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
김헌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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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설 | 서평

 

<김헌의 그리스 고마 신화>

김헌, 을유문화사, 2022.03

 

[지혜를 사랑하는 어느 한 인문학자의 신화 이야기]

 

부끄럽게도. 30대 중반이 넘어가는 삶의 여정 속에서 신화를 제대로 읽어보거나 골몰해본 적이 없다(그리스·로마 신화는 물론, 동양과 한국의 신화까지도). 청소년 시절, 심신이 피폐해져 지금-여기를 살아내지 못하고 중심 없이 부유하던 때. 그 어떤 텍스트가 나와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아니. 그럴 힘조차 없었다. 살아내는 것만이 유일한 과업이었으니까. 이런 가엾은 아이에게 신화는 언감생심이었을 터. 20대 시절은 어떠한가. 자기 중심성이 극에 달한 어리숙한 나르시시스트가 세상만사 과잉 자아로 채색하던 때. 소설은 그저 남이 쓴 허구요, 아무짝에 쓸모없다고 오만하게 외쳐댔다. 그럴진대 신화는 어땠으랴. 매우 오래된, 낡아빠진 괴변으로 가벼이 여겼을 터다.

 

그럼 지금. 30대 중반의 청년이 된 나에게 신화는 어떤 의미일까?

 

첫째로, 뿌리에 대한 갈급.

 

여러 학문을 공부하고 연구할수록 뿌리가 되는 원전이나 텍스트, 사유의 원형 등을 갈구하게 된다. 그 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텍스트로, 그리스·로마 신화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성경, 불경, 소크라테스, 논어와 같은 텍스트도 매우 중요하지만, 지구화(아니 서구화)된 모더니티가 득세한 현 세계에서 그 뿌리가 되는 텍스트는 단연 그리스·로마 신화다. 근원으로 돌아가 다시금 학문과 세계관의 뿌리부터 튼튼히 다지고 정비하려 한다.

 

둘째로, 인간 본질에 관한 탐닉.

 

인간 행동과 심리 그리고 관계, 나아가 한계와 본질에 이르기 위한 주요 텍스트라는 점. 특히 심리학(심리치료)의 창시자 격으로 대우 되는 프로이트의 그 유명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부터 엘렉트라 콤플렉스, 피그말리온 효과와 같이 인간 행동과 심리를 하나의 원리이자 이론으로 정립하는데 그리스·로마 신화는 그 기초 텍스트로 기능한다. 단지 옛이야기가 아닌, 오늘을 사는 현대인인 우리의 욕망과 갈등, 성장과 한계 등에 관해 여실히 들여다볼 수 있어, 수많은 개성과 그에 따른 욕망의 이야기를 미리 접하고 통찰하며 인간 이해의 폭과 깊이를 확장할 수 있다. 이는 곧 심리치유 브랜드를 런칭하는 나에게 너무도 중요한 과업니다.

 

셋째로, 시의적절함, 오래된 새것의 참맛.

 

그리스·로마 신화 관련 기 출판물 등 콘텐츠와 텍스트가 이미 적지 않다(아니 이미 많다). 너무나 바쁜 시기엔 크게 부담스럽지 않고 기동성 좋은 단권의 책이 필요하였다. 게다가 고전학자인 김헌저자의 이름이 책 제목에 전면 배치될 정도로, 학자이자 신화를 사랑하는 이의 깊은 성찰의 시선과 통찰이 담긴 새로운 신화 이야기가 탄생했다. 게다가 희랍어와 라틴어 원전을 바탕으로 현시대에 맞게 재창조한 21세기형 그리스·로마 신화가 탄생했다. 단순 레트로 감성이 아닌, 하나의 시의적절한 현대적 의미가 가미된 신화 읽기라면 너무도 감사할 따름이다.

 

예를 들면, “오직 희망만이 인간 세계에 남아서 고통스럽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그나마 행복하게 해준다는 거예요, 희망에 관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갖고 ㄷ계신가요?” (p. 298)“

 

크게는 위와 같은 3가지 이유로 지금 당장 신화를 가슴에 품어야 할 당위성이 생긴 셈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나의 삶을 사랑하고 진중하게 살아가고자 하였는지 되묻게 된다. 물음이 없도록 생존에만 쏠려있던 나에게 지혜의 이야기를 사랑한다는 것. , 나와 인간 그리고 이를 둘러싼 세계를 사랑하는 것은 사치와 같았다. 하지만 이제 조심스럽게 신화를 꺼내본다. 거인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의 심정으로.

 

한 번 읽고 마는 책이 아닌지라, 틈날 때마다 차근차근 읽어야 한다. 분량도 만만찮은 것도 있겠지만, 신화 내용을 단번에 이해하고 독파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배우고 또 배우고, 읽고 또 읽어야만 할 것이다. 권장하는 바는, 책을 빌려 읽기보다 구입하여 차근차근 해당 세계관에 접속해보자는 것.

 

예술치료사이자 치유예술교육가로서, 소설과 더불어 하나의 인물을 세세히 읽어내고 공감하고 함께 아파보는 여정을 앞으로도 계속하려 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신화를 가지고 있고, 고유한 이야기를 지니고 있기에, 만나는 내담자 한 명 한 명을 단순히 과학과 표준의 이름으로 환원하는 게 아닌, 다양한 개개인의 관점과 이야기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최대한 수용하기 위해서는 인간 군상의 결정체인 신화를 이해하여야만 한다.

 

아래는 김헌 저자가 생각하는 신화의 의미다. 이제 책을 사지 않고 버틸 수가 있을까. 이미 신화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으니, 함께 다이빙을 해보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태어나 살다가 죽습니다. 왜 사는가?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믿을 만한 이야기를 찾아 헤매며, 삶의 지난한 여정을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지어 나갑니다. 우리 이전에 이 세상에 태어나 살던 사람들은 낯선 세계와 무서운 현상들과 허무하기 그지없는 삶을 이해하고 값진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집을 짓듯이 매력적인 이야기를 지어 그 안에서 머물다 어디론가 떠났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도 그렇게 만들어져 우리에게 전해진 옛사람들의 유물이며 빈집입니다.

(중략) 그들이 남긴 이야기를 보며 우리는 우리의 삶과 세계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따져 묻습니다. 그들이 남긴 글과 이야기를 읽으며 이제 우리는 의 이야기를 써야 합니다. 내가 깃들 집, 단단히 붙들고 삶을 견뎌 내야 할 기둥, 삶의 여정을 헤쳐 나가기 위해 타고 떠나야 할 배,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그렇게 우리 삶의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지금 이 순간은 우리 모두에게 남아 있는 삶의 첫 순간입니다. 그러니 내 남아 있는 생의 첫 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이제 우리의 남은 삶이 그려질 거입니다. 이 세상을 떠난 그 모든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써야 합니다. 내 삶을 나만의 이야기로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로마 신화 역시 이처럼 살다 갔던 숱한 사람들이 남겨 놓은 그들의 이야기이며,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pp. 558-559)”

 

 

그렇다

 

저마다의

 

신화를

 

이야기를

문장을

단어를

움직임을

 

생각을

 

만들어가자

 

 

*이 서평은 도서출판 을유문화사으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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