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남자 - The fantastic Deer-Man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2
마키메 마나부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4년 전, 일본의 나라(奈良) 현에 처음 갔을 때 봤던 광경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달리는 자동차도 멈추게 하는 사슴들 때문이다. 주위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히 길을 건너는 사슴의 도도한 자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라의 사슴은 여름철이라면 특히 주의해야 한다. 수사슴의 뿔 때문인데, 관광객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그 거대한 뿔로 위협하며 먹이를 재촉하는 야생의 모습은 식은땀이 흐를 정도다. 그럼에도 나라에서 사슴을 빼면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나라 사람들은 사슴을 신성시한다. 하고많은 동물 중에 왜 하필 사슴인 걸까?

 

신화적인 측면에서 사슴은 나라에 있는 가스가타이샤(春日大社) 신사의 사자(使者)라고 한다. 가스가타이샤가 창건될 때 가시마신궁(鹿島神宮)의 제신인 다케미카즈치노미코토(武甕槌命)가 이바라키(茨城) 현에서 흰 사슴을 타고 나라에 왔다는 전설이 나라 사슴의 유래로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신화적인 부분을 역사와 코미디로 버무린 발칙하고 유쾌한 역사판타지다.

 

암사슴이 입을 우물우물 움직였다. 마치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고 느낀 그 순간, 사슴이 휘이이하고 울었다. 정말로 휘이이하고 우는 것이었다.

(중략)

온몸이 완전히 굳어버린 내게 사슴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 간나즈키(10)이야, 선생. 이제 선생이 나설 때가 왔어.”

 

이 책의 작가는 익히 알고 있었다. ‘모리미 도미히코와 함께 교토를 대표하는 작가로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 제목을 봤을 때, 분명 나라(奈良)’와 관련된 이야기이리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판타지는 짐작하지 못했다. 12간지의 이야기나 오사카, 교토, 나라의 사자(使者)인 동물들, 신과 전설 이야기는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일본인들에게 친숙한 설화로써, 역사적 사실을 가미해 더욱 짜임새 있는 구조로 소설을 완성했다. 이렇게 수수한 제목에 판타지를 입힐 생각을 한 작가에게 된통 당한 느낌이다. 일본 고유의 신화가 흥미를 부추긴다.

 

이 책의 또 한 가지 매력은 일본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의 흔적이 묻어난다는 점이다. 학교에 처음 발령이 난 젊은 선생과 학생들의 마찰, 주인공이 멋대로 붙인 다른 선생들의 별명, 유별나게 올곧은 주인공의 성격 등, 21세기 버전 도련님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다. 그리고 동물들이 냉소적인 어조로 인간을 평가하는 부분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떠올리게 한다. 나쓰메 소세키를 향한 작가의 애정이 엿보인다. 비교해서 읽어보는 즐거움도 있을 것 같다.

 

이튿날 1학년 A반 교실에 들어선 순간 앞 칠판에 이런 글씨가 적혀 있는 것이 보였다.

양말 네 켤레에 천 엔.’

바보 같으니라고.”

모두에게 다 들리도록 중얼거리고 칠판을 지웠다.

이튿날 수업.

바보라고 하지 마, 멍텅구리라고 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글이 칠판에 적혀 있었지만 말없이 그걸 지웠다.

 

정말이지 인간들은 어리석기 짝이 없어. 자기들이 대단한 줄 알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바보가 되어가. 그래서 현실을 회피하는 행동이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도무지 깨닫지 못해.(중략)”

 

2008, 사슴남자는 일본에서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당시 인기 스타들이 출연한 드라마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책을 다 읽고 드라마를 봤다. 역시 시각적 효과는 원작의 이해도와 재미를 한층 더 끌어올린다. 소설 속에 나오는 유적지와 나라만이 지니고 있는 특유의 정서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서 이야기의 발랄함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소설과 드라마를 접해보면 나라의 매력을 아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 고즈넉함에 반할 수밖에 없으리라 확신한다.

 

  

 

휘이이는 뭐야? 너 가끔 그런 소리를 내잖아.”

아아, 그건 그냥 인사야.(중략) 우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알아듣겠지.

(중략) 그런 사람을 마지막으로 만난 지는 이제 삼사 백년쯤 되었지.”

