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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삽니다
장양숙 지음 / 파지트 / 2022년 3월
평점 :
[본 글을 서평단 이벤트의 일환으로 쓰여졌으나, 편향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솔직하게 써 내려간 리뷰입니다 ^^]
진설 | 서평
<마음을 삽니다>, 장양숙
파지트 출판사(P:AZIT), 2022
책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기 전. 표지를 살핀다. 노란 꽃이 만개한 그곳은 평온함과 안식이 가득해 보인다. 바로 건너편엔 초록빛 산맥과 푸르게 빛나는 호수가 반겨준다. 마지막으로 하늘은 정갈하게 늘어선 완만한 구름을 머금고 연파랑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천국일 것만 같은 이곳 한가운데, 멋진 모자와 옷을 걸쳐 입은 한 여인이 있다. 서 있는지, 앉아있는지 모를 애매한 자세로. 게다가 그렇게 평온해 보이지도, 그렇다고 근심으로 가득해 보이지도 않는다. 왠지 이 여인의 삶도 그러할 것만 같다. 이 지상낙원은 그녀의 것이 아닐 것만 같은 그런. 하지만 곧 이 공간은 그녀가 정착하게 될 곳이기도 할 것 같은. 이런 애매한 느낌 속에서 제목을 상기해본다.
‘마음을 삽니다’
‘삽니다’는 두 가지의 뜻을 가진다. ‘어딘가에 거처한다’는 뜻과 ‘값을 치러 어떤 재화를 자신의 것으로 취한다’는 뜻. 그러니까, ‘나 혹은 누군가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거나, ‘그 마음을 취하겠다’는 뜻이겠다.
표지의 그림으로도, 제목으로도 어딘가 꿈꿈한 구석을 감출 수 없다. 마치 그녀의 삶 역시 똑 부러지는 매끄러운 것이 아닐 거라는 걸, 그녀의 마음이 아직은 완성형이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그녀의 마음을 사보겠노라 마음먹고 책을 펼쳐본다.
그렇게 두어 시간이 흘렀다.
그녀의 마음을 사보겠다(buy)고 책을 읽었지만, 그녀의 삶이 담긴 그 마음의 생생한 물결 속에 흠뻑 살다가(live) 나와버렸다. 감히 누가 누구의 삶을 취한단 말인가. 오만한 나 따위를 문책해본다. 겨우 두어 시간으로 그녀의 삶을 취해보겠다고 거들먹거린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작고 가녀린 책이지만, 지금은 여느 때보다 무겁게 느껴진다. 어떠한 소설보다도, 어떤 위대한 전기보다도, 어떤 거창한 자서전보다도.
이 책에서 그녀는, 어린 시절 불의의 사고로 다리 한쪽을 잃은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직 세상을 알기엔 너무도 어린 나이에 얻은 장애라는 상처는 점점 그녀의 삶을 무겁게도 잠식해간다. 다리를 잃은 고통보다, 장애라는 인식과 편견이 사회적 존재인 한 인간의 삶을 무너뜨리는 과정이 아프게도 묘사된다.
“육체의 아픔 끝에서, 난 거대한 세계를 맞닥뜨려야 했다.” (p. 23)
“절뚝발이. 그 한마디에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이 절뚝발이라는 것을 마음 깊숙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충격이었다. 내가 아이들과 다른 존재이며 그들과 함께 놀아서는 안 될 문제를 알고 있다는 것을,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 앞에서 인정해야만 했다.” (p. 25)
“나는 장애를 가지지 않은 이들의 입장에서 이해되어야 하고, 이들의 이해에 따라 생동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p. 27)
그렇다고 절망의 연속이겠는가. 그렇지 않다. 그녀는 고통 속에서도 인간과 삶에 대한 희망을 맛보며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 힘을 얻는다.
“나는 받은 손길을 다시 내밀어주며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달려갈 것이다.” (p. 40)
“사랑의 손길이 수렁에서 날 끌어올려 주는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나는 사랑과 정성을 다해 나를 대해 주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위안을 받았다.” (p. 87)
“원장님은 약을 건네며 방에 들어가 잠깐 눈을 붙이라 했다. 남의 집에서는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나는 거짓말처럼 약을 먹고 단잠에 빠져들었다. 잠에서 깨 보니 두 시간이나 지나 있었고, 몸도 마음도 가뿐했다. 세상은 따뜻했으며 그래도 살 만한 곳이었다.” (p. 100)
그녀는 결혼의 과정에서도 자신을 잃어버리는 순간들을 경험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가정을 이루고 딸까지 얻는다. 하지만 그녀는 가장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닥친다. 떠돌이 행상에서 전국 최우수 영업사원이 되기까지의 이야기 속에서, 온몸으로 삶을 이겨내고 살아내는 것이 무언인지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하루 쉴까도 생각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자신을 격려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사치스러운 감상에 젖어 우울해할 시간이 없었다.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p. 103)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나는 묵묵히 내 갈 길을 갔다. 오로지 집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버티고 또 버텼다.” (p. 119)
“그동안 내가 한 것은 영엽이라기보다 삶을 견딘 것이었다.” (p. 157)
그녀의 삶이 만약 어려움을 이겨냈다는 자기중심적인 서사였다면 감동이 덜했을까? 그녀는 자신의 처지 속에서도 타인들의 삶을 더욱 중히 여기며, 나아가 장애인이라는 거대한 불평등한 세계를 치유하려 하는 장애인 인식 개선 강사, 장애인 학교를 설립의 의지까지 확장한다. 자기 마음을 사는(live) 것 너머 타인의 마음을 사고(buy), 타인의 인생까지 사려고(live) 하는 것이다.
마음을 산다는 그녀의 목소리의 진위가 이제야 알 것 같다. 이 책은 그녀의 마음 그 자체다. 용기 있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 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내 삶이 불행하다고 느낄 때, 내 팔자와 운명이 사납다고 느껴질 때, 우울하고 무기력할 때 그녀의 마음을 살고 나와보길 권한다. 여느 자기계발서와 같이 대놓고 교훈을 열거하지 않았지만, 이미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힘껏 살아볼 의지가 샘솟으라고 확신한다.
“감히 말하고 싶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멈추라고. 그리고 자신의 아름다웠던 꿈을 꺼내 보라고. 그 꿈을 향해 다시 시작하는 환희를 맛보라고.” (pp. 6-7)
마지막으로 저자 장양숙 선생님에게 감히 이 말씀을 남기고 싶다.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 덕분에 제 진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삶의 주인공이 되셔서 많은 사람이 장 선생님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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