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영화 공식 원작 소설·오리지널 커버)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강미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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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 보람이 있네요. 영화 보고 책 받으니 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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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뭘 기대한 걸까 - 누구도 나에게 배려를 부탁하지 않았다
네모토 히로유키 지음, 이은혜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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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가 힘든 모든 사람을 위한 에세이"



단번에 읽어버린 에세이가 아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조금씩 읽어나간 에세이였다. 그래서인지 에세이가 내게 미친 영향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세이라고 하지만 자기계발의 성격을 띠고 있는, 그렇다고 무언가를 강요하는 느낌은 아니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조금씩 읽었기에 이 책이 주는 독서 효과가 더 크게 느꼈던 이유는, 매일매일 단 하루도 관계 속에 놓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매일 타인과의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가족까지도! 그리고 관계 안에서의 나도 모르게 지었을 표정과 말투 행동에 문제는 없었을까 고민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많은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이 책을 읽으며 내 고민의 원인을 찾기도 하고 앞으로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관계 속에서 흔들리는 내 자존심을 잡아줄 수 있는 글들이 더 큰 위로가 되었지만!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뭘 기대한 걸까' 타인에게 베푸는 모든 건 스스로의 선택이지 상대의 강요에 의한 배려일 때가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려의 압박감'을 품고 스트레스를 자처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문제는, 내가 배려한 만큼 상대방도 나를 배려해주기를 바라는 심리이다. 내가 그만큼 배려를 했기에 상대방도 꼭 나에게 그래야 한다는!



하지만 상대방이 내 배려를 있는 그대로의 배려로 느꼈는지도 의문이고 그 배려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나다. 물론 실제로 그런 배려를 요구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있을 때도 있다. 그런 모든 관계 속에서의 배려로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에세이기도 하다.



저자는 관계 심리학자로, 자신이 만났던 '관계'의 고민을 않고 자신들을 찾았던 사례를 바탕으로 쓴 에세이다. 챕터마다 길지 않은 에세이를 모아둔 덕분에 호흡이 길지 않은 길을 읽을 수 있기에 편안하기도 했고, 짧은 글마다 붙인 제목도 무척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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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나 1 - 개정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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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는 밑줄, 누구나 꿈꾸는 아메리카나!'



좀처럼 읽지 않는 아프리카 소설을 연달아 세 권이나 읽었다. 모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소설이었고, 어쩐지 읽기 힘들 것 같은 익숙하지 않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라는 단어를 제외하고 그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을 담은 소설이라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녀가 말하는 것을, 예를 들어 인종이라던가 페미니즘이라던가 잘못된 시선에 놓이기 쉬워서 꺼내기 힘든 소재들을 그녀의 시선으로 가치있게 담아낸 그녀만의 소설이 무척 좋았다.



1권, 2권으로 약 80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소설인 아메리카나를 읽는 동안에 그동안 깊이 있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길에서 마주치는 흑인들에게 시선이 가기 시작했고 그들의 머리카락과 피부에도 관심이 갔다. 그리고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그들의 삶까지도!



P. 295



그녀는 전화를 끊고 난 뒤에야 부끄러움이 솟아올라 얼룩처럼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에게 고맙다고 한 것, '발음이 미국인 같다'는 말을 열심히 화환으로 만들어 자기 목에 건 것이 수치스러웠다. 미국인처럼 말한다는 게 어째서 찬사받을 만한 업적이란 말인가?

소설의 주인공은 이페멜루, 매력적인 흑인 여성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주인공은 오빈제 역시 흑인 남성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했고 한 명은 미국으로 한 명은 영국으로 가게 되면서 서로가 없는 시간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떠나왔던 나이지리아에서 다시 재회한다. 이렇게 말하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연애소설 같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보다는 이페멜루가 그리고 오빈제가 나이지리아를 떠나 낯선 타국에서 느껴야 했던 모멸감과 수치심이 더 기억에 남는 소설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나이지리아로 가야 했던, 매일매일 수치심을 견디며 살고 감내하며 버티면서도 아메리카나를 꿈꿨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P. 316



열정적인 고객 서비스와 빛나는 거짓으로 만들어진 가면은 그녀가 개발한 미국식 자아의 일부였다. 그녀는 그것을 수용하고 흡수했다.그 손님이 가고 나면 그녀는 어깻짓 한 번으로 미국식 자아를 털어 버리고 할리마와 아이샤에게 미국인들이 얼마나 버릇없고 유치하고 거득먹거리는지에 대해 불평하겠지만 다음 손님이 들어오면 또다시 완결무결한 미국식 자아로 변신할 것이다.