, 그 사람 남자지? 혹시 이름이 바쇼 아니었나?”

이름은 몰라. 어쨌든 입이 험한 남자였어. 인사를 했더니 대뜸 방귀 뀌는 소리 같다고 해서 힘껏 차주었지. 아프다면서 울더군.”

 

휘이이 구슬피 우는 밤 사슴 (びいと尻声悲夜乃鹿)

바쇼의 시가 내 가슴을 쳤다.

 

일본의 정형시인 하이쿠(俳句)의 대가 바쇼도 등장한다. 하이쿠는 번역의 한계가 있어 특유의 아름다운 감성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데, 시 한 구절이 소설 내용과 맞물려 신기하리만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이쯤 되니 작가의 상상력에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이렇듯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들이 소설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이야기는 단순하고 유치해 보일 수도 있다. 지진이 일어나는 원인과 해결 방법을 미신적인 부분에서 찾으니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고향을 배경으로 멋진 상상력을 펼쳐낸 작가의 글재주가 놀랍다. 역자 후기에서는, 우리 작가 가운데 누군가 경주나 부여, 공주 같은 곳을 배경으로 이런 근사한 상상력을 발휘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데 나 역시 이런 생각을 했다. 일종의 부러움일지도 모르겠다. 독특한 세계관을 지닌 작가의 역량에 감탄하며, 다음 작품에는 어떤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할지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편안함의 배신
마크 쉔 & 크리스틴 로버그 지음, 김성훈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현재 세계적으로 웨어러블 기기(wearable device)가 각광받고 있다. 몸에 장착할 수 있는 기기를 말하는데, 스마트 손목시계가 대표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스마트 폰의 일부 기능을 담은 이 시계는 현재 각종 IT업체에서 소비자들에게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또한 이제 곧 출시 예정인 스마트 글라스와 구글 콘택트렌즈, 건강관리 전용 손목시계들도 유비쿼터스 시대의 진화를 재촉하고 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스마트 기계들에 적응할 틈도 없을 지경이다. 

세상 참 편해졌네.’ 부모님 세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말 그대로 세상은 정말 편리해졌다. 이제 더 이상 공중전화 박스 앞에서 길게 줄을 서지 않아도 되고, 행여나 약속 시간에 늦을까 안절부절 하지 않아도 되며,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기 위해 레코드숍에 가지 않아도 된다. 불과 20년 만에 세상은 이렇게 변했다. 넘치는 정보와 기계들 속에서 우리의 삶은 편할 대로 편해졌다. 그런데 우리는 왜 불안과 우울증에서 자유롭지 못한 걸까? 어떻게 해야 마음이 편해질까? 작가는 간단히 대답한다. '불편함을 즐겨라!'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작가가 치료했던 환자들의 이야기로 편안함의 역설을 설명한다. 스트레스를 받는 사건에 동요를 하게 되면 불편함과 두려움을 느끼는데, 이 때 내면에 존재하는 생존본능이 순간적으로 편안해지기 위해 나쁜 습관을 만들어 질병의 뿌리를 내리게 한다는 것이다. 2부는 불편함을 관리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인간의 삶에서 불편함은 결코 완전히 없앨 수 없으며, 관리하는 방법을 터득한다면 오히려 성장과 변화로 이어지는 기회가 된다고 말한다. 이 모든 주장은 뇌과학과 심리학 이론에 기초한 실제 연구결과로 설득력을 갖춘다.

 

 

책 제목에 배신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역발상을 의미하는 단어는 역시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와 비슷한 책으로 긍정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 2011)을 쉽게 떠올릴 수 있겠다. 현대인에게 만연한 긍정주의가 결국 우리의 발등을 찍는다는 내용인데, 편안함의 배신에도 잘 나타나있다.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신경외과 전문의를 만나 수술을 받으라거나, 다음에 불안이나 초조함을 느낄 때면 그저 모든 게 다 잘 될 거야라는 말만 반복하라는 황당한 주문을 내놓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27p)

두 책 모두 상당히 현실적이다. 긍정과 부정이라는 환상에 빠지지 않으려면 비판적 사고를 갖춰야 한다는 말에는, 현대인은 편안함을 추구하며 습관적으로 현실에 안주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이와 유사하게 단순해진 현대인의 사고방식을 꼬집는 책도 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니콜라스 카, 2011)에서는 기술과 도구의 발전이 사람의 지적 사고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 낱낱이 해부하며, 사고력을 스스로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종합해보면 결국 하나의 핵심을 가리키고 있다. 바로 편안함의 모순이다.

