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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진달래꽃 - 김소월 시집, 1925년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소와다리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김소월 지음 / 소와다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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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주문했습니다ㅠㅠ 경성패키지 받아볼 수 있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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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다리 2015-12-22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경성패키지로 23일부터 출고됩니다. 출고가 지연되어 송구합니다. 작은 출판사라 이런 큰 일이 처음이라 조금 헤맸습니다....ㅠㅠ
 
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시인선 52
이문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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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메마른 감성을 채워줄 따뜻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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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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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워하지 말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모리스 라벨의 피아노 연주곡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와 같은 제목이다. 벨라스케스가 그린 <시녀들>이라는 작품이 책 표지인 이 책의 첫인상은 아주 강렬하다. 그림의 주인공은 한 가운데 새하얀 공주님이지만, 표지에서 스포트라이트는 온전히 시녀에게 쏠려 있다. 왕녀가 아닌 시녀를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전구가 꺼지듯 어느 날 갑자기 빛이 사라져버린 거야() 그때 알았지, 인간의 영혼은 저 필라멘트와 같다는 사실을() 인간은 참 우매해. 그 빛이 실은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걸 모르니까() 자신의 에너지를 몽땅 던져주고 자신은 줄곧 어둠 속에 묻혀 있지. 어둠 속에서 그들을 부러워하고... 또 자신의 주변은 어두우니까... 그들에게 몰표를 던져. (186p)

 

책의 구성이 참 독특하다. 하나의 이야기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연결되어 두 개의 결말로 끝이 난다. 세 사람의 인물 위주로 전개되는데, 액자 식 구성의 반전이 극의 안타까움을 한껏 끌어올린다.

작가는 이 소설을 못생긴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를 다룬 최초의 소설이라고 밝혔다. 항상 아름다운 미모의 주인공을 다룬 소설들과는 확실히 색다른 점이다. 하지만 그저 외모에만 비중을 둔 소설이 아니라 총체적인 청춘의 아픔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우월주의가 만연한 현실에서 못생긴 여자가 느꼈을 모멸감의 되풀이는 지금 가까운 현실에서 똑같이 일어난다. 모멸감(2014, 문학과지성사)의 저자 김찬호는 전통적인 신분질서가 기준을 달리 한 채 여전히 우리 사회 속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외모, 학벌, , 지위 등으로 위계서열을 따지며 신분적 우월감을 느끼는 한국인의 정서에는, 사실 박민규 작가가 말하는 부끄러움부러움이 뿌리 박혀 있다. 끝없이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좀더 완벽한 스펙을 원하는 한국 사회를 향해 작가는 애석함을 감추지 못한다.

 

자본주의의 바퀴는 부끄러움이고, 자본주의의 동력은 부러움이었다. 닮으려 애를 쓰고 갖추려 기를 쓰는 여자애들을 보며 게다가 이것은 자가발전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부끄러움과 부러움이 있는 한 인간은 결코 자본주의의 굴레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308p)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민주주의니 다수결이니 하면서도 왜 99%의 인간들이 1%의 인간들에게 꼼짝 못하고 살아가는지. 왜 다수가 소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야. 그건 끝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기 때문이야. (174p)

 

세상을 향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눈에만 보이는 아름다움의 시시함이다. 사회가 바라는 이상향에 휘둘려 빛 좋은 개살구로 연명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볼 일이다. 작가는 독자에게 진솔한 목소리로 말한다. ‘와와 하지 마시고 예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서로의 빛을, 서로를 위해 쓰시기 바랍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여념이 없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화려한 물질이 아니라 진짜 자신의 얼굴이다. 누구에게 보이지도, 보여 줄 일도 없는 사랑을 해야 한다고 작가는 강조한다.

 

변기에 앉은 자신의 엉덩이가 낸 소리보다는, 더 크게... 더 많이 <사랑해>를 외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몇 줌의 부스러기처럼 떨어져 있는 자판들을 어루만지며, 나는 다시 그녀를 생각한다. (193p)

 

누군가 박민규 작가의 소설을 루저 감성의 표본이라고 말했다. 그의 다른 소설도 그러하듯 그저 한탄만 늘어놓는 루저의 핑계일 뿐이라고. 하지만 부조리한 현실을 직시하는 작가의 생각을 루저라고 한정짓는 것 자체가 오히려 현실 왜곡의 출발점이다. 정말 핑계일 뿐일까. 지금 힘겹게 살아가는 청춘의 삶을 그저 핑계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여느 책에서 말하듯 상위 1%가 나머지 99%에게 청춘이라면 당연히 아픈 것이라고 말하는 눈 가리고 아웅식의 격려가 이 시대 청춘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는 제고해봐야 한다.

