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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 전달자 - 2022년 뉴베리상 100주년 대상 수상작 오늘의 클래식
도나 바르바 이게라 지음, 김선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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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은빛 산책로를 통해 들어오고, 금빛 산책로를 통해 나가지.” - p. 236

'할머니의 할머니, 그리고 그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할머니표 이야기.' 이야기 전달자들은 다만 그렇게 별이 빛나는 하늘 아래 속삭이듯 이야기를 건네었다. 어린 페트라에게 오기까지 입과 입을 거치며 조금씩 달라지는 모양 속엔 그들만의 시간과 세계가 오롯이 담겨 있다. 그렇게 수없이 갈라지고 거듭 퍼지면서, 이야기는 상상도 못한 곳까지 뻗어나간다. 그럴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기도 하면서.


“이야기 전달자, 그래. 그건 네 핏속에 흐르지.

하지만 그냥 나처럼 되고 싶다고?

아니, 아가. 넌 네가 누구인지 알아내야 해.

그리고 알아낼 거야.”

p.12

이건 페냐 가족의 첫째 딸이자 가족과 함께 지구를 떠나도록 선택받은 아이, 페트라 페냐의 이야기다. 줄곧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할머니처럼 되고 싶었던 페냐. 그것들을 소중히 간직한 채 이제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쳐나가야 하는 기로에서 페트라는 더없는 두려움을 느낀다. 이제 수백 년의 미래와 미지의 우주를 뛰어넘는 여정의 장 앞에 페트라와 가족들이 서 있었다.

"···이건 새롭게 시작할 기회야. 일치."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는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어" - p.72

기억과 이야기, 그리고 가족. 페트라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그 모든 소중한 것들은 우주선에 탑승한 바로 그 때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평화와 평등, 일치'를 주장하는 '콜렉티브'에 의해서였다. 파괴될 예정의 지구를 뒤로하고 아예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고자 하는 '콜렉티브'가 이끄는 우주선에 탑승한 사람들. 그들이 마주하게 될 현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수백 년의 무의식 혹은 잠깐의 낮잠 뒤에 과연 그들이 꿈꾸던 새로운 삶과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까?


여느 SF문학에서 볼 수 있듯,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하는 어느 주인공의 여정을 그린 이 이야기는 그러나 페트라의 여정이 되면서 '이야기(쿠엔토)'라는 끈으로 또 다른 형태로 엮여 나간다. 덕분에 이 이야기엔 모험과 용기, 싸움과 평화가 더욱 생생하게 빛을 내며 눈꺼풀 대신 마음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긴다. 어차피 지워지고 허황된 것이라며, 누군가는 보잘 것 없이 여길 무언가를 어떤 이는 당당하게 딛고 선 채 차오르며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마지막 이야기 전달자, 제타4가 아닌 페트라의 이야기다. 

페트라처럼 기억과 이야기, 가족 같은 것을 좋든 싫든 끌어안고 살아온 또 다른 사람으로서 나는 당연하게도 그와 동시에 웃고 글썽이고 분노하며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었지만, 나 또한 쿠엔토 앞에서 그저 눈을 반짝이고 있기도 했다. 다음 문장과 장면을 재촉하면서. 그건 블랑카플로르, 이즈타와 포포카, 노부부의 이야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다만 페트라의 이야기 때문이었을까. 그 순간의 기억은 벌써 흐릿해졌지만, 어쨌든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런 반짝임들로 이 책을 기억할 것 같다.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이야기 없는 세상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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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온 미술관 - 길 위에서 만나는 예술
손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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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전시회 등은 여럿 가본 나지만 공공예술을 앞에 두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생소함을 넘어 감히 궁금해한 적조차 없었다. 왜 나는 그동안 분명히 스쳐지나갔을 그 존재들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을까. 그런 물음을 한 번씩 들게 하는 책이었다.

 

익숙한 장소와 낯선 공간들. 그 사이마다 당당히 서 있는 조형물들엔 제각기 다른 사연과 스토리가 있다. 어쩌면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일상이 되는 길 위에도, 예술이 있었다.