 

지금까지 편안함을 부정하는 책은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편안해지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우선순위를 매기며 계획대로 사는 방법에만 치중한 책이 즐비했다. 그런 책들은 늘 아쉬움이 남았는데, 이유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빠져있기 때문이었다. 작가는 현대인에게 불편함이란 필요악과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우리가 성장하고 적응하고 더 나은 변화를 일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수준의 불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작가의 주장을 믿지 않았다. 불편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고통을 참으라는 말밖에 더 되나 싶었다. 그러나 정말 믿지 말아야 했던 것은 나의 안일한 고정관념이었다. 순간의 불편함을 회피하지 말고 직면하여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야한다. 정글 같은 세상에서 진정한 생존을 원한다면 이 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토리 자매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떨어뜨림에 익숙해지면 으깨진 과일에 더 이상 미련은 없다 서효인 작가는 과열된 경쟁사회 속에 무감각해진 현대인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슬프지만 무섭도록 현실적인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서로 경쟁을 해야만 살아남는 정글 같은 곳에서 현대인은 고독해진다. 쓰레기 냄새를 감추려고 향수를 쏟아 부은 듯, 가면 속에 곪은 상처를 감추고 행복한 살아간다. 저자는 그런 우리의 곪은 상처를 가만히 어루만지며 질문한다.당신의 행복은 안녕하십니까?’

 

도토리는 일본어로 돈구리라고 발음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자매 이름은 코와 구리, 둘을 합치면 도토리가 된다. 이런 어이없는 이름을 지어준 부모는 자매의 어린 시절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일찍이 세상을 떠났다. 그 후로 자매는 친척집을 전전하며 힘든 세월을 견뎌낸다. 마지막으로 함께 살던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면서 자매는 유산으로 집을 물려받고, 지금까지 할아버지에게 받았던 사랑을 베풀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아는 사람이 아닌 모르는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을 때, 외로운 사람들은 도토리 자매에게 메일을 보낸다. 그러면 도토리 자매는 반드시 답장을 한다. 무일푼의 일이지만 사람들의 상처 난 마음을 보듬는다. 언니의 연애, 첫사랑과의 추억, 야스미씨의 메일 등 일련의 상황 속에서 자매는 진정한 행복에 대해 스스로 깨달아간다.

 

지금은 진짜 여행을 하고 있지만, 가령 여행을 하지 않는 때라도, 여행을 하듯 사는 삶이로군. 그런 생각을 했다. 어디로 갈지는 모른다. , 꿈과 현실이 뒤섞여, 가끔 맞닿거나 떨어지는 광활한 바닷속을. 도토리 자매는 오늘도 헤쳐 나간다.

저자 요시모토 바나나는 상실과 고독에 빠진 현대인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답한다. 이는 그의 대표작인 키친이나 암리타에도 잘 나타나는데, 두 작품 모두 가족이나 연인을 잃은 주인공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 상실감과 상처는 사람으로 극복하고 일상의 행복으로 치유해 간다. 작가는 모든 사람이 한데 녹아 섞여있다고 말한다. 사람은 따로 존재할 수 없으며, 소소한 행복이야말로 사람에게 필요한 원동력이라고 말이다.

 

잔잔한 이 이야기의 매력은 소설과 에세이가 적절힌 섞인 듯한 문체에 있다.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지만 그렇다고 에세이처럼 노골적이지도 않다. 작가의 솔직함이 문체에 담백하게 녹아들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중간에 한국 이야기가 잠깐 나오는데, ‘다들 살아있다는 느낌의 활기가 있고, 피어오르는 에너지가 마치 눈에 보이는 것 같다는 작가의 표현은 한국인 독자로서 기쁘고 고마울 뿐이다. 유명 방송인 콤비와 가면라이더, 첫사랑의 추억과 반전, 책 중간에 삽입된 감성 사진, 오키나와 여행 에피소드 들은 요시모토 바나나 특유의 분위기로 독자의 흥미를 이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을 읽을 때면, 조미료나 향신료를 가미하지 않은 웰빙 음식을 먹는 기분이다. 빠른 전개나 자극성이 강한 것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조금 밋밋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은근한 변화는 아주 건강하다. 심신이 지치고 고독할 때 독자들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을 기다린다. ‘도토리 자매의 답장을 기다리듯. 이제 그 오랜 기다림에 응답한 작가의 답장을 찬찬히 음미해 볼 차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또는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일정한 구조 속에서 배경과 등장인물의 행동, 사상, 심리 따위를 통해 인간의 모습이나 사회상을 산문체의 문학 양식으로 표현하는 사람사전에서 밝히는 소설가의 정의다. 새삼 소설가의 정의를 되새기는 이유는 이언 매큐언의 작가적 역량에 대한 나의 온전한 경외심 때문이다.

