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와비사비 : 다만 이렇듯 ㅣ 와비사비
레너드 코렌 지음, 박정훈 옮김 / 안그라픽스 / 2022년 2월
평점 :
<와비사비 : 다만 이렇듯>, 레너드 코렌Leonard Koren, 박정훈 역, 안그라픽스, 2022.03
“일상의 은밀한 미감을 사랑할 수 있는가”
안그라픽스는 ‘애정’하는 출판사 중 하나다. 건축과 미술사를 전공하고 브랜드 기획자 시절 나아가 현재 예술치료를 업으로 삼고 있는 지금까지, 인문, 예술, 디자인, 미학 등을 아우르며 충만한 콘텐츠를 늘 선사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안그라픽스에서 새롭게 삶과 사업적 영감 그리고 근본적인 방향성을 재조정할만할 새로운 화두를 던져주었다. 바로 ‘와비사비’를 통해서. 그런데 이 개념. 어딘지 모르게 낯설지만은 않다.
기억을 곱씹다 보니 미술사학도로 공부하던 시절로 돌아간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이자 한국미술사의 대가 유홍준 교수님으로부터 한국도자사 중 ‘분청사기’를 배울 때의 일이다. 15세기, 유려한 미학의 정점인 고려 삼강청자가 쇠퇴하고 전국의 도공이 관(官)아 아닌 민(民)의 자생적 주도로 청자의 명맥을 이어가다 보니, 질 좋고 매끄러운 재료가 아닌 지역의 토속적이고 거친 재료로 청자를 만들면서 백토로 마치 분장을 하듯 자유로이 만들어진 것이 분청사기이며, 세계에서 우리나라에 밖에 없는 고유한 것이라 한다. 더 중요한 핵심은 관과 지배층의 통제와 간섭이 닿지 않는 일상생활 속에서 아무런 욕심 없이 자연스럽고 적막하게 만든 것으로, 서민적이고 민간적인 정서가 배어 자유로운 조형미를 획득하였다는 점이 분청사기의 특별함이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생활용품이나 부장품인 막사발로 활용되었기에 조선 사람들은 이에 대해 특별한 미적 대상으로 두지 아니하였다. 그 당시 일본의 무로마치 시대의 문화가 지향하던 적막하고 쓸쓸하고 스산한 미의식이 스민 다도茶道 문화에서 조선의 분청사기의 진가를 알아보고 이를 열렬히 신봉하고 수입하여 세세하게 발전시켜(신처럼 추종하였다고 한다) 일본만의 미학을 발전시켜갔다고 한다. 이때 일본인이 부르던 고려다완의 적막한 미학을 가리켜 어떠한 일본 단어로 들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지금 와서 회상해보니 그것이 ‘와비사비’였던 것이다(이렇게 뭔가 연결되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필연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내 삶에 반드시 것이리라).
‘와비사비’는 일본어로 わびさび라 쓰며, 와비(わび)와 사비(さび)가 합쳐진 말이다. 이는 근대 이전의 일본(한국과 중국을 포함하는 동아시아)의 미적 감수성 혹은 순응적 삶의 태도라 할 수 있다. 와비사비는 “불완전하고 비영속적이며 미완성된 것들의 아름다움이다. 소박하고 수수하며 관습에 매이지 않는 것들의 아름다움이다(p. 7).”라고 명시되어 있다. 무언가 알 듯 말 듯 한 이 명제.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실 와비사비가 원서로서 탄생한 것은 1994년이며, 한국에는 약 3년 전 <와비사비 : 그저 여기에>(2019)로 번역되어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 후속작으로 나온 것이 이번에 출간된 <와비사비 : 다만 이렇듯>이다. 그런데 두 권을 합친다 하여도 그 전체 분량이 담소하게 농축되어 있어 겉보기엔 부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읽어보면 그 내용이 단박에 흡수되지 않는다. 단지, ‘느낌적인 느낌으로’ 고개만 연신 끄덕이는 자신을 발견한다(혹은 분청사기 이미지만 떠오르더라). 명문이 마음에 꽂힐 때마다 책을 덮고 음미하게 되는데, 얼마나 책을 자주 여닫았던지, 작은 책이지만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렇게 천천히, 두 책의 부제처럼 ‘그저 여기에서, 다만 이렇게’ 스며드는 느낌이랄까. 책의 전반적인 디자인 역시 인위적인 완성품, 공산품의 느낌이 아닌, 거칠고 소박하며 색도 바래있는 듯 기획되었다. 그렇다. 이 책은 머리로만, 이성 일변도로 이해하려 들면 안 된다. 기존의 습을 잠시 내려놓고, 그저 느끼고 공명해야 한다.
