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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붙일 수 없는 자 ㅣ 사뮈엘 베케트 선집
사뮈엘 베케트 지음, 전승화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6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언젠가 지인으로부터 히토 슈타이얼의 『스크린의 추방자들』를 추천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책을 구매하려고 보니 이미 절판된 상태였다. 중고라도 구해보려고 했으나 실패하였다. 출판사에 여분의 책이 남아있을까 하여, 난생처음으로 출판사에 이메일을 보냈다. 곧 개정판이 나올 예정이라고 연락이 왔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다시 출판해 준다고 하여 기뻤다. 그리고 감사했다. 워크룸 프레스. 내가 이 출판사의 이름을 잊지 못하게 된 계기다. 그리고 독자로서 출판사에게 고마운 일이 또 있었다. 워크룸 프레스에서 그 당시 국내에 발표되지 않았던, 사무엘 베케트 소설을 출간해 주기로 한 것이다.
학부 때, 나는 문창과 세계문학 강독 수업에서 사무엘 베케트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일주일에 장편소설 1권씩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수업이었는데, 재미있어서 1학기와 2학기 모두 수강하였다. 나는 그 수업에서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게 되었다. 책을 펼치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단박에 읽어버렸다. (물론, 내가 작품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가독성이 아니다.) 온몸에 전율이 왔다. 다 읽은 후에도 머릿속에서 문장이 사라지지 않았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은 후,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득했는데, 국내에 번역된 작품만으로는 해소가 안 됐다. 워크룸 프레스에서 사무엘 베케트의 소설이 출간되자마자 샀다.
- 겉장과 디자인
무(無)와 침묵과 더불어, ‘죽음’은 베케트 소설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테마이다. 그래서인지 사무엘 베케트 선집은 죽음을 은유하듯 암회색과 검은색으로 되어있다. (정영문 작가의 책들이 대부분 검은색인 것과 같이) 또 다른 특징은 모두 양장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겉장이 너무 두껍지 않아서 들고 다니면서 읽기도 좋고 소장용으로도 좋다. 겉장 재질은 천으로 되어있어서 만질 때 촉감이 좋다. 그러나 재질이 천으로 되어서 그런지, 손으로 많이 만지고 읽다 보면 제목이 쉽게 지워진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책 표면에는 작은 점들이 찍혀 있고, 점들이 모여 원 모양을 이루고 있다. 디지털 이미지에서의 픽셀을 연상시킨다. 책을 펼치면, 첫 페이지에 검은색 돌의 이미지가 있다. 종이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돌을 올려놓는 것처럼, 책 위에 돌을 올려놓은 듯한 모습이다. 희미하게 보이던 형체(겉장)가 책을 펼치는 순간, 언어(소설)를 통해 선명한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 것처럼. 여러 권을 구매하고 싶을 정도로 디자인이 멋지다.
- 이력과 번역
베케트가 영어와 불어로 소설을 썼다. 그의 소설은 문장 구조도 복잡하여 번역하기 굉장히 어렵다고 알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번역할 때 유의했던 점이 책의 앞부분에 먼저 설명되어 있다.
- 이름 붙일 수 없는 자
“가장 간단한 방법은 시작하지 않은 걸 거야. 하지만 나는 시작해야만 하거든. 그러니까 나는 반드시 계속해야만 한다고. 어쩌면 결국 나는 뒤죽박죽 쌓여 있는 잡동사니 더미 속에, 아주 푹 파묻혀버릴지도 몰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고 감, 부산스럽고 정신없는 잡화점 같은 분위기. 자 이것 봐, 그래도 나는 아무렇지 않아.”
소설의 초반부 문장을 발췌하였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뒤죽박죽 쌓여 있는 잡동사니 더미’와 ‘부산스럽고 정신없는 잡화점 같은 분위기’로 이뤄져 있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은 인과관계에 의한 사건으로 이뤄져 있는 게 아니라, 오직 화자의 진술로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 그래서 독자는 정확한 공간도 시간도 인물도 확인되지 않은 상태로, 오직 화자의 목소리만을 따라가게 되는데, 어느 순간에 이르면 이 모호한 세계 속에서 화자와 내가 아주 가까워있다는 생각이 든다. 화자의 목소리를 신뢰하게 된다. 그가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 소설이 끝나기 전까지는 나와 함께 해줄 것 같다는 그런 믿음이 생겨난다. 그 믿음이 한번 생기면, 이 소설이 더욱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그리고 말론, 몰로이와 같이, 베케트의 이전 소설에서 만났던 인물들을 이 소설 안에서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베케트의 다른 소설을 접한 사람이라면 더욱더 재미있게 있을 수 있다.
“에이 설마, 만일 문이 열리면, 내가 있을 거야, 침묵이 있겠지, 내가 있는 그곳에, 나는 모르겠다, 나는 그걸 영원히 모를 거야, 침묵 속에는 누구도 알지 못해, 계속해야만 해, 나는 곧 계속할 거야.”
이 소설에는 ‘계속’이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마지막도 ‘계속할 거야’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데, 화자의 다짐처럼 이 소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것만 같다. 그렇다면, 화자는 왜 계속하는가. 화자는 말을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되돌리고자 말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것은 역설이다. 알랭 바디우는 언어에 대해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축소하기 위해서는, 즉 빼기 위해서는 더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언어를 구성하는 작용이다."
말하면 말할수록, 아무것도 말하지 않게 된다. 침묵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것이 베케트가 추구하는 언어적 무(無)의 상태이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 상단부에는 ‘누구도 알지 못해, 계속해야만 해. 나는 곧 계속할 거야’라는 문장만 있고, 페이지 대부분이 백지로 남겨져있다. 베케트가 말을 반복함으로써 말의 힘을 무화 시키고, 언어 이전의 삶, 그러니까 침묵의 삶으로 회귀하고자 했듯, 이 소설은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이른다.
무(無)의 상태에 이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력함이 아니라, 반복할 수 있는 힘이다. 베케트는 말을 통해 힘을 소진시키려고 한다. ‘소진되었다.’가 아니라, 소진시키고자 한다는 건 아직 소진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질 들뢰즈가 쓴 베케트의 영화에 대한 에세이 제목이 『소진된 인간』인 것은 이유가 다 있다.) 그에게 힘이 ‘아직’ 소진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는 아직 힘이 있다. 나는 늘 베케트의 소설에서 강력한 생명력을 느낀다.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알랭 바디우의 『베케트에 대하여』 (민음사)
나탈리 레제의 『사뮈엘 베케트의 말 없는 삶』 (워크룸 프레스)
질 들뢰즈 『소진된 인간』 (문학과 지성사)
- 작가 연보와 작품 연보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작가 연보도 아주 구체적으로 수록해놓았다. 베케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이해하는 일은 베케트의 소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흥미로운 지점은 작가 연보뿐만 아니라 작품 연보가 따로 정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작가 연보와 작품 연보는 내용상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작품 연보는 한눈에 잘 들어오도록 디자인되었기 때문에 독자가 베케트의 작가 연보를 보면서 작품 하나하나를 추려내지 않아도 된다. 출판사의 세심한 배려라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작품 연보를 보면, 이렇게 많은 작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국내에 출간된 베케트 서적이 얼마나 적었는지 알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