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죄송합니다 - 왜 태어났는지 죽을 만큼 알고 싶었다
전안나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평점 :
절판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전안나

 

가디언 출판사, 2022

 

붉은빛 꽃이 무성한 가운데 한 여린 소녀가 곤히 잠들어있다. ‘잠자는 꽃밭의 소녀라 아름답게 단정 짓기엔 그림의 빛깔이 고르게도 어둡다. 편한 쉼의 상태가 아님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책 표지는 책의 첫인상이자 핵심 언어다. 그렇기에 책 표지에서부터 평론하는 것이 더 밀도 있는 서평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왜 태어났는지 죽을 만큼 알고 싶었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태어남은 그 자체로 축복이자 축하받아 마땅한 사건 아니었던가.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죄송한 일이 될 수 있다니. 태어남이 죄가 되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것이라면, 도대체 그 죄목은 무엇일까. 표지에서부터 작가의 이야기가 너무도 궁금해졌다(그러면서도 너무 아프진 않을까 하는 우려가 솟구쳤다. 몇 번이나 첫 장을 펼치길 망설였는지 모른다. 이 또한 직업병이리라..).

 

망설임에는 그만한 감()이 작동하는 법이다. 프롤로그 첫 페이지부터 등장하는 단어들로부터 왜 그녀의 삶이 피해와 상처로 얼룩졌을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언어가 제시된다.

 

p. 4

김주영이었던, 전안나입니다. // 김주영은 고아였고, / 태어나서 5년간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무적자였고, / 입양 아동이었고, / 아동 학대 피해자였습니다.”

 

하지만 위의 단서만으로 어떠한 기존 통념과 상식으로 재단하지 말기를. 상투적 극복기도 아니요, 흔한 자기계발서도 아니다. 여전히 아픔은 분투 중이고 회복 중인 현재진행형이며, 그저 그 현재를 담담히 복기한 그녀의 언어를 마음에 담아내기만 하면 된다. 그 언어는 비록 무겁고 아프다만, 누군가의 마음이 치열하게 벼려낸 생명과도 같다.

 

pp. 5-6

잊으려 부단히 노력했던, 그래서 잊어버리는 데 성공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은 고통스러웠습니다. 두려웠습니다. 몸은 마흔이 넘은 전안나인데, 낯선 집에서 낯선 여자에게 맞던 다섯 살 김주영이 다시 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못해 몸까지 아팠습니다. 그렇게 여기에 한 사람의 삶을 담았습니다.”

 

p. 237

거친 삶이 내 목을 옥죄일 때마다 책을 한 권씩 먹었다.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목소리가 안 나와 다른 사람이 적어 놓은 글을 따라 내 감정이, 내 느낌이 이 정도쯤 되려나 더듬 더음 내 감정을 찾아갔다.

 

그렇다. 이 책은 독서 에세이. 그녀를 살리고 치유한 30(그 외 인용까지 합치면 곱절이 되는)의 책의 주제와 주요 맥락을 중심으로 자신의 삶을 연결하여 일련의 사건을 배치한 구성이다. 또한, 다른 유명 작가의 언어를 잠시 빌리고는 있지만, 분명히 그녀만의 진실한 언어가 투영되어 있다. 화려한 수사가 담긴 문장이 아니어도, 그녀의 아픔과 고통, 나아가 희망까지 덤덤한 듯 진솔하게 풀어내어 유명 작가들의 언어를 뚫고 나오는 힘이 느껴진다. 이 책은 독서 에세이가 아니라 그녀의 삶 그 자체’, ‘전안나 에세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재투성이 신데렐라였다(p. 24).”라는 표현은 어릴 적 그녀의 삶을 적확히도 표상한다. 가장 안전해야 할 양어머니라는 존재에게 온전한 사랑은커녕 수발드는 식모 역할과 각종 신체적, 정서적 폭력과 학대가 강제되어 그녀의 삶이 이어진다. 그 이후 결혼을 통해 양어머니와의 분리 후 잊어내고 이겨가는 과정, 양육을 통해 얻어가는 고충과 희망, 사회복지사이자 상담가로 자신을 돌아보는 여정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누구든 자신의 삶이, 자신의 고통이 제일 크게 느껴지겠지만, 전안나 작가와 함께, 또 다른 수많은 작가들의 언어와 함께 잠시간 동행하다 보면, 치유와 통찰의 경험이 주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일독을 권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전안나 작가님!, 작가님은 자기 언어가 숨 쉬고 있습니다. 피와 뼈로 벼려낸 작가님의 언어가 제 온몸에 스몄음을 세포 깊숙이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작가님은 약자도 아니요, 피해자도 아닙니다. 태어나줘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작가님만의 언어와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세요. 또 다른 전안나들을 위해서요.”

 

 

*이 서평은 가디언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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