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헤르만 헤세 지음, 김윤미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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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저서는 가장 유명한 데미안밖에 읽어보지 않았다. 데미안마저도 읽은지 꽤 된지라 문체나 문학적으로 인상깊었던 문장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데, 그러다보니 저자에 대한 관심보다는, 문학가가 본인이  체험한 음악이란 세계를 어떻게 표현해내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우리 삶에 음악이 없다면! 

(중략)

누군가 나나 그럭저럭 음악적이라 할 사람에게서 바흐의 성가곡을, 

<마술피리>나 <피가로의 결혼>의 아리아들을 빼앗고 금지하고 기억으로부터 떼어놓는다면, 

우리 같은 사람에게 그것은 몸의 장기 하나를 잃는 것과도 같을 것이며 

감각 하나를 반쯤 또는 전부 상실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p.35

pp. 34-35


음악에 대한 헤세의 애착은 첫번째 산문만 읽어도 단번에 알 수 있을만큼 강렬하다. 저자 스스로도 음악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고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가진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 음악을 체험하고 있었다. 공연을 자주 보는 나로써는 헤세가 콘서트홀에서 느낀 음악에 대한 복잡하지만 아름다운 감정들이 내가 훌륭한 공연을 봤을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와 유사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에서, 위대한 문학가도 그냥 사람이구나 싶어져서 헤세라는 작가가 가까운 이웃처럼 다가왔다.

산문도 산문이지만 중간중간에 고전음악 애호가로써 헤세가 적어내린 운문들이나 짧은 단편들도 참 인상적이었다. 데미안을 읽었을 때는 그저 그런 책이란 생각이 들어서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좀 더 괜찮은 번역으로 그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 서평 이벤트로 책을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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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그리다 - 예술에 담긴 죽음의 여러 모습, 모순들
이연식 지음 / 시공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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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이 그려낸 죽음을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책이었다. 예술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미술사와 예술사를 배우는 예술철학도로서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음을 다 방면에서 바라보고 다양한 작품과 연결지어 다루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저자 자신이 죽음의 무게를 가까이서 느낀 탓인지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다룬 점도 좋았다. 종교나 몇가지 주제에 대해서 굉장히 시니컬한 태도를 취하는데 그게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면서도 묘하게 재밌었다.

인상 깊었던 작품은 페르디낭 호들러가 죽어가는 아내를 그린 연작이었다. 나도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있어서일까, 연작 중 소개 된 죽은 발랑틴의 모습에서 호들러가 느꼈을 허망함과 슬픔이 전해졌다.

개인적인 아쉬움은 기대했던 것만큼 예술의 이론적인 부분은 많이 다뤄지지 않은 점이다. 작가 개인이 작품에 얽힌 이야기와 그 이야기에 가진 인상, 사색을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전문적인 예술서적이기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집 같다. 기대와는 다른 책이었지만 생각해 볼 거리를 많이 던져서 재밌게 읽었다.

* 서평 이벤트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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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분의 힘 - 복잡한 세상을 푸는 단순하고 강력한 도구
스티븐 스트로가츠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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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12년 전,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큰형부가 연습장 위에 그림을 그리면서 미적분에 대해 설명해준 적이 있다. 형부는 한 덩어리를 그리고서는 그 덩어리를 쪼개는 게 미분, 다시 합치는 게 적분이라고 가르쳐줬다. 지금은 모든 한자어를 한자의 의미에서 파악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게까지 한자어를 신경 쓰던게 아니다보니 형부가 그려준 그림을 곧 미적분으로 받아들였다. 이게 미적분과 나의 첫만남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날 형부가 연습장 위에 그린 그림과 설명이 계속 맴돌았다. 수학을 잘 하진 못하지만 많이 좋아하던 나는 이 매우 생소하고 신비로운 개념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미적분을 제대로 배운 건 20살이 넘어서의 일로, 뒤늦게 한국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수학 과외를 받으면서다. 중고등학교를 한국에서 다니지 않았고 학교를 졸업한지 3년이나 지난 후라서 이해하기 쉽지 않았지만 그런 어려움과는 별개로 미적분은 여전히 흥미롭고 재밌는 개념이었다.