 

즉 외모는 돈보다 더 절대적이야. 아름다움과 추함의 차이는 그만큼 커, 왠지 알아? 아름다움이 그만큼 대단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만큼 보잘것없기 때문이야. 보잘것없는 인간이므로 보이는 것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거야. 보잘것없는 인간일수록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세상을 사는 거라구. (219p)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2008, 한겨레출판)에서 작가는, 따라 뛰지 않고, 속지 말고, 찬찬히 들여다보고, 행동하는 것이 인생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아주 잘 알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 또한 잘 알고 있다. 비교의 함정에 빠져 궁지에 몰리도록 스스로를 부추길 때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세상을 살지 말라는 박민규 식 인생론을 떠올려 보자. 더 이상 함정에 빠지는 실수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박민규

1968년에 태어났고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 [지구영웅전설]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았으며 2005년 소설집 [카스테라]로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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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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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가 쉽게 욱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냥 웃어넘기거나 무시하면 그만인 일에도 사사건건 화를 주체하지 못하며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현상은 빈도에 차이가 있겠지만 경쟁사회에서 발버둥치는 현대인에게 종종 나타나는 감정이라고 생각된다. 대체 이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내 안에서 이런 감정이 언제부터, 왜 생겨난 것일까. 이 감정의 소용돌이를 어떻게 다스려야 좋을까. 작가는 모멸감에 해답이 있다고 말한다.

 

모멸감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이렇게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것 같다. 다소 생소한 단어지만 사실 한국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감정이라고 한다. ‘모욕과 비슷하지만 확연히 다른 모멸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마주치는 감정이다. 작가는 모욕과 모멸이 보통 동의어로 쓰이지만 사실은 엄연히 다르다고 말한다. ‘모욕은 적나라하게 가해지는 공격적인 언행이며 적대적인 의도가 강하게 깔려 있는 반면, ‘모멸은 모욕과 경멸이 섞여 있고 은연중에 무시하고 깔보는 태도이며 그 목적이나 의도가 분명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자기도 모르는 새에 존재가치를 부정당하는 듯한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감정이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작가는 한국인의 내면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모멸감에 대해서 다양한 각도로 고찰한다.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다양한 문학작품이나 영화에서 그 존재를 귀납법적으로 짚어냈다.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린 모멸의 기본속성을 밝히고 비슷한 맥락의 감정인 수치심의 양면성, ‘모욕의 기능 등을 여러 가지 사례로 분석했다. 그리고 모멸감이 만연해진 역사적 배경과 모멸이 존재하는 형태를 일곱 가지의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정리했다. 끝으로 모멸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를 개선하고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며 마무리한다.

 

나는 작가가 주장하는 모멸을 주고받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자본주의에 녹아있는 신분의식과 집단주의, 위계서열에 집중하고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절대적인 기준이 돼버렸고 결국 돈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결국 자신의 삶 자체가 수단이 되어 타인의 삶마저 수단으로 인식하는 비인간화된 현실이 도래했다. 신분의식과 집단주의, 위계서열은 이런 현실을 더욱 부추긴다.

 

19506.25 전쟁 이후로 신분제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기준을 달리 한 채 여전히 존재한다. 학력, 빈부, 외모, 직업, 지위 등이 더욱 강력해진 신분질서를 만들었다. 이런 질서들은 자연히 위계서열을 만들어냈고 사람들은 구분 짓기에 여념이 없어졌다. 이를 명확히 드러내는 사례로써 작가는 감정노동에 대해 역설했다. 책에 실린 사례를 읽어보면, ‘손님은 왕이라는 슬로건 아래 아랫것으로서 무조건 굽실거려야 마땅하고 또 그것을 당연시 여기는 한국인의 인식은 거대한 콤플렉스 덩어리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미용실을 찾은 한 20대 후반 남성이 머리 염색을 원했다. (중략) 그리고 디자이너의 지시를 받은 고 씨가 남성의 머리에 염색약을 발랐다. 그러자 그 남성은 정색을 하고 화를 내며 애 뭐야? 왜 인턴이 내 머리를 만져. 원장 오라고 해!”

