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 - 어느 과학자의 탄생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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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된 후의 삶은 이전과 너무도 달라서, 달라지지 않은 점을 찾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인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를 꼽으라면 사람들을 대할 때의 태도와 마음가짐이에요.

이전에는 별생각 없이 판단하고 평가하고 비난하는 일이 많았지만
출산 후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 귀하고 소중해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마음까지 들 정도인데
(저 사람이 저렇게 자랄 때까지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정성을 쏟았을까 싶어서요)
특히나 유난히 반짝반짝 빛이 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의 부모님이 그렇게! 궁금해져요.

"아. 이 사람은 어떤 부모님 밑에서 자랐을까?"
"어떤 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받으면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지?"

그 사람의 부모와 환경이 그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인생 전반에 걸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잖아요.
꼭 똑같이 따라 하고 싶어서는 아니지만 그냥 너무 궁금해서~ 알고 싶어서~
매번 기웃기웃 부모님에 대한 정보에 관심을 두곤 한답니다.

제가 리처드 도킨스의 자서전을 읽고 싶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세계에서 손꼽히는 과학자인 동시에 뛰어난 글 솜씨를 자랑하는 베스트셀러 과학 저술가!
세상은 본디 불공평한 것이라지만 이건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하잖아요?!
뛰어난 지성과 통찰력, 명료한 사고력까지 갖춘 과학자가 문학성까지 갖고 있다니...!!!


이러니 제가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있나요?!
리처드 도킨스의 부모님은 어떤 분들일까?
어떤 부모 아래서 어떻게 자랐을까?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

리처드 도킨스라는 세계의 지성을 탄생시킨 육아 비법을 찾아서~~~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어슬렁어슬렁 그의 자서전에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자서전은 1, 2권으로 출간되었는데요,
1권은 그의 가족 계보부터 유년기와 학창기,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기적 유전자>의 탄생기까지를 다루고 있어요.


이 책은 그가 70세에 쓴 책이므로 사실은 아저씨보다 할아버지에 가까운데,
책을 읽는 동안 한 번도 그가 70대라는 걸 느끼지 못 했어요.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문장들이 전혀 고루하지 않고 세련될 뿐 아니라 시니컬한 유머감각까지 갖추고 있어
30-40대의 쿨내나는 훈남 아저씨로 느껴진답니다.


책에는 그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실려있는데,
부모님은 물론이오 조부모와 증조부모, 사촌에 팔촌까지 일가친척들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어
일부 독자들은 불필요한 사설이 많은 책으로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가 자란 환경과 가족 문화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어 오히려 집중해서 매우 흥미롭게 읽었어요.

특히 그가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정말 놀라웠는데,
2차 세계대전 직후 식민지 공무원이었던 남편을 따라 아프리카에 간 어머니 덕분에 케냐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거예요.
전쟁 중에 아프리카에서 보낸 유아기라니! 저에겐 엄청난 역사적/문화적 충격이었는데,
당시의 일상을 자세히 기록해 둔 어머니의 일기장 덕분에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어요.

 

 

 


위의 사진 중 오른쪽 하단에 있는 사자 그림은 리처드 어머니의 작품인데,
이웃집에 들어갔다가 소파에서 하품을 하고 있는 암사자를 보고 너무 놀랐던 날을 그렸다고 해요.
실제로 리처드는 새끼 사자와 함께 놀며 자랐다고...;;;;
심지어 전갈에 찔려 죽을 뻔했던 적도 있어 아직까지도 전갈 공포증에 시달린다니-
정말 우리들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스케일의 유년 시절을 보냈죠?

그의 어머니는 가족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커다란 그림을 통해 기록해 두었는데,
가족의 역사를 이렇게 멋진 그림으로 남겨둘 수 있는 그녀의 능력에도 감탄했지만
그 그림 속에 담겨 있는 리처드의 유년 시절이 참으로 경이로웠어요.

아프리카의 밀림과 정글, 호수와 바닷가를 누비고,
카멜레온과 갈라고원숭이를 애완동물로 키우는 일상이라니...
그의 부모님은 지천으로 널린 수많은 들꽃의 이름도 모두 알고 있는 분들이셨다 하니
그가 얼마나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자랐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겠더라고요.



물론 그가 계속 아프리카에서 자란 건 아니었고, 8살이 되던 해에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는데
그의 아버지는 영국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하셨다고 해요.
그는 기숙학교를 다녔는데, 방학이면 종일 농장 일을 거들고 짚단에서 썰매를 타며 시간을 보냈다고 하니
그의 어린 시절은 '자연 자연 자연! 대자연 속에서 누린 광활한 경험'이라고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유아기의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우선해서 제공해주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의 어린 시절을 보며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부러운 마음과 함께 많은 깨달음을 얻었답니다~




하지만 정말 큰 의미를 던져준 것은 리처드 도킨스의 학창 시절이었는데요,
그는 "나를 만든 것은 옥스퍼드"라고 말하며 옥스퍼드에서의 대학 생활을 가장 높이 평가합니다.

