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간략한 책 소개
편의점에서 혼밥하기, 자소서로 소설 쓰기, 증명사진 성형하기, 연애 따윈 신경 끄기…. 생기가 넘치고 반짝거리기보다 먹고사니즘과 궁상과 자조가 뒤섞인 오늘날 청춘의 모습들. 《시따위》는 20대를 숨 가쁘게 살아낸 저자가 자신의 찌질한 일상 이야기와 함께 보편적 청춘의 삶을 똑 닮은 28편의 시를 엮은 에세이다. 이 책에 수록된 시들은 백석, 윤동주부터 이병률, 심보선, 황유원까지 청춘들에게 사랑받는 시인들의 작품 중에서도 증명사진, 원룸, 복권, 쓰레빠, 아르바이트, 혼밥, 백수 등 특히 2030 세대가 일상에서 깊이 공감할 만한 소재로 쓰인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먹고살기 바빠 시는 삶 저편에 미뤄놓고 살았던 저자는 어렵기만 했던 시가 어떻게 자신의 일상으로 깊이 파고들게 되었는지, 이 시들을 읽으며 어떻게 험난한 20대를 견딜 수 있었는지 담담하게 고백한다.
더 빨리 내달리라고 강요하는 세상, “요즘 것들은 배가 불렀다”며 꾸짖는 기성세대, 불공정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느라 남 이야기는커녕 자기 속내도 털어놓지 못하고 사는 청춘들에게 이 책은 때론 답답한 마음을 팡 터뜨려주고 때론 열심히 살수록 고된 법이라며 어깨를 두드려준다. 휘청거리는 청춘의 어느 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면, 답답한 마음을 토로할 길 없어 마음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면, 이 책이 닫힌 감정을 열어줄 비상구가 되어줄 것이다.
3. 목차
프롤로그|시 읽기조차 사치라면 누가 우리를 위로해줄까?
1장|세상 밖 우리의 지표
#1 청춘이란 말로 한데 묶일 수 있을까|김원경, 〈환경지표생물〉
#2 3x4cm 공간엔 지킬 박사만 산다|이우성, 〈손끝이 말해줍니다〉
#3 고립이 자립이 되는 순간을 기다리며|이명수, 〈혼자 밥 먹다〉
#4 쓰레빠를 놓고 간 신데렐라|유지소, 〈이런, 뭣 같은!〉
#5 나는 나를 재활용합니다|복효근, 〈어떤 종이컵에 대한 관찰 기록〉
#6 내 인생에도 전성기가 올까?|황유원, 〈공룡 인형〉
#7 알파고 앞에서는 너나 나나|송찬호, 〈왕자와 거지〉
2장|뒤집어도 될까? 찌질한 인생의 판
#8 관 값이 이렇게 비싸다니|이준관, 〈비〉
#9 혼밥, 평등한 겸상의 미학|조용숙, 〈겸상〉
#10 공포의 고지서 개봉박두|박선옥, 〈고지서의 힘〉
#11 불판에서 뒤집어보는 인생의 판|원구식, 〈삼겹살을 뒤집는다는 것은〉
#12 나는 당신들에게 도무지 미안하지가 않다|임솔아, 〈아홉 살〉
#13 검은색 사인펜으로 하는 6/45칸 색칠공부|최금진, 〈소년들을 위한 충고〉
#14 내 선택에 대한 예의|최정례, 〈동쪽 창에서 서쪽 창까지〉
3장|달아나도 결국은 여기가 내 자리
#15 1,300원짜리 마취약에 기대어|박찬일, 〈일주일에 두 번 술 마시는 사람들〉
#16 색채가 없는 내가 순례를 떠난 해|한혜영, 〈본색을 들키다〉
#17 백수의 흰 바람벽에 오고 가는 것들|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18 벼락과 함께 별똥이 떨어지다|윤동주, 〈별똥 떨어진 데〉
#19 꼬리 달린 천사가 주는 위로|손택수, 〈흰둥이 생각〉
#20 누군가에게 창피한 존재가 된다는 것|유하, 〈달의 몰락〉
#21 치킨 성애에서 치킨 게임까지|김민정, 〈이상은 김유정〉
4장|그래도 내 청춘은 반짝인다
#22 20대로 안 돌아갈래|심보선, 〈삼십대〉
#23 여행이 끝나고 남겨진 숙제들|이병률, 〈여행〉
#24 정류장에서 맛 본 커피의 쓴맛과 단맛|윤성택, 〈그날의 커피〉
#25 텔레비전에 내가 안 나왔으면|윤성학, 〈대소사〉
#26 우리가 서로 잡은 손을 놓지 않도록|조은, 〈경직〉
#27 나를 받쳐주는 적금식 아름다움|손택수, 〈눈이 삐다〉
#28 책에 기대 청춘의 모래사장을 간다|강미정, 〈모래의 책〉
에필로그|시가 선물해준 당신과 내 청춘의 기념일
작품 출처 및 발표 지면
4. 저자 소개
손조문
생각한 것을 곧장 말하기보다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글로 다듬어 표현하길 좋아하는 사람. 사람들은 느리다고 하지만 본인은 느긋한 거라고 주장하는 성격 덕분에 주변의 모든 것들을 더 찬찬히,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고 믿는다. 이리저리 재고 따지는 인간관계가 힘들긴 해도 혼자 마시는 커피보단 함께 마시는 막걸리가 더 맛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십 대의 8할을 헤르만 헤세, 슈테판 츠바이크와 무라카미 하루키, 이와이 슌지와 미셸 공드리에게 기댔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한 뒤 몇몇 인터넷 매체에서 인턴 기자로 일했다. 