와비사비. 이를 언어로 정의하고 포괄하기엔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와비사비’라는 미적 감수성 혹은 삶의 태도에 관해 나름의 형식으로 정초를 시도하는 저자는 정작 일본인이 아니다(그렇다고 한국, 중국인도 아니다). 저자는 뉴욕에서 태어나 LA에서 건축을 전공한 레너드 코렌Leonard Koren으로, 이성과 과학의 힘을 중시하는 문화 속에 있는 서양인이다. 언어와 논리로 분류하고 정리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이 서양인으로부터 와비사비라는 개념이 ‘발굴’되었다. 서양 건축을 전공했으면서도, 완전이고 영구불변의 것, 높고 튼튼한 랜드마크를 추구하는 서양 현대 건축 경향이 자신의 철학과 반하는 것이라 소개된 그의 이력은 그에게서 와비사비가 어째서 잉태되었는지를 충분히 가늠하고도 남는다 하겠다. 와비사비는 기본적으로 반서양적인 것이다. 즉, 서양 근대 모더니즘의 영속적이고 계획적이고 인위적이고 기계적인 명료함과 대치되는데, 재밌는건 그렇다고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또 설명될 수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라는 것이다. 이 모두 서양의 언어와 인식틀일 뿐 와비사비는 그렇게 논리적이고 인과적인 것으로 설명되지 않는 어떠한 동아시아적인 인식론이자 존재론이라 할 수 있다. 확실히 서양의 감수성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음양오행의 근간으로 역易을 말하고는 하는데, 사실 더 뿌리가 되는 동양(동아시아)의 시선은 서양 과학의 인과론과 대비되는 감응感應의 미학이다. 굳이 대조하다면 이 감응의 미학이 와비사비와 결이 맞아 보인다.
일본 다회茶會의 와비차 문화 경험으로부터 그의 와비사비 이해와 연구 여정이 시작된다. 이 책은 그 여정의 흔적들을 와비사비한 미감으로 담아내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무언가 불완전하고 미완성의 느낌으로. 하지만 불필요하고 지엽적이고 인위적인 것은 최소화하고 꼭 필요한 요소는 알차게 담아냈다. 이 책의 내용만이 아닌, 책 자체가 와비사비를 경험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책 본문의 몇 문장을 발췌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이 책은 반드시 직접 구매하여 읽어보고 만져보고 느껴보아야 한다. 그러는 동안에 일상의 관성에 틈과 균열이 작게 생기고 그 속에 우연과 이야기가 스밀 것이며, 다시 자신의 존재와 일상의 아름다운 면모가 드러날 것이다.
와비사비는 결국 삶을 영위하는 감상자의 태도와 관점의 문제다. 단순한 개념이나 물질적 조형물로 단지 설명되어 취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覺)의 문제다. 양적으로 환원되는 디지털, 과학과 수학의 논리, 즉 0과 1로 매끄럽게 거세되는 인공 환경 신호 사이에서 ‘가장 미묘한 수준까지 알아차리는 것(p. 93)’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거칠고 연속적인 서사와 자연스러운 감각을 회복하여 균형있는 삶을 살아야 할 때다.
나부터 와비사비의 미학을 일상으로부터 체득하여, 만나는 모든 내담자, 사람을 와비사비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동아시아인의 언어로 와비사비의 참 맛을 전할 수 있으려나 싶다. 그 날을 기약해본다.
이 서평은 안그라픽스 출판사 @ahngraphics 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와비사비 #와비사비다만이렇듯 #안그라픽스 #ahngraphics #안그라픽스출판사 #서평 #서평단 #서평이벤트 #서평단이벤트 #책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서평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