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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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들어가며


김초엽 작가님의 추천사가 옳았다. 쉴 새 없이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생각의 파도에 휩쓸리게 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통'에 대한 성찰과 생각은 끝을 모르고 달려간다. 우리의 일상은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이제 정말 그런지 아닌지도 모를 만큼 우리는 아픔에 무감한 채 살아가고 있다. 삶이 곧 고통이라는 생각에 동의하는가? 정녕 그게 맞는다고 생각하는가? 정보라 작가님의 <고통에 관하여>는 그 질문 속에서 탄생한 역작이다.


왜 '고통'인가?


정보라 작가님은 2018년 미국 새너제이(San Jose)에서 열린 SF 관련 행사에 참가했을 때 통증과 진통제에 관한 대담을 듣게 되었다고 했다. 미국 사회는 중독성 강한 진통제 사용과 관련하여 심각한 사회 문제를 겪고 있었는데, 당시 대담에 패널로 참여한 현직 의사, 간호사, 약사 그리고 만성통증 환자, 이렇게 네 사람 모두가 마약성 진통제에 중독된 환자를 병원에서 관리하는 편이 낫다는 데 매우 강하게 동의하였고, 이 모습에 정보라 작가님은 다소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 사회의 모습을 약간 언급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미국은 마약성 진통제 사용 규제가 매우 강한 편인데, 그러다 보니 전쟁에서 부상당하고 치료 목적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다가 귀국한 참전 용사들이 본국에서는 필요한 약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일어났다. 이들은 결국 거리를 떠돌며 어둠의 장막 뒤에서 마약을 거래하거나, 마지막 남은 진통제 한 병을 바라보며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단다. 본질을 들여다보지 못한 채 제도라는 이름으로 무턱대고 규제하거나 억압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로 돌아오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미국 사회의 아픈 민낯이었던 것이다. 정보라 작가님은 왜 이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를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밝힌다.


사람이 신체를 가진 물리적인 존재인 한, 배고픔과 피로와 통증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픈 사람도 아프지 않은 사람도, 늙은 사람도 아직 늙지 않은 사람도, 장애가 있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모든 인간이 다양하게 잠 잘 자고 밥 잘 먹고 자신이 선택한 방식으로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원하므로 나는 계속 요구할 것이다.


본책 p.338 중에서


작품 속에는 '고통'을 둘러싼 두 가지 관점이 나온다. 하나는 '제약회사'가, 다른 하나는 '교단'이 각각 내걸었던 슬로건으로, 하나같이 극단적이고 편협하기 그지없다. 그렇지만 '양극화 현상'이라는 개념이 잘 설명해 주듯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한쪽 혹은 다른 한쪽으로 하릴없이 휩쓸려서는 영원히 고통의 굴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선택지가 없는 삶,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제약회사가 본 '고통'의 의미

(본책 p.27~29 중에서 발췌하여 재구성)


제약회사는 통증에 대해 '몸이라는 기계의 이상을 알려주는 신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말한다. 고통은 문제이며, 문제가 발생하면 그 원인을 찾아야 하고, 원인을 찾는 즉시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제약회사는 '고통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만성 통증을 없애주는 약을 개발하였고 사람들은 더 이상 통증을 내버려둘 필요가 없게 되었다. 고통이 없는 삶을 살게 되면 아프지 않게 될까? 이 질문이 아이러니하게 들린다는 건 잘 안다. 하지만 이쯤에서 '고통'의 외연을 확장해 보자.


물리적, 신체적 고통만 고통일까? 심리적, 정서적 고통 또한 고통이다. 이는 어린 시절의 '경'과 그의 오빠(항상 아파했던) '효'의 대화에서 잘 나타나 있다.

죽기 전에 오빠는 경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오빠의 얼굴은 창백하고 무표정했다.


"너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오빠가 경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어쩌면 어린 경에게, 다른 사람이 아닌 경을 향해서 남긴 유일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경은 그 말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다. 그래서 경은 물었다.


"오빠, 아파? 어디가 아파?"


오빠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빠가 걱정된 경은 충고했다.


"약 먹어, 오빠! 약 먹으면 안 아파!"


오빠는 경을 내려다보며 창백하게 웃었다.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경은 오랫동안 오빠를 떠올릴 때마다 후회했다. 그러나 경은 너무 어렸고, 오빠가 겪는 일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본책 p.59~60 중에서)

'효'와 '경'의 부모는 제약회사 대표였고, 두 자녀를 임상 실험의 대상으로 삼았다. 두 아이들에게 물리적 고통에서 벗어날 선택지는 있었지만, 부모의 학대라는 정서적 고통에서 벗어날 선택지는 '죽음' 말고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효'는 세상을 떠나고, '경' 또한 자살 시도를 하지만 극적으로 살아남는다. 왜 '극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느냐 하면, '경'이 자살 시도를 한 그날 제약회사에 폭탄 테러 사건이 일어나 '경'의 부모가 폭사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경'은 죽고자 하여 살게 된 것이다.