20072, 이 책이 영화로 개봉했지만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영화를 보지 못했는데 대충 줄거리는 알고 있었다. 내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대하지 않았다. 얼마나 건방진 생각이었는지, 책을 집고 열 페이지가 채 넘어가지 않았을 무렵 깨달았다. 단지 눈으로 글자를 좇을 뿐이었는데 연필과 색연필로 스케치하듯 아름다운 색감이 선명한 풍경을 그려냈다. 그 감각은 너무나 생경했지만 소설 자체를 음미할 수 있는 충분한 장치가 되었다. 이는 영화로 흥행할 수 없는 이유다.

 

책은 1, 2, 3, 에필로그로 구성된다. 각 장마다 서로 다른 시선과 시간을 구분하여 담아냈다. 11935년 영국의 한 저택에서 하루 동안 일어나는 일이다. 이야기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어린 브리오니가 저녁에 올 손님과 가족들에게 연극을 선보이기 위해 희곡을 쓰고 준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저택에 머물게 된 사촌 롤라와 쌍둥이 형제가 연극에 참여하지만 연극은 무산된다. 브리오니의 언니인 세실리아와 저택 가정부의 아들 로비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데, 브리오니는 자신의 방 창문을 통해 두 사람을 발견한다. 세실리아가 로비에게 지시받은 듯 옷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그날 오후, 브리오니는 로비로부터 세실리아에게 편지를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몰래 편지를 뜯어보는데, 편지에는 성희롱에 가까운 글이 쓰여 있다. 브리오니는 충격에 휩싸이고 이 사실을 롤라에게 말한다. 뒤늦게 깨달은 로비는 세실리아에게 사과하고, 서재에서 둘은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깨닫는다. 그날 밤, 쌍둥이 형제가 갑자기 가출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쌍둥이 형제를 찾으러 모든 사람이 수색하는데, 브리오니는 누군가에게 강간을 당하던 롤라를 발견한다. 유일한 목격자인 브리오니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범인은 로비라고 지명한다. 2는 감옥에 갔다가 전쟁터로 끌려간 로비의 이야기를 다룬다. 피 냄새가 진동하는 시체 사이를 행군하는 로비는 세실리아만을 생각하며 고난의 날들을 이겨낸다. 3는 간호사가 된 브리오니의 이야기다. 진실을 알게 되고 지난 날 자신이 저지른 실수가 얼마나 큰 파멸을 일으켰는지 자책하며 참회한다

 

1부의 줄거리 요약을 자세히 한 이유는 사건의 발단과 간극의 긴밀함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어린 브리오니가 바라보는 시선으로 사건을 그려내고, 단 하루 동안의 일을 긴 호흡으로 끝까지 이끌어내는 작가의 능력은 놀라울 뿐이다. 계속해서 어긋나는 서로의 시선과 오해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6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감정에 녹아든다.

1부가 아름다운 동화라면 2부는 전쟁의 대서사시이고 3부는 자전적 에세이 같은 느낌이다. 장르가 다른 세 편의 작품이 연결고리가 되어 하나의 주제로 좁혀지는데, 섬세한 묘사와 빠른 전개 속도는 독자를 단번에 사로잡는다.