인종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고 이 소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흑인인 그들의 삶을 담은 소설이니 말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과거 노예였던 그들의 삶도 지금은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언젠가 티비에서 봤던 다큐멘터리가 생각이 난다. 자신들을 "검둥이"라고 부른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티비 속 그들은 웃었다. 우리가 웃는 것처럼, 그들도 웃었다. 하지만 미소를 머금은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슬펐다. "어떻게 그런 단어를 만들어서 부르죠?" 그 후에 말은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불리는 자신들 역시 슬프다는 것만은 기억난다.



분명 슬픈 것만으로 부족한 삶을 살았을 것 같아 나 역시 슬펐다. 슬픔을 넘어선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끼며 살아야 했을 테니 말이다. 피부색이 다르고, 머리카락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애초에 없어야 할 차별을 당하며 살아야 했으니까!



이페멜루는 흑인이기에 겪었던 것들을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흑인'을 주제로 한 글을 통해 미국에서 돈을 벌 수 있었고 강연도 할 수 있었다. 그녀의 글에 열광했던 건 누구였을까? 미국에서의 아메리카나를 꿈꾸는 흑인들이었을까? 아메리카로 살면서 우월적인 인종이라고 느끼는 백인들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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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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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속받지 않는 삶을 향한 아프리카에 사는, 하지만 유복한 남매가 등장하는 소설이다. 자유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해야 할까? 남매가 진짜로 자유를 얻고 싶었던 건지 노력이 엿보이다가도 벗아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수긍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아 가슴 아픈 소설이었다. 그렇다면 남매의 억압하고 구속하는 대상은 누구였을까?



남매가 독립하고자 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십 대의 남매가 아버지로부터 완벽한 독립을 할 수 있을까? 어쩐지 그저 남매의 독립이라고 한다면 사소하지만 남매에게는 사소하지 않은 이유일 것만 같다. 하지만 남매에게 아버지는 아버지이자 신이었고 신을 넘어선 악마이기도 했다. 남매의 하루 일과부터 정신적인 것까지 모두 지배하려는, 그 지배를 믿음이라는 말로 둔갑한 아버지는 이미 남매에게 신을 넘어선 악마였다.



P. 16



"그럼 죽을게요." 오빠는 두려움 때문에 눈동자가 콜타르색으로 변했으면서도 이제 아버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럼 죽겠습니다, 아버지."

그동안에 성장소설은 많이 읽었던 것 같은데, 그간 읽었던 성장소설과는 성격이 조금 다른 느낌이다.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저자의 이름부터 주인공들의 이름까지 그리고 그들이 성장하는 배경까지 모두 낯설었다. 아프리카 소설은 처음이었는데, 여러모로 사람들의 관심을 얻고 있는 저자라고 한다.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저자라기에 이 소설에도 그 색깔이 짙을까 하는 걱정을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페미니즘 소설을 기피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소설에 그런 느낌이 너무 강하면 어쩐지 본질을 해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더라!



어쨌든 아프리카 소설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런 성장소설의 성격이 다르다고 느낀 건, 보통은 주인공들이 자신이 놓인 상황에서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성장하는 건 공통적으로 맞지만 그들을 성장하게 만들었던 이유였던 환경 속에 '종교'적인 문제가 포함되면서 더 넓은 의미의 성장을 남아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P. 242



"내가 너한테 하는 일은 전부 너를 위한 거야." 아버지가 말했다. "알고 있니?"

아버지는 믿음의 대상에 따라 자식들을 지도했고, '보호하고 있다'라고 믿었다. 아버지가 남매를 보호하고 자는 해로운 것은 당신 자신의 아버지이기도 했으며 어쩌면 당신이 믿는 십자가 밑에 놓이지 않은 모든 것들이기도 했다. 그 모든 것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남매를 당신이 짠 일과표 안에 살게 했으며 사생활은 없었고 당신에게 어긋나는 행위를 했을 때는 그것은 즉시 폭력으로 돌아왔다.



"이건 모두 널 위한 거야!"



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포장된 폭력으로 말이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조심스럽다. 하지만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잘못된 믿음은, 남매의 아버지 자체가 신이 되었기에 잘못된 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들을 가장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부터 남매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방법으로 아버지가 원하는 '믿음'을 보여주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자신이 진짜 믿고 있다고 믿었다.