교단이 본 '고통'의 의미

(본책 p.30 중에서 발췌하여 재구성)


반면 '교단'은 고통이 곧 영혼이자 인간의 정수이고, 고통의 근절은 영혼의 멸절이자 신에 대한 거부이며 구원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한다. 교단은 이렇게 고통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신도들을 모으고, 단계별로 고통을 배치하여 이를 극복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괴롭히고 고문하고 폭행한다. 이러한 방식이 '교리'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것이다.


전술한 제약회사 부분에서 '경'의 이야기가 메인 테마였다면 교단 부분은 '태'라는 인물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태'는 제약회사에 폭탄 테러를 저지른 혐의로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인물이다. '태'에게는 '한'이라는 형이 있었고, '홍'이라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이름 모를 그들의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인물이 있었다. 이 아버지라는 인물은 정서적 흥분 상태에 중독된 사람으로, 항상 미친 듯이 기뻐하거나 미친 듯이 슬퍼하거나 미친 듯이 화를 냈다. 그 중간의 상태를 그는 견딜 수 없어 하였고, 이는 결국 '홍'과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빌미가 된다.


어린 '한'이 "아빠에게 맞으면서도 웃는 착한 아이가 될 거예요"라고 말하며 약을 달라고 '홍'을 조르는 순간, '홍'은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집을 나온 '홍'과 아이들을 이 사회는 수용하지 못했다. 쉼터라는 이름의 수용소에서 지내는 동안 남편이 찾아와 소동을 피우고, 또 다른 쉼터로 흘러가는 삶의 지리한 반복이었다. 이렇게 계속 정처 없이 떠돌거나, 폭력 소굴 같은 집으로 되돌아가는 것, 그 이외의 선택지가 '홍'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떠돌던 어느 날 '홍'은 '숙박 무료'라는 문구에 혹하여 '교단'에 휩쓸리듯 들어가게 되고, 결국 아이들을 빼앗겨 아이들이 장성할 때까지 만나지도 못한 채 청소 용역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럼 '교단'의 신도로 들어간 두 아이들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을까?

'한'은 교단의 충직한 개가 되어 교단이 시키는 것이면 무엇이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행했다. 그것이 정의롭든, 정의롭지 않든 그것은 상관없었다. '한'에게는 교단의 교리가 곧 정의이고, 교주의 말이 곧 법이었다. 하지만 '태'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태'에게는 교리라는 포장지를 교묘하게 씌워 둔 채 자행되는 폭력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 '기도회 사건'으로 묘사되는 집단 학살을 계기로 '태'는 교단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


'한'과 '태'를 가르는 지점은 무엇일까? 나는 인간이 존엄한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라고 생각한다. '한'에게는 그 점이 결여되어 있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함께 폭력을 겪었고 함께 도망치고 함께 교단에 들어가 같은 경험을 공유한 동생 '태'에게는 일말의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그 일말의 무언가가 '태'로 하여금 다른 삶을 살도록 만들었다.


'태'는 폭탄 테러를 저지르며 살인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경'에게 말한다. 누군가를 죽일 목적으로 폭탄을 터뜨린 게 아니었지만, 그 과정에서 '경'의 부모가 죽었다. 그리하여 그것은 '사고'였다고 말하는 방식이다. 궤변에 불과한 그의 말을 들으며 '경'은 이렇게 말한다.


"넌 왜 안 죽었어? 같이 죽지, 넌 왜 리모컨 들고 길 건너에 숨어 있었는데?" (본책 p.97)


'경'의 말을 듣고 '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폭탄 테러로 제약회사를 터뜨리자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을 것만 같았던 '태'에게 '경'이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비겁하게 숨어서 나를 지키고 남을 파괴하는 인간으로 남는 것 말고, 나의 신념을 지키면서 악의 근원과 나 자신을 함께 소멸시키는, 조금 덜 비겁한 선택지 말이다. '경'의 말을 듣고 '태'는 공감한다. 이렇게 '태'는 '경'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경'의 사랑은 다른 곳을 향해 있는데...