 

이렇게 해서 각자의 입장이, 앞으로 몇 주, 아니 몇 달 동안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드러나고, 개인적으로는 그후로도 오랜 세월을 악몽처럼 쫓아다니며 그들을 괴롭히게 될 각자의 입장이 호숫가에서 대화를 나누는 바로 이 순간에 결정되었다.” (241p)

서로 다른 각자의 입장은 얽히고설켜 운명처럼 다가온다. 그것은 파멸과 절망에서 증오와 참회로 이어진다. 이 소설을 한 단어로 규정짓는다면 나는 단절이라고 하고 싶다. 대화의 단절, 이해의 단절, 입장의 단절은 오해의 불씨가 되어 서로에게 족쇄를 만들었다. 인간 내면의 오만함, 가족의 해체, 전쟁과 폭력이 이를 증명한다

 

이언 매큐언은 이전 작품들에서 근친상간이나 폭력, 강간, 인간내면의 숨은 본능 등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이야기를 주로 다뤘다. 섬세한 표현력과 문장력으로 찬사를 받았지만 자극적인 내용은 여론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다 1998, <암스테르담>을 출간하고 영국 문학상인 부커 상을 수상하면서 유명 작가 대열에 합류한다. 그리고 2001, <속죄>가 출간되자 전 세계 독자들과 비평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최고 걸작이라는 극찬이 쏟아졌다.

 

책을 읽고 이렇게 오랫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는 기분은 오랜만이다. 영화 한편을 본 것 같지만 영화 그 이상이다. 책을 읽고 나서 영화를 봤는데, 상상했던 풍경과 비슷했지만 시각적 효과의 한계 때문인지 역시나 아쉽다. 원작의 묵직함을 따라잡기에 영상매체는 너무 가볍다. 그리고 나는 자신의 역량을 한껏 발휘한 작가의 한계는 어디까지일지 갑자기 무서워졌다. 혹시 아직 접하지 못했다면 꼭 책을 권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예요.”

 

 

고대 국가들은 하나의 민족으로 성장할 때마다 필수불가결하게 조직이 형성되었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였고 혼란을 막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수단이었다. 질서와 규칙이 생기고 평화와 안정이 지속되었지만 동시에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구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배자는 권력과 폭력을 이용했고 피지배자들은 복종과 저항을 반복하며, 인류의 역사는 만들어졌다. 이것이 역사 속에서만 존재하는 일이라고 치부하겠지만, 현실은 과거와 다를 바 없다. 보이지 않는 독재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전쟁과 폭력, 계급사회의 심화는 우리를 마비시킨다. 이 책은 보이는 것을 외면하는 눈먼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횡단보도에 줄서있는 차안에서 한 남자는 눈이 멀었다. 어둠이 아닌 빛으로 가득한 백색 실명이었다. 그것은 예고 없이 일어난 일이었고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남자는 누군가에게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향했고 다음날 아내와 함께 진찰을 받는다. 진찰이 끝난 후, 의사는 관련 서적을 뒤적이다가 잠이 드는데 다음날 눈이 멀고 만다. 그리고 조금씩 그 증상은 급속도로 전염되어 간다. 단 한사람, 의사의 아내만 빼고. 정부는 눈먼 사람들을 격리시키면 전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먹고 자고 배출하는 생활에 충실해지고, 세상은 무너져간다. 태초의 시대로 돌아간 듯 거리에는 쓰레기와 시체, 온갖 오물로 쌓여가고 사람들은 절망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의사의 아내는 희생을 결심하고 동료들을 이끌며 화합과 희망을 도모한다.

 

만약 모든 사람이 눈이 먼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소설은 그 의문점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혼돈과 절망이 뒤덮인 상황에서, 작가는 인간의 본성을 솔직하고 신랄하게 표현했다. 지배자와 권력이 윤리적 가치관을 파괴하는 상황은 비단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이야기가 아님을 강조하며 진정한 신뢰와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한 가지 눈여겨 볼 점은, ‘의사의 아내만 눈이 보이는 설정이 소설의 종교적 특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자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어떤 특정한 사람들이 어떤 특정한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락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하면서 중대한 치명적 오류들이 생겨났다 톨스토이의 <국가는 폭력이다>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는 그 치명적 오류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오류들을 바로잡기에는 희생과 고난이 따른다는 점 또한 잘 알기에 우리는 스스로 눈먼 자들이 되어버렸다. 그 결과,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알고 싶어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제 우리는 그 무지함을 인식하고 눈을 떠야만 한다. ‘눈뜬 자들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