특히 옥스퍼드만의 튜터 제도를 극찬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노예처럼 공책에 받아 적기 바쁜 강의식 수업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고 말해요.


그는 강의의 목적은 결코 정보 전달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단순 정보는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읽는 것으로도 충분히 얻을 수 있으니까요.
강의를 들을 때 우리는 생각을 고취시키고 자극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강사의 말하기를 통해 '생각하는 법'과 그것을 남에게 '전달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죠.

리처드 도킨스가 말하는 최고의 비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교과서만 파고들지 않았다. 도서관에 가서 옛날 책들과 새 책들을 살펴보았다. 연구자들의 논문을 추적했다. 그래서 결국 그 주제에 관해서는 일주일 만에 가능한 한 최대한의 수준으로 거의 세계적 권위자에 가깝게 통달했다. 주 단위로 진행된 개인 지도 덕분에, 우리는 불가사리의 수관계에 대해 그냥 읽고 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주제든 마찬가지였다. 일주일 동안 나는 불가사리의 수관계와 함께 먹고 자고 꿈꿨다. (중략) 보고서 작성은 카타르시스였고, 튜터의 격려는 일주일의 노력에 대한 충분한 이유였다. 그리고 다음 주가 되면 새로운 주제가 왔다. 도서관에서 수집해야 할 새로운 이미지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우리는 정말로 교육받았다. 내가 조금이나마 갖고 있는지도 모르는 글솜씨는 대체로 그때의 일주일 단위 훈련을 토해서 얻었다고 믿는다."

그가 극찬하는 튜터 제도는 교과서 중심의 강의식 학습이 아니에요.
일주일 단위로 하나의 주제를 정해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이를 위해 도서관의 수많은 책과 연구 논문을 찾아 읽습니다.
단순히 읽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주제에 완전히 빠져들어 집중하는 몰입의 경험.
그리고 그 에너지를 완전히 쏟아부은 하나의 글을 완성하는 훈련을 통해 그는 과학자로서의 능력과 글 솜씨를 함께 얻습니다.

튜터 제도는 매 학기마다 다른 교수와 함께 이루어지는데,
어떤 박사는 매주 하나의 논문을 읽고 논문이 다룬 내용과 역사적 개요, 후속 연구 제안, 논문이 제기하는 이론적/철학적 논의 주제를 종합해 보고서를 써내게 했다고 해요.
또 어떤 박사는 그가 전공하고 있는 동물학 교과과정의 그 어떤 수업과도 관계가 없는 것을 시켰는데,
역사책과 철학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었지요.

그는 한순간도 이러한 과제가 시험문제에 답하는 데 쓸모가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저 묵묵히 노력했고, 그런 공부가 몹시 좋았으며, 그때 느꼈던 희열과 즐거움을 지금까지 기억한다고..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을 수차례 단언합니다.

그가 극찬하는 이 튜터 제도는 핀란드와 같은 북유럽 국가들, 독일의 교육 방법과도 참 비슷하지요?
교사와 교과서 중심의 강의식 수업을 탈피해 수많은 자료를 통해 학생 스스로 공부하는 시스템.
우리도 하루빨리 이런 교육을 도입해야 하지 않을까요?
언제까지 시대착오적인 산업사회의 교육 방법으로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을 고문할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책을 읽는 내내 놀란 것은 그가 시를 매우 자주 언급한다는 점이에요.
1권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용이 전개되는데, 때마다 좋아했던 시, 특히 큰 영향을 주었던 시를 언급해요.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이런 시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외우고 있었으며, 그중 몇 편은 70대가 된 지금까지도 외운다는 것!

시를 즐겨 읽고 암송하는 오랜 습관이 그의 글에도 큰 영향을 주었겠구나- 싶어서,
저도 더욱 열심히 시를 읽고 외워야겠다 다짐했어요.




저는 1권을 이틀 만에 읽고, 지금은 2권을 보고 있어요. 그의 전작들은 빠르게 읽기 참 힘든 책이지만
이 책은 자서전이라는 특징 덕분에 어렵지 않게 쓱쓱 읽을 수 있어요.
지나치게 여담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들도 많이 등장하지만, 그게 또 자서전을 읽는 맛이 아니겠어요?

사실 저는 자서전을 즐겨 읽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자서전이 어떤 식으로 쓰이는지는 모르겠지만
리처드 도킨스의 자서전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는데, 툭툭 튀어나오는 그의 과학적 통찰이 특히 백미였어요.


지상에서 뇌가 가장 섹시한 남자의 일기장♥
살~짝 들여다보시겠어요?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만큼 짜릿한 재미가 또 없잖아요 ㅎㅎ
얼마 남지 않은 2016년. 섹시한 과학자의 시니컬한 일기장에 빠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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