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왔어 우리 딸 - 나는 이렇게 은재아빠가 되었다
서효인 지음 / 난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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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머릿속에 그렸던 그래프를 벗겨내 찢어버린다. 아이가 어디에 있든, 거기가 어디든, 유일하게 반짝이는 하나의 점이다. 무한한 면에 수많은 별이 반짝인다. 별들에게 상하과 고저가 없다. 그곳은 수학적 그래프의 면이 아니다. 상상 밖의 아득한 우주다. 거기 어디에선가 아이들이 제 빛을 내고 있다."

 

- 본문 중에서

 

 

건강이상으로 2-3주를 염려가 깊었다. 마음이 흔들렸고 갈피를 잡을 수 없었으며,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오늘에서야 걱정을 털어내본다. 잠시었지만 내가 느꼈던 공포는 삶에 대한 애정이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의 재확인이었다. 무엇보다 가족. 그 존재에 대해서 한없이 감사함을 온 몸으로 느낀 기회였다.


<서천석의 아이와 나> 라는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연이 닿아 읽게 된 책이다. 서효인 저자는 시인이다. 그의 연애 이야기로 책이 시작되어 다운증후군의 은재가 태어나고 그 후 둘째의 소식을 알게 되면서 책은 마무리 된다. 누구보다 가족의 사랑을 절감했던 나에게 시기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딱 들어맞는 책이었다.


사실 신파곡조를 운운하면서 감동을 자아낼 줄 알았다. 한편으로는 장애아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아빠의 입장을 어떻게 써 내려갔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담담하게 표현했다고 하면 과연 옳을까? 여자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남자의 슬픔이 때로는 더 깊은 슬픔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아픈 아이를 원하지는 않는다. 장애아에 대해 가장 많은 편견을 가진 사람이 바로 그들의 부모라고 한다. 부모조차도 아이에게는 가해자일 수 밖에 없는 상황. 우리나라의 현실이 부모를 두 번 아프게 한다. 저자는 나쁘게 살지않았다. 평범하게 자랐고 평범하게 사랑을 했으며 그 결실로 어여쁜 아기천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저자의 글은 내가 장애아의 엄마가 아님에도 충분히 공감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부모이기 때문이었을 거다. 내 잘못으로 인해 아이가 잘못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죄책감 불안감. 저자가 느끼는 감정의 편린 끝자락 어느 즈음에 내 감정도 있을 테니까.


나라면 어땠을까?사실 장애는 누구나 가지고 태어날 수 있다. 선천적이거나 혹은 후천적이거나 할것없이 . 나 또한 그렇게 되지 말란 법도 없다. 하지만 단 한번도 이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본적이 없다. 왜일까. 아마 장애에 있어서 만큼은 나에게 포함되는 영역이 절대 없을 것이라는 불확실한 확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내가 장애아를 출산한다면 어떨까..아무런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다만, 그러한 아이들이 예전과 다르게 너무나 이쁘게 보인다는 것. 여느 또래의 아이들과 다름없이 밝고 웃음이 많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서효인 시인의 페이스북을 통해서 본 은재의 모습은 내 생각이 맞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주고 있었다.


저자는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은재의 임신사실을 알게 된다. 갑작스럽게 엄마 아빠가 된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다운증후군이라는 장애아를 출산하고 현실과 맞딱들이게 된다. 얼마나 슬프고 괴로웠을까마는 저자는 그러한 기색을 오래 가지고 있지 못한다. 그야말로 착하고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었다.가장의 무게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끝까지 가족을 이끌고 가겠다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결의들은 그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가를 동시에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은재는 다운증후군 아이들이 40%정도 가지고 있는 심장기형도 함께 가지고 태어났다. 여리고 여린몸에 칼을 대어 수술을 하고 회복실로 나오던 시간.. 저자는 울고 아파하는 은재가 살아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절제된 슬픔. 이것이야 말로 저자의 주특기가 아닐까. 담담하게 글을 써내려 갔는데.왜 점점 더 슬퍼지고 감동을 받게 되었는지 ...시인의 문체로 산문을  읽는다는 것은 낯설고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더없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은재는 엄마 아빠의 이런 사랑으로 건강하게 자랐다.  번 더 남은 심장 수술은 다행히 더 지켜봐도 좋다는 의사의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에서 사랑의 힘이 확인되었으니까. 은재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 사랑. 사랑. 그것이야 말로 은재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들은 오래 행복할 것 같다. 그냥 그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소 교정되었다. 그들을 도와주고 불쌍히 여겨야 하는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함께 부대끼며 공존해야 하는 동등한 인간임을. 여러 이유로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집안에서 갇혀 사는 장애인들이 태반이다. 그들을 보호하는 시설이나 사회적 체계는, 잘 모르는 내가 보아도 많이 미흡한 편인 것 같다. 장애우들이 마음껏 길거리를 활보할 수 있을때 세상은 함께 따뜻해 질 것이다. 다름을 외면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그 다름을 색안경 쓰고 바라보지는 말자는 것이다.