 

그렇다면 거리에서 마주치는 조형물들은 예술성과 대중성 그 사이 어디쯤에 있으려나. 아무튼 주변과 조화를 이뤄내며 묵묵히 존재하고 있을 그것들에 한뼘이나마 더 가까이 다가간 기분이다. 다음에 그 비슷한 것을 만나게 된다면 무심함을 살짝 덜어 조금 더 시선을 마주치고 있을 것만 같기도 하고.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심지어 관람선을 지키지 않아도 좋다. 언제든 편안하게 산책하듯 다가가 만날 수 있다.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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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 첫번째 - 2022 시소 선정 작품집 시소 1
김리윤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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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마다 선정된 시와 소설들이 한 편씩 담겨 있고, 그 작가들의 인터뷰까지 엮여 만들어진 400페이지 남짓의 작품모음집이다. 손에 쥐고 있을 때 다른 보통의 책보다 괜히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데, 아마 어디 하나 빈틈없이 꽉 차 있는 구성의 책이기 때문인 듯 싶다.

 

모두 여성이 화자고 작가로서 이야기되고 흘러가는 작품들이며 하나 하나에 서로 다른 무게감이 실려 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한 작품을 읽고 그 다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특히 최은영 작가님의 소설 '답신'의 여운은 아직도 남아 나를 먹먹하게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고 굴려봐야 하는 문장들이 많아서 작품이 끝날 때마다 곧바로 이어지는 작가들의 인터뷰도 반가웠다. 이 책에 실린 작품을 넘어 만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읽는 속도가 더뎌지기는 했지만. 그저 눈으로 읽었을 뿐인데도 많은 것들을 몸소 지나쳐 온 기분이었고 마지막 장까지 힘겹게 넘겼다. 그럼에도 여전히 묵직한 손과 마음이 나쁘지 않았다.

 

이게 시인지 일기인지 잡념의 배설인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마음속에 소용돌이 치는 단어들을

꺼내놓지 않으면

영원히 속에 박혀버릴 것만 같았다.

그게 내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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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이상하든
김희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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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2장', 대략 50페이지 가량까지 읽었을 땐 이게 무슨 소설인가 싶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해진이라는 이름의 스무 살 여자로, 영화음악을 꿈꾸며 학교는 다니지 않는데 대신 '불면증'이라는 이름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곳엔 실제로 불면증을 앓는 사장이 있고 어딘가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은 손님들이 해진의 앞에 등장했다가 간다. 마치 연극 무대에 올라와 잠시 시선을 끌었다가 자연스레 내려가는 단역의 배우들처럼.

그런 손님들을 일적으로 대하고 익숙한 듯 마주하면서도 그들이 자리를 뜨고 나면 해진은 그들에 대한 생각과 의문을 한 번씩 떠올리곤 한다. 어떻게 저렇게 하고 살까, 혹은 언제쯤 저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와 같은, 해진이 지금껏 지켜봐 온 그들의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삶에 대해서. 정작 자신은 계단 가장자리만을 밟고 다니거나 맨홀 뚜껑은 피해다니는 식의,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강박과 습관, 규칙 같은 것을 여럿 갖고 있으면서 말이다.

그런 해진에게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새로운 인물 둘이 나타나는데.

아르바이트를 타고 돌아가던 중 마주친 웬 동갑의 여자, 승리가 첫만남에 집에 며칠 간 재워달라고 하는 것이다. 사정을 들은 해진은 첫만남에 그를 집에 들여 며칠 간 머무르도록 한다. 거기다 알 수 없는 환청 같은 소리로 말을 걸며 다가오는 누군가. 별안간 모습을 보이면 그 형체, 실루엣 안은 짙은 검은색으로 온통 이루어져 있어 마치 그림자 같기도 한데, 이름이 없다며 지어달라고 부탁하는 알 수 없는 존재와 홀린 듯 대화하는 해진. 그가 사라지고 곧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해진은 이상한 듯 이상하지 않은, 기기묘묘한 감각에 빠진다. 그러다 문득 그의 이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이상한 등장인물들로 가득한, 이상한 듯 이상하지 않아 보이는 이야기인데. 그래서 처음 마주친 이 소설의 인상은 어딘가 이상하고 난해하게, 또 의문스럽게 보이기도 했다. 비슷하게도 저마다의 이상함을 가지고 등장하는 이 수많은 인물들은 대체 뭘까. 배우의 꿈을 가진 승리가 여전히 전전하고 있는 단역, 엑스트라. 단지 그뿐일까.