클릭 수 높이는 게 목적인 직업적 글쓰기에 환멸을 느껴 〈미디어스〉, 〈프레시안 북스〉, 〈책과 삶〉, 〈chaeg〉, 〈빅이슈〉 등의 지면에 마음을 터놓고 독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글들을 기고했다. 고시원 쪽방에서 직장 생활을 계속하다 건강이 나빠져 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갔지만, 예기치 못한 불운으로 모아둔 돈마저 다 날렸다. 그때 책상 위에 놓인 시집 한 권이 눈에 들어왔고, 팍팍한 청춘의 단면을 닮은 시를 만나 버틸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그 후 백석과 윤동주부터 이병률, 황유원까지 여러 시인들의 시를 탐독하고 필사하며 청춘의 험난한 강을 건넜다. 동시대의 청춘들과 마음으로 나누고 싶은 28편의 시를 모은 에세이 《시따위》를 펴냈다.
5. 책 속에서
쓰레빠는 늘 세상에 퇴짜를 맞는 나 대신 세상에 따귀를 날려주는 친구였다. 레드 카펫은 아닐지언정 스펀지 바닥으로 내 바닥을 받쳐주는 250mm의 짤막한 블랙 카펫.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딱딱 소리를 내서 “이런바퀴벌레절편같은이런똥걸레구절판같은/이런시궁쥐통조림같은” 욕을 피처링하며 걸을 수 있게도 해줬다. “무료로!!!행복을커트해드립니다”가 ‘무료로!!! 합격을커트해드립니다’라는 문장으로 보일 지경에 언제쯤 사회의 격에 맞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그 시기를 알 수 없어서 막막했다. (…) 자신을 무장하느라 꽁꽁 묶여 부푼 발이 그나마 민낯을 드러내는 건 퇴근하고 나서, 아니면 다시 반복되는 과도기가 찾아왔을 때뿐이다. 다시 돌아온 발의 사정을 아는 쓰레빠가 발바닥을 토닥이며 힘내라는 응원을 던진다. “눈물도 찰싹/웃음도 찰싹/희망도 찰싹” 이럴 수가, 분명 맞는데 아프지가 않다. 나쁘지가 않다. 내 사정을 아는 유일한 친구가 어깨 툭 치고 분발하라는 소리로 들린다. 발바닥에 몰래 숨겨놓은 나의 낯바닥을 후려치며 낯 두껍게 살아야 한다고, 눈 뜨면 코 베어가는 세상이니 정신 차리며 살라고, 하지만 나를 신을 때만은 그런 긴장은 좀 풀어도 된다고. 쓰레빠가 웃으며 말한다._48~49쪽
‘엿 같은 세상’, ‘먹고는 살아야지’, ‘먹는 게 남는 거지’라는 타협의 정반합이 삼겹살처럼 쌓여 퇴근 길 불판에서 뒤집힌다. 시인의 말대로 많은 이들이 “혁명의 속살과도 같은 이 고기를 뒤집는 순간” “세상이 회까닥 뒤집혀버리는/도취의 순간을 맛보”며 살아간다. 취업 청탁을 욕하고, 전셋값을 욕하고, 이민에 관해 얘기하고, 다음 공무원 일정에 대해 정보를 주고받고, 결혼과 출산은 막막하고, 나 빼고 다 사이코인 직장 상사와 동료들을 욕하고, 정치를 욕하고. “내가 정말 이 나라 뜬다.” “내가 정말 이 회사 때려치운다.” 울분을 토하다 보면 뭔가 속이 좀 풀리는 것도 같고. 그렇게 뒤집고 싶은 인생의 판, 인생의 패를 불판에서나마 뒤집어본다. 하지만 삼겹살이 바닥날 때쯤이면 반들반들한 기름과 함께 마음에 쌓였던 현실의 이물질들이 배 속으로 쑥 미끄러져 들어간다. 그리고 이 혁명은 늘 같은 밥을 먹고사는 식구들과,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비슷한 직급의 동료들이 모여 있는 구석에서 밥상이 살짝 들썩일 정도의 힘만 보여준 채 끝내 회의로만 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찰나의 혁명은, 옷에 밴 삼겹살 냄새처럼 집에 가는 동안에도 쉽게 휘발되지 않는 카타르시스를 내 몸에 남긴다._105~106쪽
“오래 공들여도 거기서 거기다/억울한 생각이 드는데 화를 낼 수도 없다”는 시구처럼 노력해도 나아지는 것보다 감당하기 어려운 고됨을 맞닥뜨릴 때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무작정 때려치우거나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흘러온 시간을 거꾸로 되감을 수도 없었다. 내가 선택한 일이니까. 옷을 빨면 전보다 깨끗해질 수는 있지만, 옷을 사기 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는 게 현실 아닌가. 이 와중에 햇빛은 다른 창으로 옮겨간다. 허겁지겁 햇볕이 드는 창으로 빨래 건조대를 옮긴다. 구차하다 싶은 순간에 누군가 말한다. “이런 식으로 살기를 선택한 것은 바로 너야”. 섬유 유연제에 담긴 옷처럼 그 말을 유순하게 받아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살게 될 줄은 몰랐지”. 다 마른 옷들을 건조대에서 걷은 다음 바닥에 내팽개친다. “어쨌든 네가 입게 된 옷이야/벗어버릴 수는 없잖아 예의를 지켜”. 