 

어느 손님은 매장에서 종업원이 실수를 하자,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무릎 꿇어. 대학은 나왔어?”

 

나 역시 이런 경험이 있다. 내가 해본 아르바이트의 8할이 서비스직이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영화관이다. 회사 방침 자체가 손님은 왕이었고 그 어떤 요구에도 미소를 절대 잃지 말아야 했다. 한번은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가 개봉되어 미성년자들의 신분증을 검사하던 도중에 벌어진 일이다. 앳된 소녀와 그 엄마가 입장을 하려는데 신분증 검사를 요청했더니, 아이의 엄마는 다짜고짜 큰 소리를 치며 거부했다. “내가 괜찮다는데 뭔 상관이야! 내가 누군 줄 알아?” 그리고 들고 있던 콜라를 집어던지며 막무가내로 입장했다. 그때 나는 철저한 서열의식과 귀천 관념에서 오는 모멸감을 견뎌야만 했다.

이런 의식들이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 내려 있기에,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간섭하고 지나치게 과민해진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사회나 제도 차원 보다 개인의 의식을 성찰하며 자존감을 높여 인간관계에서 존엄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 치부가 드러나서 얼굴이 새빨개지는 것만 같았다. 내 안에 존재하는 감정과 잠재되어있는 의식을 객관적으로 마주하기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멸에 관하여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눌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려면 그런 성찰은 반드시 필요하다. 모든 가치를 가격으로 매기는 의식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배려와 존중, 유대감으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 요소들을 기준으로 사람의 높낮이를 매기고 귀천을 따지는 것이 우리의 속물적 문화다.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발견하면서 자신의 귀중함을 깨닫고 서로의 존엄을 북돋아주는 관계가 절실하다. (119p)

 

우선 '손님은 왕이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구호는 일본에서 '손님은 하나님이다 お客様は神様'라는 말이 한국적으로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중량)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감정노동이 엄청나게 가혹하냐면 결코 그렇지 않다. 손님들 역시 매우 깍듯하기 때문이다. (216p)

 

인디언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그가 느끼는 바를 말했다.

"얘야, 마치 내 가슴속에서 두 마리의 늑대가 싸우고 있는 것 같구나. 한 마리는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고, 화가 나 있고, 폭력적인 놈이고, 다른 한 마리는 사랑과 동정의 마음을 갖고 있단다."

손자가 물었다, "어떤 늑대가 할아버지 가슴속에서 이기게 될까요?"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내가 먹이를 주는 놈이지." (291p)

 

타인 위에 군림하지 않고 위엄을 누릴 수 있을까. 부드러우면서도 당당한 기품은 어디에서 우러나올까. 품격은 겉멋이 아니다. (중략) 그 길은 자존의 각성과 결단에서 열린다. (307p)

김찬호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 사회학을 전공했고 일본의 마을 만들기를 현장 연구하여 박사논문을 썼다. 대학에서 문화인류학과 교육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서울시대안교육센터 부센터장을 지낸 바 있고, 현재 교육센터 마음의씨앗 부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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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남자 - The fantastic Deer-Man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2
마키메 마나부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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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일본의 나라(奈良) 현에 처음 갔을 때 봤던 광경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달리는 자동차도 멈추게 하는 사슴들 때문이다. 주위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히 길을 건너는 사슴의 도도한 자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라의 사슴은 여름철이라면 특히 주의해야 한다. 수사슴의 뿔 때문인데, 관광객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그 거대한 뿔로 위협하며 먹이를 재촉하는 야생의 모습은 식은땀이 흐를 정도다. 그럼에도 나라에서 사슴을 빼면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나라 사람들은 사슴을 신성시한다. 하고많은 동물 중에 왜 하필 사슴인 걸까?

 

신화적인 측면에서 사슴은 나라에 있는 가스가타이샤(春日大社) 신사의 사자(使者)라고 한다. 가스가타이샤가 창건될 때 가시마신궁(鹿島神宮)의 제신인 다케미카즈치노미코토(武甕槌命)가 이바라키(茨城) 현에서 흰 사슴을 타고 나라에 왔다는 전설이 나라 사슴의 유래로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신화적인 부분을 역사와 코미디로 버무린 발칙하고 유쾌한 역사판타지다.

