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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응의 건축 - 정기용의 무주 프로젝트
정기용 지음 / 현실문화 / 2008년 10월
평점 :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자의가 아니었다.
교육청 주관 고교생 독서토론대회를 위한 교내 대회를 치러야 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출제하고 심사를 하고 대표를 뽑고 하는 일을 의뢰받은 것이다. 귀찮고 힘든 일이지만, 책 이야기가 아닌가! 책을 읽고 학생들과 토론할 수 있는 기회라니 어찌 포기할 수 있으랴! 기꺼이~~~
우리가 읽어야 할 4권의 면면은 이렇다.
<감응의 건축 / 정기용>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
<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 / 주경철>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 / 윌리엄 브로드, 니콜라스 웨이드>
건축가 정기용 선생이 1996-2006년까지 전북 무주에서 공공건물 30여 채를 지으면서 느꼈던 무주프로젝트를 담은 책이다.
한 사람의 건축가가 건축을 통해 현실의 열악한 환경과 모순을 극복하고 삶을 한 차원 끌어올리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감동스러웠다. 물론 그의 야심찬 프로젝트 뒤편에는 김세웅 전 무주군수의 적극적인 지원과 신뢰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진도리 마을회관, 안성면 적상면 부남면 무풍면 주민자치센터와 무주공설운동장, 무주군청과 뒷마당, 무주시장 현대화 프로젝트, 청소년 수련관, 청소년 문화의 집, 곤충박물과과 자연학교, 향토박물과, 천문과학관, 버스정류장, 농민의 집, 된장공장, 전통문화 공예촌, 보건의료원, 종합복지관, 노인전문요양원, 무주 추모의 집(무주공설납골당) 등 그는 무주에 30여개의 공공건물을 지었다.
이 과정에서 그가 가장 고민했던 것은 공간의 민주화, 풍경 속에서 사람이 주인이 되는 방법, 자연과의 조화, 따뜻하고 열린 공간으로 거듭나기였다. 특히 청소년수련관을 지을 때 가졌던 청소년의 현실에 가슴 아파하며 그들의 미래를 설계하는 모습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인간이 인간을 연민하는 아름다운 마음 그 자체였다. 마치 한의사가 아픈 환자를 위해 약재를 처방하고 정성껏 약을 달이는 모습은 경건하고도 숭고했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인간다움과 평등과 자유를 건축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개별적 건물로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과 그 주변환경, 나아가서는 하늘의 질서까지 고려해 넣는다. 주변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를 고민하며 통합적으로 바라보려 애쓴다. 농민의 집을 설계하면서 '무주 농업의 미래를 위한 논쟁과 토론의 방' '농업을 통한 사람들의 소통을 위한 방' 등으로 분류하고 그 방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사건을 예측하고 고민한다. 곤충박물관을 짓기 위해서는 먼저 곤충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동물행동학자인 최재천 교수를 찾아가 공부하고 자문을 구하기까지 한다.
그는 지구의 질서와 생명을 어지럽히지 않는 것, 사람들을 위한 공간, 사람들이 움직이고 소통하는 공간, 건축만이 가질 수 있는 공간의 고유한 힘을 적절히 드러내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야말로 건축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건축가가 하는 일은, 건물을 설계하기 이전에 과저와 현재와 미래를 횡단하며 여러 가지를 사유해야 하고 또 나아가서는 땅과 시대와 세상과 관습과 싸우기도 해야 하며, 모든 기술적 경제적 요인을 결합하는 능력도 발휘해야 하는 총체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으로 인해 나는 비로소
온전한 생명체인 '건축'이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음을 믿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