미적분의 힘의 원제는 infinite power, 즉 무한의 힘이라는 의미로 책의 중심 주제이다. '무한'이라는 키워드는 책 전반에 걸쳐서 꾸준히 등장하며 무한을 기반으로 미적분의 가장 기초부터 심화, 역사 그리고 활용까지 다루고 있다. 저자는 아르키메데스의 원과 포물선에 대한 호기심은 '무한 infinite'을 인간이 인지하는 세계로 끌어왔다면서 '무한'만큼 단순한 세계가 없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무한이 단순하다'는 저자의 주장에 적지 않은 위화감을 느꼈다. 아르키메데스가 원주율을 구해낸 방식은 이전에도 들은 적 있는 내용이지만 무한이나 미적분과 연관시켜서 배운 개념이 아니다보니 신선하게 다가왔다. 내게 있어 미분과 적분은 쪼개거나 합치는 개념이다보니 '끊임 없이 이어지는 무한한 어떤 것'이 쪼개지고 합쳐진다는 게 잘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원과 구의 성질을 생각해보고 머리 속으로 무수히 많은 조각을 만들어보면서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었다.


이론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은 이해하기 어려워서 역사적인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읽었다. 유명한 수학자들의 삶과 수학에 대한 헌신을 접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수학만큼 상상력이 극한으로 발휘되는 영역이 또 있을까, 하는. 보통 수학은 논리와 합리, 이성 등 무언가 구체적인 인상을 주다보니 '상상'같은 추상적인 개념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아르키메데스의 말처럼 자연 속에서 수학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이성만으로는 부족하고 감성과 상상을 총동원해야 하는 것 같다. 상상력 없이는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수학이 없지 않았을까 싶다.


용어가 다소 어렵게 느껴지긴 했지만 재밌게 읽었다. 이론적인 부분을 좀 더 익히고 난 다음에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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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사회 - 공정이라는 허구를 깨는 9가지 질문
이진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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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서평을 하기 위해 읽은 책 중 그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기 가장 조심스럽다. 내용은 충분히 많은 생각이 들게 했지만 각 장마다 정치적인 사건을 연관지어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정치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것에 많이 민감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장바구니에서 삭제하기를 추천한다.

읽으면서 앞선 질문의 끝 문단이 다음 질문의 시작으로 이어지는 구조라서 흥미로웠다. 그 이야기를 내가 책읽는 동안 옆에 있던 짝꿍에게 하니 '철학서가 다 그렇지 뭐 ㅎㅎ'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긴, 솔직히 말해서 저자가 한권의 책으로 압축시키기 위해 9가지로 질문을 압축했을 뿐이지 이것들을 시발점으로 떠올릴 수 있는 질문은 무수히 많다. 철학은 역시 정답 없는 질문을 끊임없이 사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9가지 질문을 따라가면서 공감을 하는 한편으로는 불편했다. 특히, 두번째와 세번째 질문에서 다뤄지는 엘리트주의가 유독 불편했다. 저자도 결국 연세대 출신에 독일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돌아와 포스텍이나 TV에서 강연하는 사람이 아닌가. 엘리트주의를 비판하는 엘리트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싶었다. 그 두 챕터에서는 그런 아이러니에 반발감과 불편함을 느꼈다. 

우스운 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도 그 엘리트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란 점이지만.

엘리트주의 때문에 책 읽다가 상념에 잠긴 내가 '결국 엘리트주의를 비판하는 엘리트지 않은가'라는 말을 던지니 짝꿍이 '근데 만약 흔히 말하는 지잡대 교수가 이런 얘길 했다면? 사람들이 들었을까?'라고 말했다. 정말, 불공정한 사회다. 씁쓸했다. 