오빠인 자자는 조금씩 깨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여동생인 캄빌리는 달랐다. 항상 아버지의 눈치를 보고 아버지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 힘썼다. 행동 하나, 말투 하나도 항상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말이다. 아버지가 이도교라고 불리는 할아버지 댁에 갔을 때도, 자신의 행동을 감춰버렸으면 그만인 것을 자신의 믿음은 신실하기 때문에 고해성사를 한다.



자유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은수카의 고모댁에 가서도 킴벌리는 말을 하지 못했다. 머릿속으로 자신이 행해야 하는 신실한 믿음에 반하는 미소를 지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없는 있는 그대로 그곳을 즐길 수 없는, 아버지가 없는 곳에서조차 아버지에게 지배당한 캄빌리가 가여웠다.



그런 캄빌리가 자유를 향한 의지를 가지고 달라지기 시작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P. 98



나는 두 사람이 말할 때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봤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어머니의 입술은 반짝이는 구리색 립스틱을 바른 이페오마 고모의 입술과 비교하니 창백해보였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어머니의 입술, 반짝이는 고모의 입술을 바라보던 캄발리. 그리고 은수카에 일주일을 머물고 아버지의 폭력으로 다시 요양을 위해 다시 은수카에 갔을 때, 처음으로 캄발리는 자신의 입술에 립스틱을 발랐다 지워냈다. 고모의 입을 틀어막아 반짝이는 립스틱이 자신의 손가락에 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시작으로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기까지, 그렇게 캄발리는 더디지만 조금씩 자유를 향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어쩐지 립스틱에 입술에 가장 강력한 자유의지를 느꼈다. 말을 하고 소리를 내는 입술이기도 하며 그 입술에 원하는 색깔을 칠해서 도드라지게 만드는 건 오롯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선택이기도 하니까!



P. 102



고모는 상대방이 아버지라는 걸,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걸, 특별하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손을 뻗어 고모의 입을 틀어막아서 그 반짝이는 구리색 립스틱이 내 손가락에 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설 속에서 가장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아마카 역시 캄발리를 자유로 이끌어줬던 대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난했던 아마카는 부자이고 말을 하지 않고 웃지도 않는 캄발리를 조롱했다. 매번 그렇게 조롱하던 캄발리에게 자매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건 언제부터였을까? 아버지에게 말할 수 없는 폭력을 당하고 다시 은수카로 돌아갔던 날, 아마카는 알았다. 캄발리의 폭력의 대상이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아마카는 캄발리를 동정했던 걸까? '나는 너보다 가난하지만,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가족들과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어!'라는 우월감에 놓였던 걸까? 아마카가 캄발리와 가까워진 이유였지만 어쩐지 아마카를 통해 가장 인간다운 인간의 면모를 볼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쩐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소설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라고 말하면 믿어질까? 싶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서 소설을 읽지 않는 내가 주말 내내 이 소설을 손에 놓지 못하고 읽었으니 말이다. 손에 놓지 못했던 그 시간 동안은 분명 캄발리와 자자를 응원했던 것 같다. 그들이 억압된 존재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대상이라 그 갑갑함과 숨 막힘이 고스란히 전해졌으며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없는 폭력을 행했을 때같이 아파했다.



하지만, 그들이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건 주변 사람들의 크고 작은 도움이 있었지만 결국 그들의 '자유로울 수 있었던 건' 남매 스스로가 성장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여러모로 의미 있는 소설을 읽은 기분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까지 지배 당했던 자신을 스스로 끌어올렸으니!



P. 274



그때 나는 이페오마 고모도 사촌들에게 똑같이 해 왔음을 깨달았다. 엄마가 자식한테 어떤 식으로 말하고, 무엇을 기대하는가를 통해 그 애들이 뛰어넘어야 할 목표를 점점 높였다. 아이들이 반드시 막대를 넘으리라 믿으면서 항상 그랬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오빠와 내 경우는 달랐다. 우리는 스스로 막대를 넘을 수 있다고 믿어서 넘은 게 아니라 넘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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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스페셜 에디션)
손힘찬 지음 / 부크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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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보다 에세이를 즐겨 있는 것 같다. 어쩐지 이전에 읽는 에세이는 동떨어진 마음에 읽다 놓다를 반복하다 결국 끝까지 못 읽는 책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따스한 에세이 한 권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처음 읽는 작가의 책이었다. 작가의 이름을 보고도 에세이를 읽기 시작하며 은연중에 이 작가는 여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읽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저자가 남자라는 사실에 한 번 놀라며 이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왜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했을까? 섬세한 문체와 더불어 '내 마음을 이렇게 잘 알아주는'이라는 생각에 당연히 그렇게 읽었던 것 같다. '관계의 모든 것'이라는 짧은 부제로 소개하고 싶은 에세이다.