 

암사슴이 입을 우물우물 움직였다. 마치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고 느낀 그 순간, 사슴이 휘이이하고 울었다. 정말로 휘이이하고 우는 것이었다.

(중략)

온몸이 완전히 굳어버린 내게 사슴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 간나즈키(10)이야, 선생. 이제 선생이 나설 때가 왔어.”

 

이 책의 작가는 익히 알고 있었다. ‘모리미 도미히코와 함께 교토를 대표하는 작가로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 제목을 봤을 때, 분명 나라(奈良)’와 관련된 이야기이리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판타지는 짐작하지 못했다. 12간지의 이야기나 오사카, 교토, 나라의 사자(使者)인 동물들, 신과 전설 이야기는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일본인들에게 친숙한 설화로써, 역사적 사실을 가미해 더욱 짜임새 있는 구조로 소설을 완성했다. 이렇게 수수한 제목에 판타지를 입힐 생각을 한 작가에게 된통 당한 느낌이다. 일본 고유의 신화가 흥미를 부추긴다.

 

이 책의 또 한 가지 매력은 일본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의 흔적이 묻어난다는 점이다. 학교에 처음 발령이 난 젊은 선생과 학생들의 마찰, 주인공이 멋대로 붙인 다른 선생들의 별명, 유별나게 올곧은 주인공의 성격 등, 21세기 버전 도련님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다. 그리고 동물들이 냉소적인 어조로 인간을 평가하는 부분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떠올리게 한다. 나쓰메 소세키를 향한 작가의 애정이 엿보인다. 비교해서 읽어보는 즐거움도 있을 것 같다.

 

이튿날 1학년 A반 교실에 들어선 순간 앞 칠판에 이런 글씨가 적혀 있는 것이 보였다.

양말 네 켤레에 천 엔.’

바보 같으니라고.”

모두에게 다 들리도록 중얼거리고 칠판을 지웠다.

이튿날 수업.

바보라고 하지 마, 멍텅구리라고 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글이 칠판에 적혀 있었지만 말없이 그걸 지웠다.

 

정말이지 인간들은 어리석기 짝이 없어. 자기들이 대단한 줄 알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바보가 되어가. 그래서 현실을 회피하는 행동이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도무지 깨닫지 못해.(중략)”

 

2008, 사슴남자는 일본에서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당시 인기 스타들이 출연한 드라마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책을 다 읽고 드라마를 봤다. 역시 시각적 효과는 원작의 이해도와 재미를 한층 더 끌어올린다. 소설 속에 나오는 유적지와 나라만이 지니고 있는 특유의 정서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서 이야기의 발랄함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소설과 드라마를 접해보면 나라의 매력을 아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 고즈넉함에 반할 수밖에 없으리라 확신한다.

 

  

 

휘이이는 뭐야? 너 가끔 그런 소리를 내잖아.”

아아, 그건 그냥 인사야.(중략) 우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알아듣겠지.

(중략) 그런 사람을 마지막으로 만난 지는 이제 삼사 백년쯤 되었지.”

, 그 사람 남자지? 혹시 이름이 바쇼 아니었나?”

이름은 몰라. 어쨌든 입이 험한 남자였어. 인사를 했더니 대뜸 방귀 뀌는 소리 같다고 해서 힘껏 차주었지. 아프다면서 울더군.”

 

휘이이 구슬피 우는 밤 사슴 (びいと尻声悲夜乃鹿)

바쇼의 시가 내 가슴을 쳤다.

 

일본의 정형시인 하이쿠(俳句)의 대가 바쇼도 등장한다. 하이쿠는 번역의 한계가 있어 특유의 아름다운 감성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데, 시 한 구절이 소설 내용과 맞물려 신기하리만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이쯤 되니 작가의 상상력에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이렇듯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들이 소설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이야기는 단순하고 유치해 보일 수도 있다. 지진이 일어나는 원인과 해결 방법을 미신적인 부분에서 찾으니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고향을 배경으로 멋진 상상력을 펼쳐낸 작가의 글재주가 놀랍다. 역자 후기에서는, 우리 작가 가운데 누군가 경주나 부여, 공주 같은 곳을 배경으로 이런 근사한 상상력을 발휘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데 나 역시 이런 생각을 했다. 일종의 부러움일지도 모르겠다. 독특한 세계관을 지닌 작가의 역량에 감탄하며, 다음 작품에는 어떤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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