서시인님의 가정에 늘 평안이 가득하길 빈다. 글솜씨가 엉망인 나지만 오늘은 처음부터 끝까지 막힘없이 써내려 왔다. 좋은 책을 읽고 나면 늘 생기는 희한한 습관이다. 그만큼 의미있는 책이었고 감정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은 책이었다.다시한 번 더 느낀다. 삶과 책이 만나는 시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잘 들어맞은 타이밍이 얼마나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휘하는 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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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

하지만 곧 세상에 나올 생명 하나를 두고 속도 위반했네, 신호를 무시했네, 수군거리는 것은 심히 사나운 인심이 아닌가, 타인의 사생활을 놓고 도로교통법에 의거하여 딱지를 붙이는 꼴이라니. 그러나 저러나 아이는 아이 나름의 속도와 박자에 맞춰 세상에 나올 준비를 다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누가 무엇을 위반하고 어겼나. 나는 당당한 표정을 짓기로 한다.




p163

꿈에서 은재가 말했다.

"나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어린이에요."

내가 대답했다.

"나는 못나고 못됐고 그래서 아픈 어른이야."

은재가 묻는다.

"그럼 내가 더 좋은 건가요?"

나는 확언한다.

"그럼 그렇고말고. 네가 훨씬 좋은 거야."

아이가 신이 났다.

"우와, 우와."




p179

우리들의 아버지는 대체로 무능한 존재였다. 좋았던 시절도 있었으나, 그에게 있었을 몇 차례 좋은 기회를 그는 살리지 못했고 반대로 몇 차례 위기는 무사히 넘기지 못했다. 그렇게 무능력하며 무기력하고 무력한 인간이 되어버리기 일쑤었다. 아버지는 극복할 대상이 아니라 잊어야 할 과거 그리고 불쑥 화가 치미는 상처다. 나도 아이에게 그런 아버지가 될 수 있다. 아버지라는 종목에 자신감이 없다. 마치 처음 하는 게임에 동참한 아이처럼 허둥거릴 것만 같다.



p191

육아를 정확하게 5:5의 비중으로 나눌 수 없다면, 갓난쟁이를 키우는 일이 매우 힘들고 그것을 참고 해내는 사람은 과히 중요한 사람임을 빨리 인정해야 한다. 누군가 '집에서 애나 키우면서'라고 말한다면 나는 잘못된 그의 사고를 고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할 것이다.


정성스레 그리고 조심스레 하면 좋다. 가끔 아내는 말도 못 알아들을 아이에게 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가 괜히 도덕군자 흉내내는 꼰대가 되어 " 애한테 왜 그래?" 라고 말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저 조용히 곁에 앉아 그녀의 명령을 기다리거나 눈칫껏 행동하는 게 좋다. 지금은 새벽이고 우리는 잠을 못잤고, 아내는 애를 낳고 쇠약해졌다. 나는 푸석해진 아내의 곁에서 사랑해,사랑해, 사랑해, 여러 번 말한다. 무얼 하든 부족하겠지만 지금은 연애 초기보다 더 정성스레 아내를 위하는 게 좋다.



p231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에게 미안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거야. 까딱한 순간에 사고는 일어나니까.하지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아픈 건 미안하지만, 아파보기도 해야 하니까.




p234

은재가 태어나고 내가 허우적거릴 때 곁에서 혹은 멀리서 위로와 격려를 주었던 사람들이 많다. 고마움을 제대로 건넬 방법을 모른다. 밝게 만나는 것이 일단은 최선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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