마음을 고쳐먹고 옷을 하나하나 매만지며 각을 잡아준다. 양말은 돌돌 말아 잠을 재우고, 옷들은 옷걸이에 앉아 쉬게 하고, 수건은 착착 쌓아 서로 하이파이브 하게 하고, 베개와 이불에 붙은 진드기 같은 어제를 털어낸다. 어느새 또 일주일이 지나고 데자뷔의 한 장면처럼 세탁기가 허겁지겁 물을 빨아들인다. 통에 들어간 옷들은 엉키며 춤을 춘다. 1시간 이상 지속되는 트위스트. 녹초가 된 옷들에서 물 한 방울 안 나올 때까지 세탁기는 그들을 쥐어짠다. 돌아가는 회전문에 옷들의 물기가 튕겨 나간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우리 옷에 붙었던 때들이 물에 불어 녹는다. 비록 내일이면 또 똑같은 때가 엉겨 붙겠지만, 그래서 삶아 빨아도 그다지 하얘지지가 않겠지만 우리는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실하고 규칙적으로 빨래를 하며 내일을 준비한다._130~131쪽
희망이란 게 다 사라진 기분이었다. 어른들은 그런 나에게 “인생 공부했다고 쳐.” “차라리 이렇게 된 게 다행인지도 몰라. 안 그랬으면 너 돈에 대한 집착 절대 못 깼을 거다.”라고 조언했지만 답답한 가슴은 여전했다. 병원에서는 과호흡 증후군인 것 같으니 우선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해결해보라고 권유했다. 운동과 별개로 호스피스 강의도 들으러 다녔다. 만약 내가 내일 죽거나 시한부 환자라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라면, 최근 내게 일어난 일이 나를 무너뜨릴 만큼 대단한 일일까. 하루 세 편씩 노트에 시를 필사하면서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내가 갈 곳이 어딘지 몰라 허우적거리는” 와중에 살기 위해 윤동주 시인의 <별똥 떨어진 데>를 옮겨 적었다. “행복이란 별스런 손님”이 내게 와줄까 기다리고 견디며 시에 의지해 버텼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이 한 번의 일로 나라는 사람을 ‘실패자’로 규정짓지 말자고 다짐했다. 다만 사람은 언제든 실수도, 실패도 할 수 있으니 이번 기회에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우면 된다고 나 자신을 설득했다._163~164쪽
책으로 무엇을 건넜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강미정의 <모래의 책>을 답으로 건네고 싶다. 내가 책에 업혀서, 책이 나에게 업혀서 “반은 날숨으로 반은 울음으로/가늘게 울리던 당신 목소리가/당신 등을 타고 내 가슴으로 전해진다”. 현실적으로 얘기하면 우리 사회에서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누군가의 울음, 생각, 처지에 공명하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장애가 된다. 마음 여린 친구와 대화하다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사이코패스가 되는 게 나을 거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상처받지 않고 오로지 목표에만 집중할 수 있는 냉철함의 결정체. 아예 공감 능력이 없다면 일의 속도를 저해하는 인간의 감정에서도 해방될 수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나와 타인의 감정을, 저 밖의 세상을 확인시켜주는 책은 오히려 성공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장애가 될 그 감정들을 굳이 책을 통해 확인하려 든다. 무당처럼 대신 한풀이를 해주는 책의 문장 속에서 표현할 길이 막막했던 제 심정을 발견하려 든다. 어떤 어려움에도 초연하고 무뎌지고 눈 깜빡하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어 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심정을 조금 더 이해해보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이런 의도로 책을 읽는 시도는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의 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책에 적힌 타인의 아픔을 업고 가는 행위는, 내 가슴에 타인의 목소리가 전해지는 과정을 통해 무뎌져 가는 나의 감수성을 복원한다._246~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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