저자가 책 속에서 다루는 사건들을 잘 모르는 게 책을 읽는데 가장 큰 장벽이었다. 조국 사건이야 워낙 논란과 이슈를 불러와서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지만 추미애 윤석열 사건이라던가 인국공 사건은 생소하게 다가왔다. 사건사고가 발생하면서 해당 이슈를 처음부터 관심을 가지고 팔로업하지 않았다보니 검색을 하면서 접하는 의견이나 책에서 다뤄진 내용들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나 싶었다. 결국, 사건에는 관심을 갖기를 포기하고 의견과 이론에만 귀를 귀울이기로 했다.

철학서의 핵심은 이걸 내가 얼만큼 받아들이느냐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던지는 질문과 그가 내린 답, 그리고 해법(?)이 궁금하다면 읽어보는 게 나쁘지 않을지도. 다만, 앞서 한번 언급한 것 처럼 정치적인 부분에 민감한 사람은 권하지 않는다.

추신. 처음에는 책 표지 디자인이 가짜뉴스나 신비주의를 다루는 듯한 인상을 주어서 읽어보기 조금 망설여졌다. 표지에 저자의 얼굴을 박아놓으니 참 펼쳐보기 어려웠다. 물론, 읽으면서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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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게 만드는 브랜드 - 가심비의 시대 마음을 사로잡는 브랜드의 비밀
에밀리 헤이워드 지음, 정수영 옮김 / 알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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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팬데믹의 영향으로 주변 환경에 큰 변화가 생기면서 여러 위기가 찾아왔다. 그 중 가장 큰 위기는 재정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지만 비싼 사립대학을 다니면서 주거 이외의 생활비를 지원받는 건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고 어떻게든 지금까지 저축해놓은 돈이 사라지기 전에 일을 시작해야 했다. 이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언어 과외로 내가 가진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면서 적지 않은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였다.

어떻게 하면 과외를 진행할 학생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내게 지인은 어플 하나를 추천해주었다. 깔끔한 UI를 가진 어플이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어서 믿을만 한 서비스였다. 문제는, 가입 후 프로필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자기 소개와 견적서를 쓰는 부분에서 발생했다. 지금까지는 내가 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본 학생들의 연락을 받고 수업을 시작했는데 이제는 수업을 듣고자 하는 학생에게 나를 추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학이나 회사에 제출하던 자기소개서를 이제는 과외 학생을 찾기 위해서도 작성해야한다니. 경쟁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자기 어필]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절감했다.

본 책은 기업의 브랜딩을 어떻게 할것이냐에 대해서 세세하게 다룬다. 어떻게 정체성을 만들 것인지, 그 정체성에 어떤 감성을 부여할 것인지, 또 어떤 소비자 모델을 구체화 시켜서 그들을 감동시킬 것인지 등등, 브랜딩을 하면서 고려해야하는 사항들을 하나하나 짚어준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고해서 다 좋은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광고 마케팅을 하면서 숙련된 저자의 글 솜씨가 매력적인 번역을 만나 굉장한 즐거움과 유익을 선사한다. 미국에서 쓰인 글이다보니 대부분의 예시가 미국 브랜드여서 낯설게 느껴지긴 했지만 읽으면서 해당 브랜드를 찾아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나는 책에서 다루는 브랜딩에 [자기 어필]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자기 어필이란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결국에 나를 브랜딩하는 게 아닌가. 작년에 나는 나를 브랜딩 하는 일에 난항을 겪었고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전혀 얻지 못한 채 해당 어플을 지우게 되었다(참고로 서비스 이용료도 지불했고 다 쓰지 못한 금액은 환불도 못 받은 채 증발 됐다). 씁쓸한 경험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년의 경험이 생각났고 그렇기에 내가 원하는 걸 얻지 못한 거였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재밌는 사실은 그와 반대되는 경험을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했다는 점이다. 새로운 기회에서는  꽤나 고통스러운 셀프 브랜딩의 시간을 갖음으로써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이전보다 나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조금 더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올해 들어서 읽은 책 중 잘 발견해냈다고 생각하는 탑 3에 든다. 책에서는 기업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지만 안에서 다루는 내용은 [자기 어필]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숱하게 차고 넘치는 자기계발서 보다 이 책 한권을 읽고 핵심으로 다루는 가치를 스스로에게 접목해보면서 정리해나가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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