마무리


예상했던 것보다 긴 리뷰가 되었다. 아무래도 이 작품이 나에게 준 울림이 보통 이상은 되었나 보다. 당분간은 이 작품을 읽은 여운 속에서 살아갈 것 같다. 여담이지만 수전 손택의 대표 저서인 <타인의 고통>을 읽었을 때에도 텍스트보다는 책의 초입에 제시되었던, 고통받는 타인을 담아낸 사진들이 기억에 깊이 각인되어 다소간 죄책감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기억나는 구절을 말해 보라고 하면 한 마디도 하지 못할 거면서, 매체 특성상 자극적일 수밖에 없는 사진으로만 타인의 고통을 기억하는 나의 모습이 그리 좋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고통에 관하여> 리뷰를 정성들여 준비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조금이라도 못난 자신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을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칼로 한쪽 팔이 베이는 남의 고통보다 종이에 내 손가락 베이는 고통이 더 큰 법이다. 이처럼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공감하거나 이해하거나 느낄 수 없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그렇게 태어난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더 나아가 당신의 눈앞에서 버젓이 자행되는 폭력에 대해 남의 일처럼 눈감아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조금 더 나의 고통에, 또 남의 고통에 민감할 필요가 있다. 특히 다른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고통의 코너에 몰리는 사람들의 삶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이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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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선생님의 또 다른 저서인 <교사의 시선>을 2021년에 읽었고, 그 책을 읽고 마음 깊이 공감하며 웃기도, 울기도 참 많이 했다. 때로는 통렬한 반성도 하고, 때로는 따스한 위로도 받으며 힘든 학교생활을 버텨냈다. 그리고 2년 후, 그로기 상태에 빠져 역대급으로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지금 또 다시 운명처럼 김태현 선생님의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교사, 삶에서 나를 만나다>이다. 그리고 어제 포스팅에서 잠깐 밝혔듯이, 이 책을 며칠에 걸쳐 꼭꼭 씹어가며 천천히 읽었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한마디는, 결국 교사가 자신의 삶을 되찾아야 수업도, 업무도, 생활지도도 선순환의 고리 속에 집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수업 기술을 연마하는 데에 지나치게 함몰되어 수업의 본질을 잃은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을 때, 내 수업을 통해 내가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이었으면 좋겠느냐, 즉 주제의식에 대한 고민을 해 보라는 말씀이 특히 와 닿았다.

부끄럽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측면이었다. 그저 지도서의 지침에 따라 가르쳐야 할 내용을 가르치기에 급급했을 뿐이었다. 수업도 마치 행정업무의 연장인 것처럼 해 왔다. 나라고 학생들과 재미있게 수업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재미있는 수업을 나 혼자서만 한다면 가까이는 함께 같은 학년을 맡은 다른 선생님과의 협의 문제가 걸리고, 멀리는 입시 제도와 동떨어진 수업을 하게 되어 결국 학생들에게 원성을 사게 될까 두렵다는 점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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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vier - Javier
Javier (하비에르) 노래 / 이엠아이(EMI)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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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더 보이스(The Voice)라는 오디션에 출연하여 우승을 차지하는 실력파 보컬리스트 하비에르 콜론의 데뷔 앨범이다. 나는 유명해지기 전부터 이 앨범과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이미 너무나 사랑해 마지 않고 있었다. R&B와 라틴 음악의 바이브가 적절하게 배합된 듯한 색깔이 무척 마음에 들었고, 특히 그 시원시원하게 뻗어나가는 목소리가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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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y Gray - Big
메이시 그레이 (Macy Gray) 노래 / 유니버설(Universal)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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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드 피스의 윌아이엠이 프로듀싱을 맡은 메이시 그레이의 2007년작, [Big]이다. 나탈리 콜과 함께 부른 ‘Finally Made Me Happy‘는 정말 화려하고, 제임스 브라운의 ‘It‘s a man‘s man‘s man‘s world‘를 훌륭하게 샘플링하여 훵크&소울에 대한 리스펙을 드러낸 ‘Ghetto Love‘도 멋지다. 휴양지 같은 곳에서 여유롭게 듣기 좋을 듯한 ‘Strange Behavior‘도 필청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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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AN MCKNIGHT - ANYTIME [모타운 50주년 기념 Mid Price 캠페인]
브라이언 맥나이트 (Brian McKnight) 노래 / 유니버설(Universal)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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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좋아했던 브라이언 맥나잇. 물론 지금 들어도 몽글몽글해지는 그 목소리의 감동은 여전하다. 1997년에 나온 이 3집 앨범은 타이틀곡인 ‘Anytime‘도 너무 훌륭하지만 서정성이 극대화된 발라드 ‘Could‘라든지 한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마이너 발라드 ‘Show Me The Way Back To Your Heart‘, R&B 느낌을 잘 살린 ‘The Only One For Me‘ 등을 특히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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