그런데 자리를 뜬 것도 잠시, 그들 한 명 한 명이 다시 등장했다가 가고, 또 다시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어느새 그 의문은 해진의 의문과 비슷한 것으로 바뀌어 갔다.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어떻게 될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아주 조금 더 그들의 삶을 엿보고 나니 보이고 그래서 받아들이게 되는 것들이 있었나 보다. 온통 이상하다고 느꼈던 처음과 다르게 그들은 그렇게 이상해 보이지도 않았다.

이 짧은 소설에 왜 이렇게나 많은 낯설고 이상한 타인들이 등장하는 걸까 싶었는데, 책이 끝나갈 때쯤엔 그들 모두의 삶을 애틋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저 나와 다른 안타까운 시선이 아니라, 나와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한 애틋함으로. 심지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실루엣 인간에게까지 말이다.



외면할 수 없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황망한 죽음의 그림자를 곁에 딱 붙여 놓은 삶을 비추어내는 이 소설은, 한편으론 아직 채 '모양'조차 갖추지 못한 채 불안하게 흔들거리는 여느 청춘들의 하루하루가 그 안에서 동시에 살아 숨쉬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인가. 소설을 다 읽고 책을 덮은 뒤 다시 마주하게 되는 제목의 느낌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얼마나 이상하든'. 울컥하기도 뭉클해지기도 하는 제목은 소설 속 그 많은 존재들을 아울렀듯, 소설 너머의 다른 모든 존재들까지 마찬가지로 아우르고 있는 것만 같다. 이름도 없던 실루엣 인간은 스스로를 아직 '결정된 존재'가 아니라고 설명하는데, 결국 우리 모두는 다 그런 존재이기도 한 것이니. 영원한 것은 죽음뿐이라고 하지만 어쩌면 죽음의 직전까지도 우리는 여전히, 영원히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뿐인 것이라고. 그렇기에 얼마나 이상하든 한 번 더 지켜보는 시선과 머무름이 삶에 온기와 살아갈 이유를 더해나가는 것이라는, 그 애틋한 마음과 시선의 빛이 이 소설과 작가의 말에 깃들어 있어 책을 덮고도 한동안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보통이라는 건

남들 시선에 달린 문제일뿐 그의 문제는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이상한 것이 그러하듯

이상하고 이상하지 않고는

어디까지나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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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부부 오늘은 또 어디 감수광 - 제주에서 찾은 행복
루씨쏜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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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빛 색깔이 눈에 띄는, 파스텔 컬러의 그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민화의 분위기를 잔뜩 풍긴 채 그려진 어딘가 익숙한 풍경그곳이 제주도임을 단번에 눈치챈 나는 이미 그 낯설고도 반가운 묘한 조합에 완전히 빠져버렸다생각지도 못했지만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조합이 이렇게나 마음에 들어버릴 수가.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좀 더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반, 얼른 다음 것을 보고 싶은 마음 반이 내 안에서 몇 번이고 부딪혔다.

 

세계 여러 곳을 누비다가 이젠 제주에 정착한 지 약 3년이 지난, 동양화과를 전공한 작가만의 제주도 이야기. 다섯 가지 목차 안에 꽤나 촘촘하게 묶여 있는 이야기들은 꼭지마다 그에 걸맞는 그림이 한몸처럼 붙어 있다그래서 책을 다 읽고 손에 놓을 때까지 지루하지가 않았다. 제각기 다르면서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사계절처럼 이 책의 문장들 또한 비슷한 감각으로 읽게 된다. 제주 해녀에서부터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이유, 부부의 현실적인 생존 혹은 생활 이야기까지 돌아보고 나면 어느새 한 해가 지나가 있듯 한 챕터가 끝나 있었다, 하늘, , 바다, 동물, 사람. 한지에 채색되었다고 하는 각양각색의 그림을 하나씩 보다 보면 내가 몰랐던 제주의 모습을 하나씩 알아가는 기분이 든다. 이 책에 담긴 그림 속엔 작가 부부의 영혼이 그대로 담긴 것만 같은 고양이들이 모든 그림마다 자리하고 있는데, 제주에 살기로 결심하고 결국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마음가짐과 삶으로 제주가 더욱 따뜻하게 거듭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을 글과 그림으로 엿보는 것만으로도 따스한 온기가 절로 스며들었다. 제주가,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따뜻한 기운으로 서로 공존하고 있는지를 느끼면서, 보는 것만으로도 가득찬 기분이 한동안 파스텔빛의 은은함으로 머물렀다.

 

따스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사랑할 이유가 너무 많아서,

나에게 제주는 파스텔빛 그 자체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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