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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 - 신화학의 거장 조지프 캠벨의 ‘인생과 신화’ 특강
조지프 캠벨 지음, 권영주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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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구성하는 키워드를 줄줄이 나열하다 보면 빠질 수 없는 단어가 하나 있다. 모태신앙. 기독교인인 엄마의 몸 안에서 태어나기 전부터 교회를 다녔던 나는 불과 몇년 전 까지만 해도 일요일이 되면 빠짐 없이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을 했다. 독실하다고 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나름 성실한 교인이었다.



어린 날의 내 세계의 중심은 나이기보다는 종교 혹은 가족이었다. 나는 굉장히 순수한 마음으로 교회에서 받는 모든 가르침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모태신앙인 스스로를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내 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내 삶의 가장 우선 순위였고 살아가는 한 순간에서도 그를 잊음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세상의 수많은 종교를 반대하는 학문과 의견들을 접하면서도 '그래도 이 모든 것은 내가 믿는 신으로 인함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 모든 것을 과거형으로 쓰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주말에 교회를 가지 않고 일부러 성경을 찾아 읽지 않는다. 식전 기도를 하지 않고 밥을 먹으면 도중에 기도를 다시 하고 먹었는데 이제는 식전 기도를 할까 말까 한다. 현재형으로 적게 되는 이것들이 지금의 나이고 모태신앙은 부끄러운 이름이 되었다.



조지프 캠벨의 자서전이나 다른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보수적인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나보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챕터를 읽어도 유일신 신앙에 대한 맹렬한 부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나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지만 종교라는 이름 아래에 벌어질 수 있는 수많은 행태를 경험해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가 어려서부터 경험한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과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는 너무나도 다른 동양의 신화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은 종교를 모르고 신을 부정하는 사람들보다 나처럼 그 반대의 사람들에게 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유교와 불교, 도교를 기반으로 하는 동양에서 태어났지만 믿음은 서구권 중심의 기독교에 두고 자란 나는 동양의 종교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성경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던 만큼 어려서부터 신화를 많이 좋아했지만 유교와 불교보다는 이집트나 북유럽 신화, 그리스 로마 신화 등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책에서 언급되는 힌두교와 불교의 사상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내가 잘은 모르지만 끊임없이 영향을 받아온, 나라는 존재가 있게 만든 근본을 들여다본 것 같았다.



조지프 캠벨의 말처럼, 동양의 종교는 외부가 아닌 내면에서 신을 찾는다. 남에게 나를 내세우기에 앞서 나를 다스리고 또 다스리는 것이 진리이고 믿음이다. 솔직히 예수 그리스도가 신약에서 설파하는 이야기들도 나를 다스려야 한다는 게 결론이다. 하지만 지금의 종교,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 다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진정 스스로를 다스리고 있는가? 지난 몇세기 동안의 기독교의 행보를 보면, 그렇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세상의 눈에 비추어진 겉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캠벨이 언급한 힌두교의 여러 신화 중 크리슈나 신과 한 여인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크리슈나에게 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었다며 울면서 다가온 여인에게 크리슈나는 '그럼 지금 너는 무엇을 가장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여인은 '조카 아이를 가장 사랑한다'고 답했고 크리슈나는 '그것이 바로 너의 신이다'라고 말하며 그녀를 보낸다. 종교에 대한 회의에 가득차 있는 내게 큰 울림이 있는 이야기였다.



앞으로의 내 삶 속에서 종교가 어떻게 남게 될지는 스스로도 장담할 수 없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생겼다. 내 삶 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것을 더욱 사랑하고 아끼는 일. 그 가운데에서 또 다시 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 서평이벤트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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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뇌과학 - 이중언어자의 뇌로 보는 언어의 비밀 쓸모있는 뇌과학
알베르트 코스타 지음, 김유경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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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로 언어의 뇌과학이라고 번역된 이 책의 원래 제목은 El cerebro bilingue (The Biligual Brain), 즉 이중언어자의 뇌이다. 모국어만을 구사하는 단일언어 사용자가 아닌, 모국어 이외의 언어를 사용하는 이중언어자들의 뇌를 살피는 실험을 통해 언어를 익히는 동안 우리의 뇌가 어떤 작용을 하는지, 그리고 이중 혹은 삼중이나 그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게 되면 어디가 영향을 받는지에 대해 알기 쉽게 요약해놓은 책이다.



나는 내 사고의 기반이 되는 모국어로써 한국어를 구사하고 일본어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그외에 약간의 불어와 중국어 등을 하는 multilingual(다중언어자)이다. 책의 저자나 그의 아들*처럼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는 환경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일본어가 유창한 외할아버지의 영향과 나 스스로의 관심, 그리고 15살부터 20살까지 5년 정도 필리핀에 머무르면서 지금의 상태에 이르렀다. 누군가 나에게 지금 가장 잘 하는 외국어들을 어떻게 배웠느냐 묻는다면, 일본어는 내가 좋아해서 열심히 했고 영어는 살아남기 위해서 했다고 답하곤 한다. 이외의 불어나 중국어는 학교필수과목과 직장필수언어(?)로 만나면서 배우기 시작했는데 재밌기는 하지만 이 둘도 어떻게 보면 살아남기 위해(to survive) 배웠다고 할 수 있다.



* 저자도 그의 아들도 집안 환경의 영향으로 카탈루냐어와 스페인어, 영어를 구사한다.



이 책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에 의해 다중언어의 환경에 있었던 이중언어자들의 경우를 중심적으로 다룬다. 특히 4세 미만의 아기들을 중심으로 진행한 실험의 결과가 매우 흥미롭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작은 존재들은 그들의 무기이자 도구인(?) 오감을 이용해 굉장히 많은 판단과 생각을 머리 속에서 활성화시키고 있었다. 유아시절의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책 속에 소개된 다양한 실험의 결과들을 통해 그 사실을 더 확실하게 증명받았다. 이중언어자들의 뇌를 다루는 책이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인긴이라는 존재의 신비를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나처럼 후천적으로 언어를 습득해서 유창해진 사람들은 자신의 뇌 속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자세하고 확실한 실마리는 이 책에서 찾아낼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중언어자가 되면 받을 수 있는 혜택(?)에 대해서는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양한 언어를 하면 할 수록 뇌가 더 활성화된다는 것과 인지능력이 개선되어 알츠하이머가 찾아오는 시기가 늦추어진다는 사실은 유의미했다(참고로, 이중언어자라고 해서 알츠하이머가 오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다양한 언어를 배우고 사용하다 보면 대체 이 작은 머리 속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궁금해진다. 특히, 일본어로 말하다가 누군가 영어로 말을 걸면 바로 영어로 답하고 어떤 말을 할때는 이 언어가 편하게 느껴지는 등의 상황을 겪으면서 무엇이 내가 이렇게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지 가장 궁금했다. 다행히, 이 책을 읽으면서 그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책을 읽는 한편, 나 자신에 대해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평이벤트로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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