애인이란 여자가 쿨한 척 하면서 찔끔찔끔 돈 쓰며 남자한테 엉기는 꼴 보자니 주인공이나 여자나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싶은 게 별로 이해하고 싶지 않다.)


게다가 이런 분과는 맞고도 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화투치는 내내 확률이 어떻고 법칙이 어떻고 시부렁거리면서 살금살금 덜 잃는 쪽을 택하신다면 화끈하게 ‘고’ 부르는 재미로 화투치는 사람은 마주보고 앉은 주인공 모 씨의 겁먹은 눈깔을 찔러버리고 깔아 논 담요를 잡아채고 싶어질 것 같다.


이왕 카지노에 들어선 것, 네 돈이건 내 돈이건 VIP룸에도 좀 가보고 그 유명한 블랙잭도 좀 해주시고 그래야 지켜보는 사람도 즐겁지 않겠나 말이다. 드라마 <올인>에서처럼 번지르르한 양복 빼입고 곧 죽어도 포커페이스를 사수하며 십수억은 똥식이(주: 동네 똥 먹는 강아지 이름) 취급하는 양을 보는 것은 단지 ‘보기’ 때문에 재미나는 것이 아닌가? 카지노까지 가서는 찌질하게 배팅액 낮은 슬롯머신만 끌어안고, 그것도 10억을 가진 동료를 옆에 두고는 제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가지고는 하루에 십만 원어치씩 써대는 꼴을 보니 분통이 터졌다. 이건 팬티만 입고 자는 옛애인과 매일밤 아~~~무일도 없을 거면서 자꾸 하룻밤씩 더 보내고 싶어 꼼수 쓰는 걸로 밖에 안 보인단 말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누군가 내게 ‘그러는 당신은 카지노에 가서 블랙잭 테이블 앞에 앉아 10억을 한 방에 올인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 아, 갑자기 오늘이 음식물쓰레기 버리는 날이 아닌가 걱정이 된다.


다시 말해 결론은 … 이 이야기는 10억을 가진 옛애인이 카지노에 가자고 제안하는 거창한 픽션답지 않은 ‘우리’ 이야기다. 조건이 달라져도 여전히 소심할 평범하디 평범한 한평생 월급쟁이이신 ‘우리’ 말이다.

관광 왔다가 슬롯머신에서 쏟아진 500만 원 때문에 카지노에 눌러앉아 패가망신했다는 누구누구도, 민사고인지 00고인지 졸업하고도 과외해서 카지노에 날리는 일상을 사는 누구누구도 ‘우리’는 아니다.

<파리의 연인>이나 <올인>의 주인공이 미천하게 시작하여 고귀하게 되는 것에 감동하는 ‘우리’는 다단계에 빠진 오촌당숙이나 하우스 섰다판에서 집 한 채 홀랑 날린 뒷집 김 씨 아저씨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며 남의 산의 돌처럼 안도하며 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심사평이 조금 이해가 간다. ‘권태와 쓸쓸함’ 또는 ‘씁쓸함’……. 그게 ‘도박과 여자’보다 이 소설에 훨씬 잘 어울리는 말이다.

 

소설의 첫 문장에서 벗어나니 비로소 이 이야기의 울림이 미약하게나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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