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 - 신화학의 거장 조지프 캠벨의 ‘인생과 신화’ 특강
조지프 캠벨 지음, 권영주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10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1009/pimg_7419872952696119.jpg)
나를 구성하는 키워드를 줄줄이 나열하다 보면 빠질 수 없는 단어가 하나 있다. 모태신앙. 기독교인인 엄마의 몸 안에서 태어나기 전부터 교회를 다녔던 나는 불과 몇년 전 까지만 해도 일요일이 되면 빠짐 없이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을 했다. 독실하다고 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나름 성실한 교인이었다.
어린 날의 내 세계의 중심은 나이기보다는 종교 혹은 가족이었다. 나는 굉장히 순수한 마음으로 교회에서 받는 모든 가르침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모태신앙인 스스로를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내 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내 삶의 가장 우선 순위였고 살아가는 한 순간에서도 그를 잊음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세상의 수많은 종교를 반대하는 학문과 의견들을 접하면서도 '그래도 이 모든 것은 내가 믿는 신으로 인함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 모든 것을 과거형으로 쓰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주말에 교회를 가지 않고 일부러 성경을 찾아 읽지 않는다. 식전 기도를 하지 않고 밥을 먹으면 도중에 기도를 다시 하고 먹었는데 이제는 식전 기도를 할까 말까 한다. 현재형으로 적게 되는 이것들이 지금의 나이고 모태신앙은 부끄러운 이름이 되었다.
조지프 캠벨의 자서전이나 다른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보수적인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나보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챕터를 읽어도 유일신 신앙에 대한 맹렬한 부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나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지만 종교라는 이름 아래에 벌어질 수 있는 수많은 행태를 경험해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가 어려서부터 경험한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과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는 너무나도 다른 동양의 신화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은 종교를 모르고 신을 부정하는 사람들보다 나처럼 그 반대의 사람들에게 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유교와 불교, 도교를 기반으로 하는 동양에서 태어났지만 믿음은 서구권 중심의 기독교에 두고 자란 나는 동양의 종교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성경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던 만큼 어려서부터 신화를 많이 좋아했지만 유교와 불교보다는 이집트나 북유럽 신화, 그리스 로마 신화 등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책에서 언급되는 힌두교와 불교의 사상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내가 잘은 모르지만 끊임없이 영향을 받아온, 나라는 존재가 있게 만든 근본을 들여다본 것 같았다.
조지프 캠벨의 말처럼, 동양의 종교는 외부가 아닌 내면에서 신을 찾는다. 남에게 나를 내세우기에 앞서 나를 다스리고 또 다스리는 것이 진리이고 믿음이다. 솔직히 예수 그리스도가 신약에서 설파하는 이야기들도 나를 다스려야 한다는 게 결론이다. 하지만 지금의 종교,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 다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진정 스스로를 다스리고 있는가? 지난 몇세기 동안의 기독교의 행보를 보면, 그렇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세상의 눈에 비추어진 겉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캠벨이 언급한 힌두교의 여러 신화 중 크리슈나 신과 한 여인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크리슈나에게 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었다며 울면서 다가온 여인에게 크리슈나는 '그럼 지금 너는 무엇을 가장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여인은 '조카 아이를 가장 사랑한다'고 답했고 크리슈나는 '그것이 바로 너의 신이다'라고 말하며 그녀를 보낸다. 종교에 대한 회의에 가득차 있는 내게 큰 울림이 있는 이야기였다.
앞으로의 내 삶 속에서 종교가 어떻게 남게 될지는 스스로도 장담할 수 없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생겼다. 내 삶 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것을 더욱 사랑하고 아끼는 일. 그 가운데에서 또 다시 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 서평이벤트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