P. 86



"사람의 가치는 그 그림처럼 어떤 환경에 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단다. 그림은 창작물이기 때문에 보는 사람에 따라 값어치를 다르게 측정하지. 설령 그게 하찮은 그림이라도 누가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지는 거야. 네가 이 그림과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니? 그 어떤 곳바다도 중요한 사실은, 네가 스스로를 소중하게 대할 때 비로소 네 인생의 가치가 올라가는 거야. 그게 가치 있는 삶을 위한 첫걸음이 되겠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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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쓸모없는 인간은 어디에도 없다.

책을 소개하는 키워드를 읽으며 요즘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키워드가 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마음만 끌어당기고 끝나는 겉만 번지르르 한 에세이도 아니었다. 생각보다 이 에세이의 저자가 어리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어리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울 것 같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 가장 큰 위로를 받았고 공감을 느꼈으니까! 한참 어릴 때도 지금도 여전히 관계는 어렵다. 타인과의 관계도 가까운 사이의 관계도 하물며 나라는 사람과의 관계마저도 쉬운 건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말도 감정도 로봇처럼 기계적인 게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관계에 대한 고민을 '책'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저자와 깊은 대화를 나눈 기분이었다. 마치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눈 것처럼!



P. 91



혼자 있는 시간은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시간이고,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타인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나'와의 관계는 훨씬 더 중요하다.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누구나 홀로 있어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만의 시간은 그저 외로운 시간이 아니라 나를 편하게 대하면서 위로해 주기도 하고, 진취적 사고를 극대화하기도 한다. 그 과정 중에 자연스레 자존감이라는 것은 키워진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해, 대화, 이해



사람이기 때문에 관계를 맺다 보면 '오해'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때 필요한 건 분명 대화다. 하지만 대화가 잘 통해서 이해관계에 놓여 잘 풀어나간다면 다행이지만 사실,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럴 때는 오히려 이해관계를 만들기 위함이었던 대화가 다시는 풀어내지 못할 오해들만 쌓일 때가 있다. 전에는 그런 오해를 풀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설명하고 눈치 보고, 그 사이에 내 마음은 자꾸 다치는, 그런 시간들도 있었다.



지금은 오해를 풀고 싶지 않은 사람과 오해를 풀기 위해 대화를 나누기를 포기했다. 그냥 오해라고 생각하는 일을 '오해라고 두니' 상대와는 멀어졌지만 오히려 내 마음은 편해지더라! 분명 100%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사람과 대화를 나눠서 이해하는 관계 보다 안 보고 지내는 게 오히려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이와 이해관계에 놓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게 고작 일 년 전이다.



P. 160



어떤 상황에 부닥쳐있든지 간에 이 사람에게 최선을 다했는지 자신을 스스로 되돌아보고, 정말 할 수 있는 선까지 해보길 바란다. 그럼 자연스레 결론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국 중요한 건 나 자신인데, 그걸 매번 잊고 산다. 이기적인 건 나쁘지 만은 않다. 이기적이라는 게 나빠질 때는 나'만'이라는 생각으로 행동할 때인 것 같다. 나'도'라는 생각으로 행동할 때 나 자신도 지켜내고 나와의 관계도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나 자신을 아끼는 사람이 누군가와의 관계도 맺어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반성하던 내 모습이었는데, 직접 눈으로 읽으니 한 번 더 다짐하게 됐던 것 같다. '남에게 묻는 습관' 나를 위한 결정인데 왜 자꾸 누군가에게 물을까? 진짜 나를 위한 선택은 오롯이 나만 아는 것 같다.

처음 이 에세이를 읽기 시작했을 때가 주말, 오후, 배게, 음악이 더해진 가장 편안한 시간에 읽었다. 어쩌면 가장 필요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에게는 꼭 가장 필요한 만큼의 휴식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휴식이라는 이유로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더 많은 걸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1년의 여행이 내게 꼭 그랬다. 용기를 주었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줬으니까!



휴식이 필요한 시간에 읽었던 이 에세이도 딱 그랬다. 내 마음에 딱 힘이 되어주는 그런 시간에 읽으니 문장 문장이 자꾸만 마음에 들어와서 어루만져 주는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요즘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에 관심을 갖기도 했는데, 나는 역시 작가 혹은 출판사를 보며 책을 고른다. 이 작가의 책을 시작으로 부크럼 출판사가 좋아지기도 했는데,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도 출간된 덕분에 더 푹 빠지는 중이다. 한동안은 소설만큼이나 에세이에 푹 빠져 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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